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미가 흔들어 깨워주기 까지 난 잠꼬대에 시달렸다.
꿈에 대한 두려움, 뭐랄까? 막연한 공포라고 해두자.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
"도와 줘요~!" 라고 소리를 내려고 해도 입안에서만 맴돌 뿐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의 공포감. 일어나서도 한참동안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이병원에 있는 자체가 내겐 공포라는걸 태연한척 숨기고 있었지만 마음속엔 늘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윤자 언니대신 아침 배식을 마치고 들어오자 영란은 퇴원을 한다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 버리고 가야지!"하면서 막상 버린건 쓰다가 남은 빨랫 비누와 세숫비누, 쓰레기 뿐이었다.
남은 샴푸와 린스를 혜미rk 달라고 하자 안된다며 버리고 몸만 간다고 했다.
혜미와 나는 서로 얼굴만 보고 소리나지 않게 웃었다.
사실 병실 식구들은 그녀가 자기 소지품을 가져 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간 후 창문을 열어 젖히고 메트리스를 들어 올렸다.
깔끔한척은 혼자 다 하더니만 더 엉망이었다.
깨끗하게 청소를 한 후 1주일 이상 씻지 않고 있는 미란과 은주를 씻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미란은 자진해서 씻었고, 은주는 씻기를 거부했다.
결국 손 보호사님께 도움을 청해 씻게 했다.
은주는 샤워실로 가면서 말했다.
"아~씨~! 다 일러 바쳤어~!"하고 크게 소리쳤다.
나와 혜미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항상 자신 만의 세계에 빠져 혼자 중얼 거리고 성경책을 읽거나 찬송가를 부르다가 묻는 말에 웃으며 조용하고 얌전히 대답하던 은주에게 이런 면도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소를 마치고 TV를 보는데 손보호사님이 병실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민지수님~!"
"네?"
했더니만 빙그레 웃고 가셨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흐뭇해 하시는 표정을 알수 있었다.
갑자기 뽀빠이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 오시더니 은주 자리에 누워버렸다.
"할머니! 일어 나세요~! 할머니 방으로 모셔다 드릴께요."
"이 늙은 년이 어딜 건드려?"
뽀빠이 할머니 역시 유할머니와 마찬가지로 퇴행하고 있었다.
할머니를 일으키려고 하자 힘이 얼마나 좋은지 나 혼자 힘으로는 감당 할수가 없었다.
손보호사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젊은 언니~! 빨리 일어나서 언니 방으로 가자~! 응?"
"싫어~!"
"언니~! 여기가 어딘지 알아?"
"응~ 알아~ 빈센트 병원이잖아 바보야~!"
손보호사는 할머니를 일으켜 밖으로 모시고 나갔다.
아침 전화시간에 내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아이 열번째 생일인데 챙겨 주지 못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아픈 마음을 누가 알까? 소리치고 가슴을 때리고 울고 싶었다.
내 존재, 나란 인간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웃어야 했다.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그렇게....
이젠 나도 슬슬 정신줄을 놓아버리는것 같다. 정말로 돌아 버릴듯.
11시30분, 1시30분..... 거의 2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깨었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늘 쫒기거나 술병을 감추기도 하며 혼자 아파하고 울다가 지치고, 또 지치고...
계속되는 악몽에 잠을 설쳤다.
내가 이병원에 입원한지 20일이 지났다.
금새라도 죽어 버릴듯, 세상의 종말이 온듯한 기분으로 몇일 못 버티고 미쳐버리고 말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잘 버텼다.
그래도 제법 적응을 잘 하고 있는것 같다.
그동안 사람도 많이 사귀었고 다루는 법도 터득했다.
단순 무식한 사람은 살살 타일르듯 하면서 혼낼땐 따끔하게 다루어야 하고 조울증 환자는 스스로 다가올 때 까지 내버려 둘것이며 정신 분열증 아이들 말은 가끔씩만 들어주고, 간단하게 대답해 주고 단호하게 거절야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예의를 지키고 따뜻하게 말한마디 해줄것.
그들에게는 너무 가까이 다가서지 말아야 한다.
역겹다. 나이드신 양반들이야 그렇다 치고 젊고 사지가 멀쩡한 것들이 잘 씻지도 않는다.
머리에 허옇게 내려 앉은 비듬.
가까이 가는것 조차 역겨웠다.
우리방 은주와 미란역시 마찬가지 였다.
미란은 유산 상속 문제로 복잡해서 잠깐 들어와 있다더니 쳇머리 흔들 듯 몸을 흔들고 한말 되풀이 하며 당췌 말귀를 못 알아 듣고 잘 씻지도, 옷을 갈아 입지도 않는다.
속옷을 빨아서 빨래 건조대에 걸쳐 놓은걸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하긴, 그러니까 이곳에 들어왔지.
매트리스 위엔 허연 비듬과 각질로 뒤범벅이 되어 있고 배개위엔 걸레인지 수건인지 구분되지 않는게 꼬깃꼬깃하게 엊혀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코풀어서 뭉쳐놓은 휴지가 수북히 쌓여 있다.
이런 생각만 하면 다이어트는 문제가 없을 듯 했다.
나는 은주를 깨웠다.
"왜 자꾸 나만 갖고 그래요?"
하며 따지고 들었다.
낮엔 늘어지게 자고 밤만되면 혼자 중얼 거리며 노트를 쓰다듬고 비벼대서 시끄럽게 남들 까지 방해를 한다.
기껏 잠에서 깨워 세수를 하게 했더니만 앉아서 중얼 거리다가 또 노트를 쓰다듬더니 입을 맞추고 나서 실실 웃더니만 김정일 처럼 손뼉을 쳤다.
담배 때문에 여기 저기서 난리가 났다.
이번 간식때 담배가 들어 오질 않았단다.
여기 저기서 빌리고 난리, 다른것과 바꾸기도 하고 그때문에 보호사들로 부터 혼나거나 C/R에 가기도 했다.
이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노트 비비는것에 열중하는 은주에게 살며시 물어보았다.
"은주야~! 그 노트 나좀 볼수 있어? 곤란하면 관두고....."
은주는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으며 노트를 내게 건냈다.
펼쳐보니 아가서 크리스티, 생택쥐베리,헤밍웨이등 영화나 드라마 대본을 쓴듯 <YES,NO>사람 이름등을 써 놓았다.
아마도 나는 은주가 자기세계에서는 시나리오 작가일거라고 생각했다.
"은주야! 넌 신랑하고 싸운적 없지?"
그러자 은주는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언니, 나두 잘 싸워."
