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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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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친구


BY 한이안 2015-04-14

들은 뫼를 부른다. 대답이 없다. 순간 사라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가온다. 몸서리가 쳐진다. 꽝꽝 세게 문을 두드린다. 뫼가 감긴 눈으로 문을 열고 내다본다.

뭐야? 여태 자고 있고.”

안도감이 찾아들기 무섭게 들이 투덜댄다.

?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뫼가 눈을 비비고 나서 실눈을 뜨고 들을 바라본다. 일찍 깨어 달콤한 잠을 방해한 들이 귀찮고 못마땅하다.

일찍은? 해가 동동한데.”

들의 말에 뫼가 눈을 부비고 크게 뜬다. 햇살이 강하게 밀려온다. 눈이 부시다.

왜 이렇게 밤이 짧은 거야?”

뫼가 투정을 한다.

밤이 짧긴? 길기만 하더라. 한데 왜? 왜 그렇게 못 잔 사람처럼 비실비실하는 거야?”

못 잔 사람처럼이 아니라 못 잤어.”

? 뭐 하느라?”

들은 틈도 주지 않고 물어댄다. 뫼는 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뫼가 다시 침대로 가서 쓰러진다.

? 아침이야?”

들이 뫼의 팔을 잡아당긴다. 뫼도 만만치 않다. 끌려오지를 않는다.

? 일어나!”

조금만 더 잘게. 조금만.”

잠에 푹 전 목소리로 뫼가 애원을 한다. 들은 잡았던 뫼의 팔을 내려놓는다.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배가 고프다. 숲에서 따온 열매는 어제 다 먹어치웠다.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데 혼자 숲에 가서 열매를 따올 엄두가 나질 않는다. 몇 번 문을 열고 숲 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뿐이다. 문밖으로 나서질 못한다. 결국 주저앉는다.

배가 고파, .’

들은 뫼가 일어나줄 거라는 바람도 없이 혼자 중얼거린다. 역시 뫼는 일어나지 않는다. 침대에서 쌕쌕거리며 곤하게 자고 있을 뿐이다.

난 배고파 죽겠는데.’

그러다 들이 벌떡 일어난다. 뫼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화면에서 찾아낸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시들해진다. 찾아낸 게 있다면 깨웠을 때 벌떡 일어났어야 마땅하다. 뫼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때다. 삐삐하고 화면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들은 얼른 화면 앞으로 가서 앉는다.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 뫼가 신호를 보내왔을 때도 그랬다. 그녀는 침대로 달려간다.

, 일어나! 누군가 신호를 보내왔어. 빨리!”

뫼는 들의 말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잠은 싹 달아난다.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들의 말이 사정없이 그의 머리를 친다.

? 뭐라고? 신호가 왔다고?”
그렇다니까? 이리 와봐! 누군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들도 배고픔을 잊고 한껏 들떠서 말한다. 뫼는 한달음에 화면 앞으로 가서 앉는다.

어디야?”
들이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킨다. 뫼는 어안이 벙벙하여 위와 들을 번갈아 본다.

밖으로 나가자!”

들이 먼저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저기 있어?”

뫼도 하늘을 본다. 하늘엔 캡슐 네 개가 둥둥 떠 있다. 둘은 마구 손을 흔들어 보인다.

여기야! 여기!”

둘은 큰소리로 외친다. 캡슐이 서서히 내려온다. 자리를 잡느라 잠시 기우뚱거린다. 문이 열리고 넷이 캡슐 안에서 나온다.

안녕! 이쪽으로 건너와!”

뫼가 손을 흔들며 외친다.

그래! 이쪽으로 와!”

들도 거든다.

통로가 연결되고 넷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뫼와 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반가워. 난 뫼야.”

나도 반가워. 난 들이야. 니들은?”

들이 묻는다.

난 누리.”

난 이든.”

난 버들.”

난 아미.”

넷이 순서라도 정해놓은 사람들처럼 차례대로 읊어댄다. 너무 간격이 일정해서 기계적으로 들린다.

