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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젊은이
1991. 9. 15 맑음 / 22:00 ~ 01:00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나도 몸과 마음을 맡기고 싶습니다.
젊음의 바람이 일렁이는 늦은 저녁의 돈암동 거리
어리게 보이는 남녀들이 어깨와 가슴을 붙이고 구석구석 서 있습니다.
난 이런 풍경속을 지나는 시원한 바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들 속에서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서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찾아온 카페는 조지윈스턴의 가을이란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가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른 꽃들로 장식되어있는 곳이었습니다. 국민학교 동창녀석과 마주 앉은 나는 밖에서 서성대던 연인들 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이어보았습니다. 의자는 한없이 푹 가라앉았고 복귀를 사흘 앞두었다는 소식도 나의 상상을 가라 앉혔습니다. 잠깐 얼굴이라도 보아야 할 것 같아 나오랬 다는 말은 또 다른 상상으로 나를 모는 듯 싶더니 막차를 놓칠 것 같다며 서둘러 일어나는 모습은 머쓱한 악수로 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아닌 내 모습과 마음이 말입니다. 샹베르사이유 그곳을 빠져 나온 우리는 성큼성큼 걸었고 상상의 날개는 카페에 두고 나가리라고 다짐도 해봅니다. 그 애는 지하철로 향했고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바로 돌렸습니다. 뒤돌아보면 아마도 내가 돌로 변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나 봅니다.
어느새 놓고 나온 줄 알았던 상상의 날개옷은 나의 어깨에 걸쳐있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재미있었습니다.
분 명 오늘은 내가 바람 난 젊은이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