"뭐라그러면서 싸우는데?"
"남편이 화내면서 욕했어! 뭐라고 했냐면, 씹탱아~! 그러는거야."
"그래서 가만뒀어?"
"아니, 나쁜놈아~! 그랬지."
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병실안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야~! 그걸 싸움이라고 했냐? 아이고~ 배아파서 나 죽는다."
저녁 7시 전부터 전화 통화 대기자 구경에 나섰다.
항상 앉아 있는 멤버가 거의 비슷하다.
휴게실 기둥 근처에 윤애경, 미정, 미애가 앉아 있는걸 보더니 영자 언니가 한마디 했다.
"완전 3종 세트로구만~!"
이때 뽀빠이 할머니가 곁으로 오셨다.
연세는 별로 드시지 않았지만 치아가 없는 관계로 80이상은 되어 보였다
혀로 잇몸을 더듬으며 메롱메롱 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영자 언니가 한번 흉내를 내자 신나서 더 하셨다.
두분이서 메롱을 한참동안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미란은 바지를 거꾸로 입고 다녀서 몇번을 얘기 해 줬지만 그것마저 귀찮은지 그냥 입고 다녔다.
이상하다. 이제 내가 없는 집에 적응이 된걸까?
내가 없으니까 편해서 생각조차 나지 않는건가?
아님, 날 이곳에 처박아 놓고 신이 난건가?
어쩜 나란 존재를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잊어 버리려고 하는걸까?
1주일이 지나도록 연락 한 번 안했는데 조금도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우리안에 갇힌 가축 처럼 주는 대로 먹고 자고 싸고.
비참해졌다.
방에서 누워 잠을 자려고 했다.
옆에 누워 있던 여자가 가슴에 올려 놓은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렇게 잠이 들려고 하다가 그녀가 남자라는 걸 알았다.
위는 분명 여자인데 아래는 남자의.....
배신감에 그를 외면 했다.
그는 끊임없이 아늘 이해시키고 설득하려 했지만 나는 조금도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병원을 옮겼다.
언덕위에 병원 환자들이 주의 사항을 듣고 병실을 배정 받았다.
집 옷장에 숨겨둔 소주를 찾아 차곡차곡 개 놓은 이불 속과 옷 사이에 손을 넣었다.
빈병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부딪혀 소리가 날까 조심조심 그것들을 방바닥에 내려 놓았다.
반쯤 먹다남은 소주 두병과 아직 따지 않은 두병을 조심스럽게 갖고 내 이불속에 숨겼다.
조심했는데도 불구하고 병들끼리 부딪혀 작게 소리가 났는데옆에 있던 모르는 남자가 그 소리를 듣고 "일러바치겠다"고 했다.
이때 그 친구가 내가 갖고 있던 소주병을 살며시 빼내어 재빠르게 숨겼다.
별로 반갑거나 고맙지 않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공터에 나가 소주를 마셨다.
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와 나를 말렸지만 차갑게 외면하고 한병을 다 마셔 버렸다.
음주 측정이 있다고 해서 술을 깨려고 물도 마셔보고 제제라 걷긴나 뛰기를 반복했다.
그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묘비~! 영어로 쓰여진 묘비명이 보였다.
그의 이름은 <해리>였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해리.
그때서야 난 해리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고 그동안 외면한것에 대해 후회를 하며 울었다.
나를 위해 모든 걸 다 준 해리~!
차가운 그의 묘에 옆드려 용서를 빌며 한없이 울었다.
"언니~! 언니!"
혜미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꿈에서 울엇 던 것 처럼 난 또 잠꼬대를 하며 심하게 울었던 것이었다.
배게가 흠뻑 젖어 있었고, 혜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도 건넸다.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 서럽고 무서운 생각에 .
나는 생각했다.
가족들이 나를 입원시킨 것에 대한 원망, 음주에 대한 갈등과 후회, 불안감
이런것들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우리방 제일 언니인 정희님이 퇴원 하셨다.
은주는 부러웠는지 집에 전화 한다고 밖으로 나갔다.
미정은 202호로 쫒겨 갔다.205호 환자들을 얼굴을 다 할퀴어 놓았단다.
나한테는 웃으며 잘하던데 자기보다 만만해 보이면 그러는 모양이었다.
윤자언니가 점심 식사전에 돌아와 다시마 한봉지를 건냈다.
미순 언니는 미란에게 심하게 화내는걸 보고 그녀가 나가자 다가와 내게 물었다.
"미순 언니 왜 그래?"
"그럴일이 좀"
"뭔데?"
"물은 말 반복해서 피곤하게 하니까 그런 모양이예요".
"돈은 많은데 소송 때문에 잠깐 들어 와서 머리 식히러 왔다는 얘기?"
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순언니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미친년, 오늘은 30억이래. 어젠 다들 얘기 안들어 주니까 간호사 붙들고 재판이 어쩌구 저쩌구 지랄 떨더니만.
가뜩이나 머리아파 죽겠는데...."
"하하하 그게 병이야!"
하고 윤자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4시 기상.
꿈과 잠꼬대에 시달리다가 혜미의 도움으로 뀸에서 깼다.
또 술을 숨기거나 허허 벌판에 쓰러져 있는 그런 꿈이었다.
몸의 상처는 치유될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기 어렵다.
아침 부터 황 보호사 심기가 많이 불편한듯 했다.
특히 혜미에게 감정이 많이 쌓여 있었다.
내가 생각혜도 혜미는 약간 버르장머리가 없긴 하다.
욕도 잘하고, 어른들에게 반말도 잘하며 때론 알랑거리다가도 획하고 토라져 버리는.
스물 두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모진 풍파에 시달린 것 같았다.
가만히 보면 어쩜 혜미도 내가 받은 상처 만큼, 아니 더 깊은 상처를 입어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혜미는 평소 그렇게 벼르던 황보호사에게 아침 부터 찍히고 말았다.
말보루를 피우던 애가 라일락을 피우다가 걸린것, 누가 줬냐는 말에 대답은 안했지만 통박을 굴리지 않아도 다 알만 했다.
내가 아침부터 혜미에게 조심하라고 그렇게 경고 했건만.
그렇게 타이르고 황보호사에게 찍힐짓은 하지 말라고 했건만 전화걸며 욕을 해대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도 또다시 다른 사람의 담배를 피우다가 걸리고 말았다.
한건 올려 담배 한대 얻어피려고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는 재영이 년에게 딱 걸리고 말았으니 그 성질에 가만히 있을까?
재영과 서로 욕을 하고 싸우다가 말리는 황보호사에게 욕까지 하고 말았다.
