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망
무슨무슨 날이란 명분으로
옷한벌 사주마 해서 덜렁 따라 나섰다
가기전에
난 다짐을 했다
꼭 흰색이나 아이보리 따위
환한 빛깔옷을 사리라
절대로 까망은 사지않으리라
내맘에 쏘옥 드는 한벌을 골랐다
골라놓고 보니 흑잿빛이다
이리재고 저리재보아도
내게 까망 이상의 색은 없다
그제 누군가 입었던
아이보리빛 폭신한 외투가
너무나 예뻤는데.
뱅뱅
돌다가 돌다가
나의 테두리 까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마는 나
까만옷 까만신발
까만머리 까만가방
나는 까망이 좋다
밝은빛을 입고
그 빛에 눌려
어둔 내 맘을 주눅들게 하느니
그냥 이대로 까망을
달구사는 게 낫겠다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보태고
무엇을 끌어안고
무엇에 상처받아도
쉬이 드러나지 않는
까망이 나는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