반갑다. 우린 우리가 다인 줄 알았어. 전파를 잡아내지 못했다면 너희를 찾아내지 못했을 거야.”

이든이 둘을 보며 말한다.

전파? 그런 게 있어? 그게 니들 화면에 잡혔어?”

뫼가 이상한 듯 묻는다.

. 이상한 전파가 잡히기에 근방을 뒤졌어. 그래서 니들을 찾아낸 거야.”
넌 누리라 했지? 그랬구나. 아무튼 반갑다.”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하다. 허전했던 옆구리는 웃음꽃으로 빵빵하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허전함을 밀쳐내지 못하고 억지 웃음을 웃어야 했다. 바람이 비켜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겁이 나서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도 힘에 겨웠다. 들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넷을 번갈아 본다. 꼭 꿈을 꾸고 있는 거 같다.

한데 왜 우리는 전파를 잡아내지 못했지?”

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을 바라본다. 들은 아미와 버들을 감싸 안은 채 웃음을 질질 흘리기에 바쁘다. 뫼가 그런 들을 툭툭 친다.

?”

왜 우리는 전파를 잡아내지 못했나, 해서?”

글쎄? 왜 우리는 잡아내지 못했지? 우리들 캡슐에서 전파를 내보내고 있었다면 쟤들 캡슐에서도 전파를 내보냈을 텐데.”

들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도 그게 이상하다.

그건 천천히 생각해! 그리고 모르면 좀 어때? 만났으면 된 거지. 한데 우릴 언제까지 여기에 이렇게 세워둘 거야? 난 반가워 죽겠는데 니들은 아닌가봐? 전파 따위에 매여서 우릴 이렇게 세워두기나 하고.”

누리가 살짝 핀잔을 한다.

홀대는? 그게 아니라·····.”

신경 꺼! 애 원래 이래.”

버들의 말에 들과 뫼가 ㅋㅋ하고 웃는다.

들어와! 우리도 많이 기다렸어. 엄청 많이. 둘 뿐일까 봐 얼마나 두려웠는데.”

들과 뫼가 길을 내준다. 넷이 뫼의 캡슐로 들어온다. 조용하던 안이 들썩인다.

니들이 오니까 이제야 사람 사는 거 같다. 한데 니들은 언제 만난 거야?”

뫼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묻는다.

우린 서로 멀지 않은 곳에서 깨어났어. 시차는 있었지만. 말하자면 길어. 니들은?”

우린 내가 먼저 깨어났어. 며칠 후에 뫼가 깨어났고.”

맞아. 난 들보다 늦게, 바로 여기에서 깨어났어. 그리고 신호를 보냈어.”

맞아. 깨어난 후 며칠 만에 뫼에게서 신호를 받았어. 그래 내가 이곳으로 온 거야. 우린 그렇게 만났어.”

뫼와 들이 들떠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뱉어낸다. 둘 다 누리와 이든, 버들, 아미를 만난 흥분을 쉬 가라앉히지 못한다.

그랬구나?”

아무튼 다행이야. 이웃이 늘어나서.”

맞아. 이웃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야. 넷이 있는데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립더라. 그런데 니들은 어떻게 지냈어?”

어떻게는? 숲에······.”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들이 말을 하다 멈춘다.

무슨 소리야?”
누리가 두리번거리며 묻는다. 들이 얼른 배를 움켜쥔다.

내 배에서 나는 소리.”

들이 수줍게 미소를 짓는다.

니들 아침 안 먹었구나?”

. 난 배고파 죽겠는데 뫼가 잠만 자자나. 아까부터 배가 고팠는데 니들이 오는 바람에 잠깐 잊었어. 얘는 잊지 않았나봐.”

들이 배를 가리키며 쑥스럽게 웃는다. 다들 들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난 숲이 무서워. 가보려고 해봤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못 가겠더라. 그래서 배고픈데도 이렇게 참고 있는 거야.”

들이 얼른 변명을 한다.