혜미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저항하다가 건장한 남자 몇명에 의해 C/R로 끌려 들어갔다.
한참동안 비명 소리가 들렸다.
환자들이 웅성 거렸다.
다들 재영이 먼저 혜미를 때렸다고 했다.
황 보호사가 혜미예게 욕을 했고 혜미가 그에 대해 따졌다.
"어따대구 욕이야? 씨발년이라고 욕했잖아?"
"내가 언제 욕을 해? 엉?"
잡아 먹을 듯한 표정이었다.
혜미는 그렇게 C/R로 끌려 들어 갔다ㅓ.
혜미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 난 진정제를 강제로 맞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휴게실의 술렁임이 잠잠해 졌을 때 또다시 악쓰는 소리에 나가 보았다.
보호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 끈이 모자르네"
하자 간호사란게 대답했다.
"오늘 2병동 대박이네요."
하며 간호사실로 들어갔다.
대박이라니? 근처에 있던 환자들 어안이 벙벙 다들 기가 막힌 얼굴이었다.
4시가 지나도록 간식도 지급되지 않고 어수선 했다.
저녁 식사전 혜미가 씨알에서 나왔는데 많이 지쳐 보여 안쓰러웠다.
"혜미야~! 괜찮아? 진정제 맞았지?"
"아니..."
"좀 누워서 쉬어."
분명 진정제를 맞은것 같았는데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코를 골며 잤다.
6시가 넘어서야 주문했던 간식이 지급되고 은주는 남편이 사온 빵을 같이 먹자고 해서 한개 먹었다.
투약 후 영자 언니가 와서 오늘 벌어졌던 소동에 대해 얘기했고, 황보호사, 숙자, 재영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처음부터 난 위 세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보호사는 <주임>이란 직책이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듯 어깨에 힘을 주고 환자들을 경멸이나 무시하는듯 쳐다보며 반말도 서슴치 않았다.
게다가 사소한 것으로도 사람 기분상하게 하고, 간식이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건에 대해서 별것 아닌것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나는 항상 그런 그를 무시해 버렸고 재영에겐 따끔하게 야단치고 가끔 등짝도 세게 때려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방화벽을 쌓았다.
미세스 박 과는 안 부딪히려고 하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박은 환자복이나 배식에 관여 하므로
아침에 만나면 깍듯이 인사하고 배식때도 헛점 잡히지 않도록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결과 미박은 나를 보면 환하게 웃으며 내 성질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너무 잘해줘서도 안되고 함부로 막 대해서도 안된다.
가축이나 애완용 동물이 아닌 인격체이므로.
혜미는 머리끄댕이에 주먹으로 맞았다고 했다.
나참.... 건장한 사내들이 여럿이 잡았는데 황 보호사가 머리끄댕이에 주먹질이라니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감정에 못이겨서.....
물론 혜미에게도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궂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었다.
남자가 자기 딸같은 여자아이에게 ....
소등전까지 손보호사, 영자, 윤자 언니와 낮에 벌어진 사건과 병원 직원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보호사님! 병원 직원들 밖에서 신는 신발좀 신고 여기 다니시는건 좀 그렇지 않나요?
환자들 맨발로 다니는데요. 실래화를 신은 것도 아니고 구두를 신고다니다니요.
여기가 무슨 동물원도 아니고 축사도 아니고 환자들 있는곳인데 개념도 없이...
무개념. 골통이 얼마나 비었으면. 조금만 생각있는,
남을 조금만이라도 배려했더라면 이런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을....
취침전 화장실에 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알코올로 들어온 이씨 아줌마가 변기에 올라 앉아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아줌마~! 변기 깨져~! 빨랑 내려와"
하자 이씨아줌마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대답했다.
"오흐흐~ 변기 더럽단말야"
"나참... 언제부터 깔끔 했다구.....난 몰라~ 변기 깨지면 아줌마 탓이야."
하고 웃으면서 나왔다.
새벽녘까지 비슷한 악몽에 시달렸다.
술을 마시고, 숨기고, 들키지 않기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그것 때문에 불안해서 또마시고, 그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고.....
입술이 터지고 찢어져서 피가났다.
목은 부어 따끔거리고 목소리도 변했다.
어제 재 입원한 미진을 보니 심난했다.
커피를 마시며 윤자 언니와 얘기했다.
"언니~! 저 술 마시고 나면 다음날 늘 살갗이 에이는듯 아팠어요. 잠을 잘못잤거나 어딘가 알게 모르게 부딪혔거나 근육통이 었나봐요. 언니는 어땠어요?"
"아~ 너두 그랬니? 그거 근육이 빠져나갈때 나타나는 증세란다. 나도 그랬어. 하다못해 머리 가죽까지 아프지 뭐냐."
"아~ 그랬구나. 언니는 술은 주로 한군데서 사셨어요? 전 돌아다니면서 사고 숨기고..... "
"하하하~ 나도 그랬어. 한번은 집앞 슈퍼, 또한번은 좀더 먼 곳......숨기는 건 당연한거고...."
알코올로 입원한 환자들은 거의 다들 그랬다.
이말에 미순언니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아유~ 씨~ 난 밤새 잠을 못잤어~!"
"아니, 왜?"
"삼겹살에 소주 생각이 얼마나 나던지..... 죽는 줄 알았다."
윤자 언니와 나는 소리 내서 웃었다.
윤자언니는 술에 대해 "이번에 끊지 않으면 다 끝장이다"하는 생각이었고, 나는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윤자 언니는 너무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더 괴로워하며 부담 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언니~! 그냥 편하게 생각해요. 술도 먹는 음식인데..... 전 꼭 끊어야 겠다. 뭐 이런 생각은 안해요. 그러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긴 하네요.
아침을 먹고 작은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며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미란이를 시켰다.
제일 지저분하다. 안씻고 안치우고, 냄새를 풍기며 잘난체만 하는게 얄미워서 더 시켰다.
지하철 청소하듯 했지만....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지에 엷게 피가 묻어져 나온걸 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건가?"
아랫배도 살살 아프더니만....
알코올성 이었던 걸까? 다 끝난줄 알았는데...
아직은 여자인가 부다.
오늘은 올까? 그 누구도 기다리지 말자고 나를 타이르고 마음도 굳게 먹었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던것 같다.
일이 바빠 못오려니 하고 생각하고 나를 위로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허전함과 서운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회진시간.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난 내 담당의사에게 수면 장애 문제외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역시 잘잤는지, 잘 먹는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특별히 할 말도 없고 누구보다도 알코올에 대한건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만인가?
