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어느 날, 문득 내 삶 속에 공존하게 된 너
그랬다
무공해 상추를 씻고 난 뒤에 나는,
씽크대에 자리 잡은 너를 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환경 속에 적응하려는 너의 모습에서
다른 어떤 곳보다 좋으리라 생각했다
어짜피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바엔...
무심하게 잊고 있다간,
눈에 보여져야만 너의 존재를 깨달았다
배고프지는 않을까?
상추 몇잎을 곁에 놓아 두었다
사는게 힘들었을까?
너는 하루가 지나도 손 한 뼘 거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빠르게 느꼈던 그 모든 순간들도
결국은 한 뼘 손안이 아니었을까?
말라붙은 상추들을 치워주고
네가 먹지 않았음을 알았다
혼자가 되어 버려서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할 수 없음은,
살아있어도 사는게 아닐것이다
그래도
그 상황에 길들여져야하고
적응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슬퍼할 수도 없다는 그 슬픔은
서서히 서서히 지치게 한다
그렇게
달팽이는 서서히 지쳐 갔다
이젠 보이지 않을 때도 내 머리속에
네가 떠오르는데...
그리곤 사라졌다
힘겹게 붙어 있던 삶의 애착을
놓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무관심과 함께
하수구를 통하여 사라진 것이다
슬픔과 절망속에서
다시 새로움을 만들어 내며
유지해야만 하는 삶보다
너는 아름다왔다
온통 느리기만 했던 것 같았던 너의 삶은
진실을 향해선 결코 느리지 않았다
느리게 살아도 진실을 향해
곧바로 갈 수 있었던 너보다
나는 더욱 느린...
그래서 진실을 향해 다가가고 있지 못하는
나는...아름답지 못하다
200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