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추억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날에는
그리움의 실 타래가
풀어진다
순결한 가슴에
비어있는 공간을
연필로 채웠다면
쉽게 지울 수 있을 테지만
검은 먹빛으로 선명하게 그려낸
그리움의 흔적은
바라볼수록 더욱 투명하게
나타난다
자연스레 흘러가던 먹빛에
어느날 불순물이 채워지면
먹빛은 효용을 잃고
붓투껑을 닫게 한 채
침묵을 강요한다
시간은 흐르고
붓에 각인 되었던
내 진실의 지문들이 빛을
잃어 갈 즈음
그 지문 위에는 허무의
한숨들이 새롭게 자리한다
하루 또 하루는
침묵을 전부인 양
내게 요구할 뿐
그 어떤 추억의 기쁨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