아무리 의사와 상담을 하고 안된다 해도 내 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 없다는걸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폐쇄 병동에 입원해 1년이 아니라 수년이 지나도 내가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실수 있는게 술 아닌가?
가장 중요한 건 내 의지와 노력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 뿐이었다.
하늘이 흐리다. 창밖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걸 보니 바람이 부는것 같다.
오늘도 역시나....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는 듯 하면 여지 없이 억소리 나는 얘기를 하며 들이대는 미란.
못들은 척 하고 무시했더니만 다시 질문하지 않았다.
같은 말을 되물어 피곤하게 만든다.
우울하다. 울고 싶은데 그럴수 없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강한 척은 하지만 한없이 나약하다는.
눈물이 나려고 한다. 참아야지. 강해져야 한다.
빅어먹을!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된장들아~!
나가서 보자. 날 이렇게 만들것들. 가만두지 않겠어. 내가 받은 고통과 모멸감을 천배 아니 만배 이상 더 갚아 주겠어. 두고 보라구! 이가 갈려~!"
재입원 했다는 미진는 뭐에 꽂혔는지 같은 자세로 거의 미동도 없이 벽에 기대어 멍때리고 있는다.
어쩐지 약간 불쌍해 보인다.
작은 키에 뚱뚱하고 커다란 가슴이 배까지 내려와 있다.
아침 샤워를 마칠쯤 재영이가 은경, 복례 아줌마와 함께 들어왔다.
냄새가 얼마나 심하던지 머리가 띵하고 빙 돌았다.
난 코를 막고 세탁중이던 속옷을 들고 정신 나간 여자처럼 부랴부랴 나왔다.
다들 배가 만삭 수준이었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빨래를 헹구어 건조대에 널었다.
윤자언니가 내민 다시마와 호박씨를 먹고 있는데 미진 이 쳐다보았다.
" 미진아! 좀 먹어봐~!"
"싫어요~1"
하더니 나중엔 걸신 들린 듯 먹어댔다.
부시럭 소리만 나도 눈을 시뻘겋게 뜨고 달려든다.
윤자언니가 넌즈시
"조심해. 잰 아주 봉을 뺀다니까."
알려주었다.
어제 재입원한 C/R 여환자는 우리 방으로 올것 같다.
그쪽 역시 식신이라고 했다.
혜미는 내일 퇴원한다며 좋아라 했다.
홍탁은 또 숟가락을 몰래 갖고 있다가 허 보호사에게 또 들켜서 혼났다.
아마도 숟가락에 꽂힌 모양이었다.
이 병원 환자들의 특징은 한가지에 꽂히면 다른것에 관심 갖기 전까지는 그것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은경은 시계, 홍탁은 숟가락, 은주는 시나리오 노트, 미애는 담배와 전화, 애경은 개, 틀니낀 할배는 신문에 꽂혀 있었다.
바람기가 많았던 할아버지는 <제 버릇 남주냐>는 맗이 무색하게 작업에 몰두 한다.
내가 그렇게 눈치를 줘도 그때 뿐이었다.
다 병이려니 하는 수 밖에....
마 할머니는 하루종일 옷을 찾아 돌아다니고 슬리퍼를 들고 다니며 집에 간다고 난리를 쳤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싯구절이 생각난다.
누구였던가? 중학교 다닐때 쯤 외웠던.
그래도 난 만나고 싶고, 보고 싶다. 내 아이와 가족.
오늘도 그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내가 바보지. 지쳐 가는 것 같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
미련 곰탱이라고 스스로를 놀렸다.
바보 멍청이~! 기다리지마~! 오지 않을 거니까~!
미진 은 남의 컵을 자기 컵인듯 자기 자리로 갖다 놓았다.
그렇게 미진의 심술이 시작 되었다.
그중 내가 제일 만만해 보인 모양이다.
혜미의 퇴원을 축하해 주기 위해 자기 사물함 안에 있던 과자들을 꺼내 서로 나눠먹었다.
나도 퇴원해서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랬고, 그렇게 얘기 해 주었다.
한달만에 다시 입원 했다는 김 윤아는 윤자 언니가 빨래를 하러 나간 사이 우리 병실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담배와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것 같았다.
소등 후 까지도 그녀의 엽기적인 행각이 계속 되었다.
나는 열받아서 한판 붙으려다가 참았다.
커다란 키에 유난히 하얀얼굴, 머리는 산발을 하고 스윽슥 발을 질질 끌며 귀신처럼 방을 들락 거리며 중얼 거렸다.
"담배, 먹을것좀 줘.... 담배 피고 싶어......"
TV를 보고 있는데 미진은 전 자야 한다며 전원을 끄려고 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보고 있는데 제 멋대로 하려고 했다.
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보고 있잖아! 시끄러우면 나가던지. 병신 가지가지하네~"
했더니 조금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자꾸 못된 행동을 하면 본데를 보여 줘야 겠다.
나를 비롯해서 모두 스트레스 제대로 받을 테니까.
C/R에 들어갈 각오도 되어 있다.
가끔 혼자서 생각에 몰두하고 그동안 못했던 노래를 불러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 벼르고 있으니까...."
낌새를 알아차린걸까?
병실 문을 열면서 부터 미진 은 한참동안 날 쳐다 보았다.
내가 위 아래고 훑어 보았더니 먼저 겸연쩍은듯 고개를 돌리고 나갔다.
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게 발을 내밀어 문을 고정시키고 볼일을 보는데 미진이 노크도 없 이 문을 활짝 열었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미안한 듯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문밖으로 내밀어져 있는 내 발을 손으로 스윽 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나는 몇초 정도 기다리다가 발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내발을 손으로 또 밀어 넣었다.
옆 화장실이 두개가 비어 있는데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난 또 한 번 발을 문 밖으로 내밀었다.
역시나 내 발이 그녀의 손에 밀려 들어 왔다.
웃음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급하게 뒷처리를 하고 나오면서 말했다.
"냄새가 좀 날텐데...."
"괜찮아요.
혜미가 퇴원했다.
혜미에겐 잘된 일이지만 난 우울하다. 다른 환자들도 마찬가지 겠지만.
미진은 나 없는 사이 자꾸 창문을 열어 제꼈단다.
"세진씨 더워?"
"네"
"아까 환기는 다 시켰고, 다른 사람들 감기걸려서 추우니까 문 닫아야 돼!"
하고 다시 문을 닫았다.
창문 열기를 멈추더니 이번엔 미순언니 보고있던 TV를 끄고 조금 있다가 아직 병실로 들어 오지 않는 윤아의 이름표를 떼어 화장실에 버렸다.