미안. 내가 얼른 숲에 가서 열매를 따올게. 잠깐만 기다려!”
뫼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누리와 이든도 따라나선다. 들과 별, 아미는 뛰어나가는 셋을 바라본다.

나도 숲이 무섭더만 쟤들은 아닌가봐?”

버들이 들에게로 시선을 옮기면서 말한다.

나도.”

뫼는 틀림없이 아니야. 어제와 그제는 혼자서 숲속까지 갔다 왔어. 사나운 짐승이 몸집이 작은 짐승을 잡아먹는 것도 봤대. 입주위에 피가 빨갛게 묻어 있더라나?”

들이 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둘에게 해준다. 버들과 아미는 몸서리를 친다.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데 뫼는 아무렇지도 않았데?”

아무렇지 않긴? 뫼도 무서웠대. 잡혀 먹힐까봐 그 큰 짐승이 잠들 때까지 움쩍달싹 할 수가 없었대.”

한데 겁도 안 나나?”

밖으로 뛰어나가는 걸 보면 그런 거 같은데?”

글쎄?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봤어.”

우리 이러지 말고 화면 앞으로 가서 찾아보자.”

들이 몸을 일으켜 화면 앞으로 걸어간다. 들은 버들과 아미가 오자 지원군이라도 온 양 힘이 솟는다. 눈빛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

뫼와 이든, 누리.”

어떻게?”

화면을 잘 움직이면 볼 수 있어.”

들이 화살표 단추를 눌러 화면을 이리저리 옮긴다. 아미와 버들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본다.

어떻게 알아냈어?”

심심해서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가.”

말을 하면서도 들은 여전히 화면에 눈길을 둔 채 손가락으로 화살표 단추를 누른다. 화면 속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잡힌다.

보여! ! 아미! 보인다고?”

한참 실랑이를 한 끝에 셋이 있는 곳에 다다른다. 버들이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들과 아미도 일어나 서로 부여잡고 뜀뛰기를 한다. 들이 뜀뛰기를 멈추고 다시 화면으로 돌아간다.

누구지?”

글쎄? 눌러보면 알 수 있어. 기다려!”

들이 화살표 단추를 몇 번 더 누른다.

누리네. 더 눌러봐! 나머지 둘도 있을 거야.”

들이 누를 때마다 조금씩 화면이 움직이면서 둘의 모습도 나타난다. 셋은 정신없이 열매를 따고 있다. 들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배고프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던 뫼와 이든, 누리가 고맙기 그지없다.

가까이에 열매가 가득해서 다행이야. 나도 좀 배가 고프긴 했어.”

버들이 자신의 배를 토닥인다. 들은 피식 웃는다. 아미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

왜는? 니가 웃기고 있잖아?”

아미가 버들을 놀린다. 버들이 입을 삐죽거린다.

내가 뭘?”
뭐는? 꼭 애기 같잖아.”

난 또 뭐라고? 싱겁게 웃음이나 흘리지 말고 화면이나 움직여! 재네들 오는 거 봐야 할 거 아냐?”

들이 버들의 재촉에 화살표 단추에 손가락을 올리고 누른다. 양 손 가득 열매를 따서 들고 돌아서는 모습이 잡힌다. 셋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히히덕거린다. 그러면서도 눈빛은 화면을 떠나지 않는다. 뫼가 발을 헛디뎌 기우뚱한다. 누리가 얼른 몸으로 뫼가 쓰러지는 것을 막는다.

기막히군! 잘했어, 누리! 역시 누리야. 열매를 흘리지도 않았어. 누리다워.”

버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들은 그런 버들을 어이없는 눈길로 바라본다. 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낯빛이다. 얼굴 가득 미소만이 잔잔하게 떠 있다. 그 사이 뫼와 이든, 누리가 집에 다다른다.

문 열어주고 올게! 문 앞에 다다르면 얘기해?”

버들이 벌떡 일어나 문으로 달려간다. 들은 화면으로 눈길을 옮긴다. 숨을 고르고 기다린다.

왔어.”

들의 말에 버들이 얼른 문 옆의 단추를 누른다. 문이 스르르 열린다. 뫼와 이든, 누리가 깜짝 놀란다.

