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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주야


BY mujige 2002-09-25



매미의 삼십 주야

낙엽 한 장 툭 떨어지듯
멈춘 발 앞에 내려 누운 너, 이제 깨끗이 가라

초여름 석양에 불려나온 너의 해묵은 침묵은
벗기 위한 옷을 입으며
신의 주술대로 숨가쁜 분열을 마치고
완벽한 변신을 준비했을 것이다

껍질을 찢고 솟아오르는 부드러운 모시날개 위에
기분 좋은 햇살이 서둘러 얹혔을 터이고
빈 뱃속 가득히 빨려 들어갔을 태초의 메 세지
서둘러 울어야한다, 그랬을 것이다

너의 뜻이 아닐지라도 여름의 전령이 되고만 너는
삼켜진 푸른 즙이 피가 되기도 전에 울어야만 했을 것이다
배를 떨어 조이며 힘껏 내지르던 소리
눈물도 없이 터트리는 마른 울음 맴맴.

들을 귀 마저 없는 것들의 거친 울음은
온 여름 동안 찢어지는 드릴 소리처럼 요동을 하고,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허공 가득히
숱한 의식을 만드는 노출 된 부호가 난무했었다

삶의 정수리에서 벌리는 자지러지는 씨 내림,
제 아비 그랬듯이 울지 못하는 벙어리 지어미를 만났을 것이다
여름을 끌고 가며 목 터지는 사이
스스로 허물어진 너의 서른 주야.
너의 윤색한 시절은 갔다

이렇게 끝나버릴 한 뼘의 목숨이
여름내 천지를 불면 하게 하였는가
울어댄 길이 만큼 낡아진 발음기는
마디마디 동강 난 채 숨찬 스타카토를 만들어야 했고,
비상을 위한 날개 짓은 오히려 절망으로 내리 앉아
심한 두려움을 삭히며 비로소 순종을 익혀야만 했을 것이다

끓어오르는 허공을 울어 지키던 네가
미처 토하지 못한 마지막 잔 울음 한 줄 찌르륵 흘리며
욕정으로 배불러버린 세상의 바닥에 떨어져
방향 없이 이렇게 어지러이 맴 맴 돌고있다

다시 돌아갈 또 다른 침묵의 문이 하얗게 입을 벌린 채
너의 마지막 기적, 넋의 이탈을 기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 너는 무성한 울음소리가 울창한 그리운 곳으로 가리라

하늘을 향해 멀 둥이 열어둔 두개의 볼록렌즈위로
생면부지의 시간이 맴돌다 미끄러져 간다


*매미는 자연상태에서 최고 30일까지 생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