미순언니가 한마디 했다.
"남의걸 왜 떼?"
미진은 아무말 없었다.
"그냥 놔둬! 황보호사가 물으면 본 그대로만 말해!"
내 말에 미진은 TV를 끄고 밖으로 나갔다.
"미순언니! TV볼거면 켜고, 한 번 더 그러면 따끔하게 혼내. 언니 여기 스트레스 받으로 온거 아니잖아. 저런 애는 초반에 잡아야해. 안그러면 퇴원하는 날까지 힘들어."
"그래, 알았어."
이때 뽀빠이 할머니가 어느새 방으로 들어와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ㅓ.
"할머니! 여기 할머니방 아니예요."
하고 말하자 할머니는 밖으로 나가셨다.
미순언니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냥 닦게 내버려 두지."
"웬만하면 그러려고 했는데 걸레가 더러워서....."
자리를 한칸씩 옮겨 내가 은주 옆으로 갔다.
은주는 있으면 다 주는 성격이라 누군가 옆에서 챙겨 줘야 한다.
윤아가 은주 옆에서 머물게 된다면 크게 손해 볼 것이며 나역시 스트레스를 받게 될거라는 생각에 자리를 옮겼다.
그랬더니 은주가 많이 좋아했다.
나는 황보호사의 허락을 받아 이름표를 바꿔 붙이고 자리를 옮겼다.
점심 식사후 미순 언니가 잘 보고 있는 TV를 시끄럽다며 이 또 꺼버렸다.
"왜?"
"시끄러워서."
난 미진을 나무라며 TV를 다시켰다.
":시끄러우면 나가던지."
이젠 병실문을 소리나게 힘껏 열고 닫는다.
어디 또 한번 해 봐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은주와 함께 병실안에서 상을 펴고 저녁을 먹었다.
요즘 은주는 많이 좋아졌다.
낮잠을 자는 시간도 줄고 얼굴도 밝아졌으며 공상에 빠져 있는 시간도 약간은 줄인 듯 했다.
7시가 조금 넘어서 휴게실에 갔다가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퇴원한 혜미가 사실 다른 병원에 재 입원 하게 되었다는 얘기었다.
혜미는 그 사실도 모른 채 퇴원하는 줄 알고 좋아하며 나갔는데...
떨떠름한 기분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벽에 기대어 멍하니 있었다.
영자언니가 노크를 하고 들오왔다.
"4시쯤 혜미 엄마가 이병원으로 재 입원 요청을 했는데 안받아 준다고 했대. 사고를 좀 쳤어야지. 서울 쪽에선 혜미를 받아줄 곳이 없대. 그래서 전라도 쪽으로 알아보라고 했단다.
그쪽은 최소한 1년이래."
착찹했다. 혜미가 많이 안됐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혜미도 아주 나쁜 애는 아닌데...... 조금만 감싸주고 다독거리면 잘 적응할수 있을 텐데. 왜 그랬대요?"
"내가 아니.... 혜미 엄마도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너무 했다 싶긴하다."
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이병원에선 왜 안받아 준데요?"
"넌 모르겠구나. 골치 아프니까 그렇지. 사고를 한 두 번 친것도 아니고......"
"불낸거요?"
"그것 말고도 있어.
이 병원에서 다른 환자랑 눈맞아서 별짓을 다했단다.
어디 그것 뿐이냐?
너 들어왔을때 있던 젊은 보호사 봤지?"
"네."
"걔도 혜미 때문에 잘린거야. 둘이 좋아했단다."
"좋아 할 수도 있는거 아녜요? 사람인데....."
"너 화장실 문잠그는게 왜 하나도 없는 줄 아니?"
"아뇨."
"야~ 거기서 지랄들 했단다."
"네?"
"그래서 다 없애버린거야."
"아~ 그랬구나.... 어떻게 병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요?"
"못일어 날건 또 뭐니, 다 사람사는덴데......"
"그래서 소문에 혜미가 남자라면 사족을 못쓴다고 했구나....."
"아이고~ 또 젊은애 신세 망쳤네. 잘못하면 평생을 썩을수도 있는데....."
영자 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병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투약 시간 미진은 방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의 사물함 박스를 들고 나오더니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다들 킥킥 거리며 웃었다.
208호의 미애가 병실로 들어왔다.
미순언니에게 담배를 몇모금이라도 얻어 피우려 온 것이었다.
난 미애 에게 물어 보았다.
"자긴 여기 왜 들어 왔는데?'
"저두 몰라요.... 아무것도 잘못한게 없는데 왜 입원을 해야 했는지 몰라요."
"잘 생각해 봐~! 그래야 빨리 나간다."
하고 난 대답해 주었다.
윤아는 또 우리방을 들락날락 거렸다.
"야~! 자꾸 왔다 갔다 하지마~!"
하고 으름짱을 놨더니 이젠 오지 않는다.
10시 소등후 또 들락 거리면 호되게 혼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은주는 전화 시간에 이씨 아줌마와 화투를 쳤다.
"은주야~! 누가 이겼어?"
하고 묻자
"내가 이겼어. 청단, 풍약."
하면서 기분좋게 웃었다.
은주가 기분좋아하는걸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투약전 은주는 내 쇄골 쪽을 손바닥으로 먼지털듯 슬며시 비볐다.
"왜? 뭐 묻었어?"
"응~ 아니네."
혈관이 비치는게 뭐가 묻은줄 안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기다림에 대한 꿈을 꾸다 잠에서 깼다.
나를 이곳에서 내보내줄 사람, 그를 기다리고 있는 마음이 무의식, 의식에서 갈등하고 있는 듯 했다.
아닌듯 나를 감추고 있지만 사실은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가 왔으면 하고 말이다.
못 본지 15일이 되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건가?
나를 이곳에 쳐 박아 놓고 방치해도 되는 건가?
바빠서 그렇다고 겉으로는 나를 위로하고 아닌척 하지만 사실은 원망반 그리움 반이라는.
두렵다.
혹시 나도 혜미와 같은, 아님, 미애 처럼 3개월이 6개월되고, 1년에서 더 나아가서는 수년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이곳에 와서도 남은 챙기면서 왜 나자신은 챙기지 못한건지. 나르시시즘 부족인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일까?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사랑할까?
그래, 그 누구도 사랑할 자격이 나는 없다.
비참해 진다.
다 원망스럽ㅈ다.
나 자신은 더욱더.
이렇게 나오면 우울증 말기라고 하겠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게 정신과 아닌가?
영자 언니의 욕으로 아침이 시작되었다.