! 뭐야?”

문이 저절로 열리기라도 한 듯 셋이 놀란다. 버들은 그런 셋을 보고 히죽인다.

어떻게 된 거야?”

이든이 놀람을 가라앉히고 묻는다.

니들이 여기 있더라.”

버들이 짝 편 손을 셋 앞으로 쑥 내민다. 셋은 어리둥절 한다.

화면에서 봤어.”
들이 다가가며 차분하게 말한다.

정말? 화면으로 우리가 있는 곳을 찾아냈어?”

뫼의 목소리가 웃음기로 출렁인다.

.”

니 말대로네?”
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 둘이 먼저 만났다고 지들끼리만 주고받고.”

누리가 서운한 기색을 드러낸다.

그럴 거 없어. 이리 와 봐!”
뫼가 이든과 누리를 화면으로 끌고 간다. 그리곤 화살표 단추를 눌러 화면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다.

이게 뭘?”

이렇게 하면 우리가 있는 곳을 화면으로 끌고 올 수 있어. 잘 봐! 우리가 아까 열매를 땄던 곳을 화면으로 불러올 테니까.”
뫼가 단추를 눌러 화면을 이리저리 옮긴다. 이내 열매를 땄던 곳을 찾아 화면을 고정시킨다.

맞아? 우리가 열매를 땄던 곳이야?”

이든과 누리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화면을 들여다본다.

들이 알아냈어. 어제.”
이든과 누리가 들에게 눈길을 옮긴다. 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 화면이 그런 거였어. 난 그냥 폼으로 달려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누리가 감탄을 토해낸다.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겠어.”

뫼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

누가 들여다보고 있을지 모르잖아.”

맞아. , 조심하지 않고? 히히덕거리는 것도 좋지만 열매를 들고 자빠지면 안 되지?”

버들이 화면에서 본 것을 가지고 짓궂게 뫼를 놀려댄다. 뫼가 머쓱해 한다.

장난이야.”

장난인 거 알아.”

한데 왜 낯빛이 그래?”
그냥. 모르겠어. 니 말은 장난이라는 거 알겠는데, 왠지 기분이 찝찝해.”

뫼도 자신의 기분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버들의 말뿐이라면 그냥 히히 웃고 넘겼을 것이다. 한데 엉뚱하게 찝찝한 기분이 끼어들었다. 그게 뭔지 영 느낌이 오지 않는다. 그냥 털어내기로 한다.

배고픈데 먹자!”

들은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먹고 있다. 뫼가 그런 들을 보고 어이없어 웃는다. 얼른 들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맛있어?”

.”

들의 대답은 짧다 못해 입안으로 말이 도로 기어들어간 듯하다. 손이 말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바삐 움직인다. 수북하던 열매가 속수무책으로 들의 입으로 끌려간다.

천천히 먹어! 그러다 탈나겠어.”

뫼가 넌지시 걱정을 드러낸다. 들이 손놀림을 늦춘다.

배가 너무 고파서 까무러치는 줄 알았어.”

들이 뒤로 몸을 젖히면서 말한다.

미안.”

뫼는 괜히 미안하다. 들이 배고픈 게 꼭 자신 탓인 것만 같다.

미안은? 그 놈의 잠이 웬수지. 7987년 동안 잠을 자고도 잠이 모자란 걸 보면 도대체 잠이란 놈은 뭐야? 잡히기만 하면 족쳐서라도 멀리 쫓아버릴까 보다.”

그 놈이 잡히기는 해준데? 잡히면 나야말로 가만 안 둘 건데? 쫓아버릴 게 아니라 난 아작을 낼 거야. 한데 니들도 7987년 동안 잠을 잔 거야?”

누리가 들의 푸념을 주워들고 힘껏 비튼다. 아자작 소리라도 나기를 바라는 듯하다. 하지만 누리의 손에 바스러지기에는 7987년이 너무 단단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 니들도야?”

. 우리도야.”

다들 고개를 갸웃갸웃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