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너는 고3 맞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아니면 그만 두려고 포기한 거야? 남들은 새벽 두 세 시까지 공부하느라 난리들인데 너 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서버렸다.
식탁위에 차려놓은 아침밥은 한 술 떠보지도 않고 나가버린 아이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이럴려고 이야기를 시작한 건 아닌데, 게다가 오늘은 내 생일이기도 한데. 겸상은 하지 못하더라도 미역국에 따뜻한 밥을 먹게 하고 싶었는데, 활짝 웃는 얼굴로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조금만 더 참아주지 못하고 던진 말 한마디에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상처를 입고 말았으니.
“엄마는 나를 그렇게 못 믿어? 지금까지 나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잖아. 누 구보다 불안한건 나야. 다른 아이들은 어떤지 알아? 고3이니까 늘상 보약 을 달고 살아. 그리고 부모님들이 공부하느라 힘들다고 먹고 싶은 것 다 사주고 밤이면 엄마들이 차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태워가고 그래. 그런데 나는 보약은 고사하고 매점에 가는 것도 눈치 보면서 생활하고 있어. 그 뿐인 줄 알아? 참고서도 친구들 거 빌려서 본단 말이야. 엄마가 힘들게 생 활하는 거 알기 때문에. 나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거 알고 있어. 그러면 엄마도 나를 믿고 좀 기다려 주면 안 돼? 엄마까지 그러면 나는 누굴 믿 고 생활해야 하는데?”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며 하던 아이의 말이 가슴에 걸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왔지만 어느새 아이는 그런 정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보면 용기를 얻어 새로운 희망으로 오늘까지 버티어왔는데.
새벽 6시면 집을 나섰다가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오는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아이도 나만큼 힘든 생활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준비하던 나는 다른 때보다 일찍 집에 온 아이를 말없이 맞이했다. 아이도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딩동’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휴대폰을 열었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희원이 친구 영애.’
순간 나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곧이어 문자 메시지를 알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딩동’
‘추카 추카. 정말 추카드려요. 희원이 짝 미라 올림.’
‘딩동’
‘사랑합니다. 생신 축하드려요. 희원이 친구 소라 올림’
그렇게 모두 40여 통의 생일축하 메시지를 읽고 나서 나는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말없이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에게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행복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