"어떤 씨부랄 놈이 세탁기에 수건 넣었어? 에이 씨발~"
아침 배식을 마치고 빨간 앞치마를 깨끗하게 세탁해서 건조대에 널고 tv를 켰다.
미진이 날 쳐다보더니 원래대로 누웠다.
아마도 tv를 누가 켰는지 확인하려는 듯 했다.
이곳에 와서 배우고 느낀 점이 많다.
어디서든 내 위치를 확실히 할것이며 사람은 초반에 잡아 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박박기고 살아야 한다.
여기 온지도 거의 한달이 되어간다.
그동안 노력의 결과 누구도 나를 깔보거나 미워하지 않아 참 다행이다.
만일 내가 조금만 바보처럼 행동 했다면 무시당하고 얻어터지면서 욕이나 먹었겠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앉아 있는데 윤자언니의 사물함 박스에서 미진이 새우깡을 꺼냈다.
난 소리쳤다.
"야~한미진! 뭐하는거야?"
들은체 만채하는 미진에게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제자리에 안놔?"
했지만 막무가내 였다.
박스위에 책을 올려 놓더니 새우깡을 들고 자기 자리로 가려고 했다.
"제 자리에 노라구~! 야이~! 미친년아, 내말안들려?"
하자 박스위에 새우깡을 집어 던지고 자기 자리로 갔다.
난 새우깡을 박스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지랄이야. 나참...."
다들 멍하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 보았다.
휴게실에선 은정이 박수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다가 황주임에게 떠밀려 방으로 들어갔다.
은주는 씻은지 몇일 지난터라 살살대래 샤워실로 보냈다.
자꾸 닦도록 유도 해야 겠다.
윤아은 하루 종일 우리 병실을 들락 거렸다.
"담배 있어? 먹을거 있어?"
하며 넋을 놓고 돌아 다닌다.
이젠 지겹다. 어디 한번 더 오기만 해봐라" 하고 벼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정신 분열증 환자들은 걸을때 팔을 거의 흔들지 않고 걸어 다니며 발을 질질 끌고 다니고 주머니에 뭔가를 잔뜩 넣고 다니기도 한다.
수현이 우리 병실에 놀러와 TV를 보던중 허 보호사가 들어왔다.
"수현씨! 재영이 똥좀 못먹게 해."
"네?"
"발톱 먹을 때 부터 알아봤다니까?"
"네? 정말 이예요?"
"나참... 빨리 가서 못 먹게 해.
"웩~! 내가 미쳐!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겠네. 노망난 노인네도 아니고 똥을 먹다니....."
"내가 무슨 맛이냐고 물어 봤더니 똥맛이래~"
수현은 정신 없이 자신의 방으로 갔다.
나는 허 보호사가 수진을 그방으로 보내려고 일부러 그랬을 것이라는 걸 눈치 채고 웃어 넘겼다.
체념 하니까 마음이 이렇게 편한걸.
왜 마음을 비우지 못했던 걸까?
왜 그속에 많은걸 담아 두어 차서 넘치게 만든걸까?
너무 많은것 터질듯 담고 있었다.
버릴것은 과감하게 버렸어야 했는데.
조금씩 버려야 한다.
가슴아픈, 아팠던 기억들 비워나가야한다.
다른것이 들어올수 있도록.
안녕~ 가슴아픈 기억들아~ 잘 가렴
9시쯤 은영, 윤아가 우리 방으로 왔다.
미진과 나울은 하루 종일 중얼거리며 돌아 다녔다.
점심 식사후 은정은 계속 박수를 치며 TV앞에 얼쩡대다가 재영에게 맞았다.
은영은 자기 자리에 누워서 계속 중얼 거리고 윤아는 발을 질질 끌며 하루종일 왔다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다들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퇴원하기 전에 미칠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될것 같았다.
저녁 배식전 화장실에 갔더니 또 막혔다.
재영이 뚫는다고 뚫는다고 하더니만 덜 뚫어놨다.
"재영아~! 비켜~! 뜨거운물 부을 테니."
"그냥해 언니"
하다가 물이 튀었다.
조금인데 소리를 벅벅 지르며 죽는 소리를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엄살은
그후 수현이 낄낄거리며 우리 병실로 들어왔다.
"지수언니~! 나가서 재영이좀 보구와~!"
"왜?"
"글쎄 직접 가서 보고 오라니까~! 내가 미쳐~!"
난 수진의 말대로 휴게실로 나갔다.
얼굴에 비비 크림을 떡칠하고 있어 소시쩍 보았던 중국 귀신 강시를 연상시켰다.
황보호사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야~! 천 재영~! 네가 강시냐? 빨리 가서 안지워?"
하자 다들 킥킥 대며 웃었다.
전화시간, 틀니 할배가 보호사에 의해 C/R로 들어 갔다.
괴팍 스럽고 이상한 영감이었는데 전화하다 말고 C/R 이라니...
재영이가 뒷집어 지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언니~! 저 영감이 글쎄 112에 전화 했대"
다들 소리내며 웃었다.
또 납치당해서 감급 되었다고 신고 하려고 했나?
통화가 되어도 노망난 노인네의 말이라고 무시할 게 뻔한데 말이다.
미진은 입원한지 1주일이 되지 않아 전화가 허락 되지 않는데 줄에 앉아 있었다.
재영이 그런 미진을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야~! 여기 앉아 있는다고 전화 하게 해 줄줄 알아? 병신, 비켜~1"
이때 은정이 병실에서 나오면서 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재영이 욕을 하며 은정을 발로 걷어찼다.
"이 씨발년이 또 지랄이네~!"
은정이 엉엉 거리며 소리내서 울기 시작하자 재영이 은정의 머리채를 휘어 잡아 바닥으로 밀어 버렸다.
황보호사가 소리를 지르며 재영에게 다가갔다.
"야~! 천재영~! 너 이리와~! 3층 C/R!"
하자 재영이 울면서 소리쳤다.
"싫어요, 안가요~! 잘못했어요~!"
절박한 목소리였다.
재영은 황보호사에게 질질 끌려 3층으로 보내졌다.
C/R단골인 재영이 3층이란 말에 왜 그렇게 사색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수 없어서 궁금했다.
소파에서 TV를 보고있던 영자 언니에게 슬며시 물어 보았다.
"언니, 3층C/R을 어떻길래 재영이가 저렇게 벌벌 떨어요?"
"몰라~거기가 좀 답답한가.....?"
