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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박 편지


BY 얀~ 2001-09-19

조롱박 편지


푸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도 때를 알아서 물들고 있지요
아래쪽부터 차차로 물들어
미련 없이 떨구겠죠

전원풍 식당 담에 조롱박이 달렸더군요
연두 빛 얼굴이 마지막 햇살에 익어가더군요
매미의 지독한 노래도 들리지 않고
결실 없는 마음만 허전한데
날개 비벼대는 귀뚜라미 짝 찾아 울까요

가을은 심은 자의 계절인데
어이 빈 곡간이니 불만스럽지 않겠어요
삼사일 전인가 시인을 우연하게 만나서
홈페이지 주소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거래처 업자가 와선
게시판에 마음은 부자요란 걸 보더니
다 거짓말이라 하더군요
난감해서 그냥 웃었습니다
오랫동안 장사꾼으로 살았으니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민망함에 웃음마저도 불만이었습니다

욕심 없이 살수 없으니
적당히 풍요롭게 누려야 할텐데
재물도 흘러서 넘치면
가슴을 할퀴고 간다는 말이
요즘은 실감나요
다 부질없는 거니 없어진다 생각하고
비우고 또 비우고 살아야 할텐데
속 익는 조롱박이 부러워요
씨앗이라도 담고 있으니
잡생각 많은 나의 조롱박 속엔
시체 썩은 냄새만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