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먼저 정리한다. 아침마다 전화를 받아서 사소한 얘기조차도 하지 않겠다. 베란다에 슬그머니 들어오던 햇볕이 너의 목소리처럼 따스하던 날도 이젠 없을거다. 무심한 너를 이제 보낸다. 비오는 날도 널 보고 싶어하지 않겠다. 네가 좋아하던 냉정한 겨울도 잊어버릴거다. 꽃은 그늘에서 피어날 수 있지만 열매는 맺지 못한다. 나무는 겨울에도 살아갈 수 있지만 바람이 거칠면 쓰러진다. 늦가을의 쓸쓸한 수목원도 겨울로 접어 들던 바다도 진달래꽃이 먼저 반기던 들꽃 이야기 찻집도 반달이 내려다 보던 호숫가도 둘이 마시던 길거리 종이 커피도 다 같이 정리한다. 어렵게 잡아 보던 너의 하얀손이 있었다. 착하게 바라보던 갈색 눈동자도 나의 것이 아니다. 친구로 남기지 않겠다. 친구였다가 애인은 될 수 있어도 애인이였다가 친구는 될 수 없다. 네가 먼저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너를 보낸다. 네가 먼저 친구로 지내자 하기전에 내가 먼저 모르는 사람으로 지내기로 했다. 끝이라 말하기 조차 창피하다 너와 난 시작조차 어설펐으니까. 이별이란 단어도 어울리지 않다. 너와 난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이였으니까. 봄이 간다. 나도 이제 너를 정리한다. 꽃이 지고 난 뒤 나뭇잎은 더욱 무성해졌다. 그 길로 나는 간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름이란 계절이 날 기다릴테니... 친구도 애인도 아닌 너... 이제 내가 먼저 안녕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