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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정리한다


BY 개망초꽃 2002-05-08


내가 널 먼저 정리한다.
아침마다 전화를 받아서 
사소한 얘기조차도 하지 않겠다.
베란다에 슬그머니 들어오던 햇볕이
너의 목소리처럼 따스하던 날도 이젠 없을거다.


무심한 너를 이제 보낸다.
비오는 날도 널 보고 싶어하지 않겠다.
네가 좋아하던 냉정한 겨울도 잊어버릴거다.


꽃은 그늘에서 피어날 수 있지만
열매는 맺지 못한다.
나무는 겨울에도 살아갈 수 있지만
바람이 거칠면 쓰러진다.


늦가을의 쓸쓸한 수목원도
겨울로 접어 들던 바다도
진달래꽃이 먼저 반기던 들꽃 이야기 찻집도
반달이 내려다 보던 호숫가도
둘이 마시던 길거리 종이 커피도
다 같이 정리한다.


어렵게 잡아 보던 
너의 하얀손이 있었다.
착하게 바라보던 갈색 눈동자도 
나의 것이 아니다.


친구로 남기지 않겠다.
친구였다가 애인은 될 수 있어도
애인이였다가 친구는 될 수 없다.


네가 먼저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너를 보낸다.


네가 먼저 친구로 지내자 하기전에
내가 먼저 모르는 사람으로 지내기로 했다.


끝이라 말하기 조차 창피하다
너와 난 시작조차 어설펐으니까.


이별이란 단어도 어울리지 않다.
너와 난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이였으니까.


봄이 간다.
나도 이제 너를 정리한다.
꽃이 지고 난 뒤
나뭇잎은 더욱 무성해졌다.
그 길로 나는 간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름이란 계절이 날 기다릴테니...

친구도 애인도 아닌 너...
이제 내가 먼저 안녕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