늦은 밤까지 울면서 끌려간 재영이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훤한 가로등 불빛에 옆에 누워있는 윤아의 등이 보였다.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등짝이 푸르스름한 문신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마도 지우려고 한듯 군데 화상을 입은듯 얽은 자국도 있었다.
"도대체 얘는 또 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조폭 출신도 아니고.......
요즘 애들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만!"
잠깐 잠들었다가 완전히 설쳤다.
미란이가 새벽 3시까지 파수대를 희미한 불빛 아래서 바스락 거리며 읽고 사탕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참다가 말했다.
"야~! 여기 너만 사냐? 파수댄지, 교수댄지는 이따가 보고 자빠져 자라~! 엉?"
여호와의 증인이며 정신분열(SPR)환자다.
유산 상속을 30억이나 50억쯤 받았는데 오빠랑 재판중이라 머리가 복잡해서 왔다고 했다.
하루는 30억, 하루는 50억에 또 어떤 날엔 파산이랬다.
은주가 마음 약한 줄 알고 먹을 것 있으면 다 빼앗아 먹으며 제것은 사탕 하나 주질 않는다.
앞뒤 안맞는 거짓말에 잘난 척은 있는대로 하고....
지긋지긋한 하루가 또 시작 되었다.
어제 저녁 3층C/R에 간 재영은 아직 돌아오질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침 배식전 수현은 은경이가 똥을 쌌다고 했다.
어제 들어온 아줌마는 이것 저것 불만이 많았다.
"뭐도 없고, 뭐가 없네, 어쩌고 저쩌고....."
투약이 끝나고 방에 들어오니 수현이 와있었다.
내가 없어서 막 가려던 참이라고 했다.
"아이씨~! 은경이 년이 똥싸서 샤워실 벽에 칠해놨지뭐야. 에이~씨~ 치우느라 죽을 뻔했네....."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미진이 방에 없었다.
밖에서 또 멍때리고 있기에 다가가 말을 붙였다.
"야~! 방청소해! 돌아가면서 하는거니까 빨리하고 나와서 멍때리던지."
"...."
"야~! 빨리가서 안해?"
"머리가 아파서....."
"다들 아픈건 마찬가지거든~"
나는 미진을 쫒아가서 비와 쓰레받이를 건네주며 말했다.
"야~! 빗자루에 머리카락도 다 털어놔~!"
한참후 방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제법 깨끗하게 해 놓았다.
조용조용 말을 하면 당췌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고 성질을 내야만 말을 듣는다.
윤아는 발을 질질 끌고 돌아다니는것도 모자라 이젠 빙글빙글 돌며 다닌다.
휴게실에 있는데 재영이 서럽게 우는 소리가 밖까지 들렸다.
나는 202호로 들어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재영아! 왜 그래?응? 그만 울어.너 답지 않게 왜 그래? 그만 울고 나랑 커피 마시자. 응?"
"언니....."
말을 잇지 못하고 또 서럽게 울었다.
"에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따가 얘기 하자."
2병동 C/R은 제방 드나들듯 하면서 3병동 얘기만 나오면 자지러지는지 알수가 없었다.
은주가 병실문을 닫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우리방 정신 분열 애들에게서 냄새가 진동했다.
협박을 하다시피 해서 씻게 했고 은주는 살살 달랬다.
"은주야~! 좀 씻자~!"
"싫어~"
"이렇게 하고 있다가 남편 오면 어떻게~! 깨끗히 씻고 기다리고 있으면 올거야."
했더니 씻고 나왔다.
미란이나 미순언니는 내가 화를 내면서 씻으라고 했더니 씻었다.
깨끗히 씻고 있던 은주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다.
내 말대로 남편이 면회를 온것이다.
은주는 뛸듯이 기뻐하며 면회실로 내려 갔다.
미진은 내 눈치를 보다가 씻었다.
수건, 비누 아무것도 없이 물만 끼얹었다.
내가 수건이라도 가져다 주려고 문을 열었더니 팔꿈치에 큰 흉터가 있었다.
화상자국인지 뭐에 찔린 건지는 알수가 없었다.
새로온 아줌마는 가만 보니 알코올성 치매가 온듯, 기저귀는 차고 뭐가 그리 잘났는지 황보호사와 한참을 싸우며 돈얘기만 했다.
미란은 다른 할머니 붙들고 50억 얘기를 했다.
샤워실옆 흡연실에서 재영이가 세상 다 산듯한 얼굴로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고 있었다.
"재영아~! 괜찮아?"
"응..."
나를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또 왜 그래? 무슨일인데?"
"언니~! 은정이 다른 병원으로 갔어."
"후~ 그랬구나. 그래도 싸우면서 정이 많이 든 모양이네"
"응~ 내가 때리긴 했어도 착한 애 였는데 불쌍해서....."
"그러게 말이다. 힘내~! 은정이는 착하니까 다른 병원에 가도 잘 지낼거야."
코끼리 만한 덩치로 작은 욕실 의자에 앉아 담배 피우는 그녀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커피 한잔 줄까?"
"응~"
나는 커피 두잔을 가지고 그녀와 함께 흡연실에 쪼그리고 앉았다.
"언니, 근데....."
"뭔데? 얘기해봐. 괜찮으니까."
"난 3층 C/R가기 싫어."
"C/R가기 싫으면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지."
"다 내가 잘 못 한건 아니야. 무조건 다 내 잘못이래."
"하긴, 늘 그렇게 말하더라. "
"3층가면 난 또 당해야 된다구!"
하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뭘 당해? 응?"
"언니만 알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을테니까.
거기 화장실에서 당했어.
그놈은 내가 3층으로 오기만 기다리나봐.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화장실만 가면 쫒아와서는....."
"보호사가 안따라와?"
"나보고 뭐하냐고 물어서 똥싼다고 했어."
"왜 얘기 안했어?"
"얘기해도 믿어주지 않을거고, 그놈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어."
"잠깐만, 그럼 강간 당했다는 얘기잖아?"
"응....."
"도대체 어떤 놈인데? 언제 부터야?"
"요한이라고 있는데 6개월 정도 됐어."
"저기, 재영아~! 그냥 넘길일이 아니다. 우리 수선생님한테 얘기 해보자."
"언니~! 안돼~!"
"그럼 매번 당하고 살거야? 그런 놈은 그냥 둬서는 안된다구~!"
"언니~! 안돼~! 제발 부탁이야. 아무한테도 얘기 하지마~!"
그녀는 애걸을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병원이 문 닫을 일이다.
정신병원에서 강간 사고가 생기다니.....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났어도 나는 아무것도 해줄게 없었다.
"재영아~! 다시는 C/R갈 일 하지마~! 조심하고."
