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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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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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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처럼 여울지다


BY 오틸리아 2022-08-12

 강의가 다 끝나고도 한참을 빈 강의실에 앉아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누가 붙잡을세라 벌써 도서관으로 휭 하니 들어갔을 텐데
왠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창문 난간에 쌓아둔 책 때문에라도 어차피 한번은 가봐야 할 텐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임 끝에 결국 나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번에도 계단 수를 세는 것은 깜박 잊어버리고
교련복이 앉아있으면 좀 비켜달라고 해야 할까...
아님 책들을 좀 꺼내달라고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도서관 입구에 다다르자 나는 몇 번인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중앙통로로 들어섰다.
고개를 쭉 내밀어 왼쪽 맨 끝자리를 살펴봐야겠는데 깁스라도 한 것처럼 굳어버린 고개는
비굴하게도 연회색 화강암으로 된 통로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양옆으로 책상과 의자의 다리들이 번갈아 몇 번 지나가고
마지막 의자를 지나 막다른 통로 앞에 멈춰섰다.
 
 슬쩍 고개를 돌려 왼쪽을 살펴보니 다행히 교련복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어 얼른 자리로 다가갔다.
난간 위의 책들은 아무렇지 않게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 없이 빈공간을 지키고 있는 책들을 보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왠지모를 처량함 비슷한 감정이 일었다.
이거는 뭐 셋방살이 하는 설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런 불편한 마음으로 계속 책들을 놔둘 수도 없어
자리를 옮기려고 책 위에 덮어둔 수건을 집어 드는 순간
수건 사이에서 네모난 딱지 모양으로 접힌 쪽지가 하나 툭 떨어졌다.
수첩을 북 찢어서 접은 듯한 쪽지에는 또박또박한 글씨체의 메모가 적혀있었다.
 
- 이 자리 혜주씨가 계속 사용하세요. 저는 곧 떠날 사람이니... -
 
 아마도 교련복이 써 놓은 쪽지일 것이었다.
그런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금방 답이 나오는 참 단순한 의문이었다.
지난 번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보고 내가 그의 이름을 알았던 것처럼
교련복도 내 책에서 발견했을 것이었다.
 
자리를 계속 사용하라니 참 다행이었고 곧 떠난다니 더 다행이었다.
다시 내주어야 할 일이 전혀 없을 것이므로.

그런데 어딜 떠난다는 걸까.
그리고 나한테 굳이 그런 걸 밝힐 이유는 없는데.
어쨌거나 나는 더 이상 누구의 눈치를 볼 일도 없이 나만의 안락한 자리를 획득했다는 것이
기쁠 뿐이었다.
 

璡에게서 받은 꽃다발이 내 방 책장 모서리에 거꾸로 매달린 채 적당히 잘 말라가고 있었다.
가끔 열려진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안개꽃 송이가 떨어져
책상위에 흩어져 있곤 했다.
검지를 꾹꾹 눌러가며 흩어진 꽃송이를 손끝에 모았다가 버리면서
이따금씩 璡의 존재를 떠올렸다.
 
학교로부터 걸어서 20분쯤 되는 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우리 집이라기보다는 나의 집이었다.
한때는 언니의 도피처였고 그 이전에는 엄마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집.
그 대를 이어 내가 도피처로 사용하러 오자마자 언니는 결혼을 해서 시집으로 떠났고
나는 또 언니처럼 엄마와 언니의 흔적이 남아있는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앞으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어 한가히 등산을 하기에 딱 맞춤이었고
뒤로는 비슷비슷하게 지어진 주택들이 골목길을 따라 오밀조밀하게 들어서있는
아담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주변의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내 집 울타리에도 장미넝쿨이 둘러싸여 있었고
마당 한켠의 작은 꽃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키 작은 화초들이
제각기 때를 맞추어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화초들 가운데 유일하게 우뚝 선 목련 한그루가 나와 늘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목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고 또한 나의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꽃이기도 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시던 아버지가 이집을 엄마에게 선물로 마련해 주시던 날
기념으로 식수를 하시면서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를 여러 번 흥얼흥얼 하시는 걸 들었다.
그리고부터 목련이 활짝 핀 계절이면 주말마다 그 집을 들르곤 하셨다.

엄마는 까닭모를 병을 오래도록 앓고 계셨다.
아마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였던 것 같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아련한 유년시절의 기억 중에 한 장면을 떠올리면
엄마는 늘 나를 당신 무릎에 앉히시고
‘내가 널 시집보낼 때까지만 살아도 좋겠다’ 는 말씀을 자주 하셨던 것 같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사나흘씩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엄마는 그 집에 혼자 계셨었다.
엄마에게는 그 집이 휴양소였던 것 같다.
엄마가 왜 그렇게 시름시름 앓으셨는지,
그리고 한참 엄마를 필요로 하는 우리와 떨어져 그 집에 가 계시곤 하셨는지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주말이면 남들은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과 일 텐데
나는 아직 입학 후로, 아니 이 대학에 원서를 내던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부모님이 계시는 집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곳에 남아 딱히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았다.
가끔 멀지않은 곳에 사는 언니가 밑반찬을 가지고 찾아오는 일 외에는
누굴 찾지도 누가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어차피 무언가를 꿈꾸며 시작한 홀로서기인 만큼 밋밋하게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주말이건 휴일이건 학교 도서관이 차라리 편했다.
도서관에서는 여러 경쟁자들이 눈에 보여 내 스스로를 채근해가며 긴장의 끈을 조일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의 도서관은 오히려 평일보다 면학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수업이 있는 학생들과 없는 학생들이 뒤엉켜 들락거리는 바람에
면학보다는 오히려 만남의 장소라고 하는 게 마땅할 터였다.
입구에서 서성대는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날에는 집중해서 머리를 혹사시켜야 하는 공부보다는 차라리 가볍게 머리를 식혀줄만한 읽을거리가 훨씬 효과적이었다.
 
밤새 수건을 덮어쓰고 숙면에 빠져있는 책들을 깨워 하나씩 꺼내보고
다시 차곡차곡 쌓다가 그 중 가장 두께가 얇은 책을 골라잡았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우울감을 자아내게 하는 이 책을
왜 자꾸만  읽게 되는지 모르지만 머리를 식히려고 골라잡은 책이 또 <생의 한가운데>였다.
어딘지 모르게 서로 닮은 듯한 주인공 니나와 나의 우상 전혜린,
그리고 어쩌면 내 자화상인지도 모를 한 여자의 모습이 자꾸만 디졸브되는 책.

우울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니나는 천천히 말했다.

온갖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

아무렇게나 펼친 대목에 언젠가 내가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파란만장, 격동적인 삶, 자유, 사랑, 고독, 신념, 우울, 자살 등등 나열되는 단어들마다에
진한 고뇌와 무게가 실려 있는 그 책을 도로 덮어버렸다.
무언가를 작심하고 시작하는 나에게 너무 무거운 것은 잠시 내려놓고 싶어졌다.
갑자기 지끈지끈해오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책상 앞 칸막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나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