"응, 언니~! 고마워~!"
저녁을 먹으면서 손보호사에게 넌즈시 말을 건냈다.
"저~ 보호사님~! 왜 재영이 3층 C/R로 가요?"
"아~ 그건 말이죠, 2병동 C/R이 찰때만 그래요."
"아~ 예~ 웬만하면 3층 C/R엔 다시 안보냈으면 해서요."
"무슨 문제 있나요?:
"아뇨.... 재영이가 거기만 갔다오면 상태가 안좋아 져서요.요한이란 사람이 자꾸 괴롭히는 모양이예요."
내가 해 줄수 있는것이라고는 고작 이것 밖에는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까지 미진은 잠안자고 왔다갔다 하며 버스럭 거리더니
TV를 켰다.
"야~! 너 지금 뭐하냐? 여기 너 혼자 사는 집인줄 알아? 빨리꺼~!"
하고 있는데 허 보호사가 병실 문을 열고 말했다.
"TV꺼요. 다른 사람 생각도 해야지. 아님 나와요~!"
단호하고 화가 난 목소리였다.
미진은 TV 를 끄고 자는척 했다.
윤자 언니도 잠에서 깨에 미진에게 한마디 했다.
"내가 미친다~ 미쳐~!"
한참후 윤자 언니는 다시 잠이 들었다.
빈센트 교향곡이 울리고 나는 미진을 깨웠다.
"야~! 오늘밥도 잠 안자고 지랄해라~ 두고 볼테니. C/R가서 자던지 알아서해~!"
미진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뭘봐?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뭣같이 보여?"
했더니 눈을 깔았다.
머리가 쪼개질듯 아프고 눈도 뻐근한게 기분도 좋지 않았다.
바지에 뻘겋게 생리혈을 묻히고 다니는 미진에게 바지를 하나 가져다 줬다.
그랬더니 갈아 입지도 않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버렸다.
나는 이불을 걷어치웠다.
"야~! 여자 망신 다 시키고 돌아다니지 말고 갈아입어~!"
했더니 마지 못해 갈아 입었다.
휴게실에서 영자언니가 불러서 가보니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채 하얀 면티를 입고 배까지 쭉 늘어진 가슴을 내밀고 미진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미진에게 옷 입으로고 했지만 한참만에 입었다.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미진은 저녁때 사물함 박스를 들고 문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지나가던 환자들이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김 할머니는 개나리 봇짐 싸서 퇴원한다고 난리치고 오늘 하루도 어수선하게 지나가 버렸다.
내가 입원 한지도 한달이 지났다.
가만히 있어도 지나가는게 시간이지만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어쨌든 그래도 한달이 지나갔다.
한달 동안 성질만 더러워 진것 같다.
아니,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살아 남기 위한 방법을 이제야 터득했다.
강한 사람한테는 한없이 약해지고, 약한자는 밟아 버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나는 문득 영화에서 본 교도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별반 다를것도 없다.
난 그동안 나 자신을 보호하고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잘 하지도 못하는 욕을 있는대로 내 뱉고 성질도 단단히 부렸다.
그 결과 잘 씻지 않던 애들도 내말 한마디면 눈치를 보고 샤워실로 직행했으며 아침 청소도 돌아가며 잘들 한다.
이제 이곳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아니, 즐긴다고 하는 편이 훨씬 잘 어울린다.
유난히 피부색이 검은 미정이 나를 몹시 부러워했다.
"지수야~! 너 화장했지?"
"얘는~자 만져봐~! 화장했는지...."
그랬더니만 그녀는 정말 자기 손을 내 얼굴에 비벼 확인을 했다.
"히~ 그렇구나. 너무 뽀사시해서 화장한줄 알았다."
앞머리가 너무 길어서 거추장 스러웠다.
보호사에게 "이불에 실밥이 늘어져서 잘라야 한다"고 거짓말을 한후 가위를 빌려다가 화장실에서 앞머리를 잘랐다.
다들 내 앞머리 자른게 예뻐 보였는지 미용봉사 오면 자른다고 했다.
미진은 신던 양말과 속옷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더니 이불을 갖고 나가 빨래 통에 던져 놓았다.
한곳에 바위처럼 우뚝 서서 남들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의식하거나 말리지 않았다.
저녁때 그런 미진에게 으름장을 놨다.
"야~! 잠 안자고 지랄떨면 리모콘으로 대가리 찍힐줄 알아~!"
아침 커피를 갖고 휴게실에서 병실로 돌아오다가 애경과 얘기하던 명순언니와 부딪혔다.
애경의 수다에 빠져 내 커피를 몸으로 쳤다.
난 컵을 얼른 내 쪽으로 옮겨 내 손과 바닥에 쏟았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명순언니는 기저귀 차고 밥도 제대로 못먹으며 트림을 꺼억꺼억하고 다녀 다들 피하며 애경은 겁도 많고 호들갑에 큰목소리로 수다가 장난이 아니었다.
"앗~! 뜨거워~!"
"어머 어떻게"
"아씨 ~ 뭐야?"
"어머 미안해요."
"됐어."
하고 넘어 가려고 했는데 명순언니가 소리를 질렀다.
"왜 이쪽으로 오고 그래?"
"뭐? 누가 잘못했는데? 우끼지도 않네. 미안하다고 사과는 못할 망정 뭐?"
애경은 명순언니를 끌고 방으로 들어가 궁시렁 거렸다.
난 그 병실 앞으로 갔다.
"야~! 윤애경 나와~!"
"어머 왜 공포분위기 조성하고 그래요. 무섭게."
손 보호사는 그냥 묵묵히 바라보았다.
"얘기 아직 안끝났는데, 마무리는 해야지?"
"공포분위기야~"
"나참 기가 막혀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따대구...."
화를 가라 앉히고 병실에 앉아있으려니 방문이 열리고 애경이 들어왔다.
"민 지수 언니~! 미안해요. 히애하세요. 제가 정신병자라 아파서 그래요."
"여기 아픈사람 애경씨 혼자 아니거든~
그런 핑게 댈것 없고, 됐으니까 나가~!"
"언니, 미안해요~!"
명순은 계속해서 복도를 오가며 <꺼어~꺼억~ 궤엑~ 궤엑~>거리며 트림을 하고 다녀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소리 질렀다.
"아줌마~! 방에 들어가서 문닫고 하던지. 왜 돌아 다니면서 여러사람 비위 건드려?
에이~ 씨~"
저녁을 먹기위해 줄을 섰는데 내 뒤에 있던 미진이 뒤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
순간 너무깜짝 놀라
"아~ 씨~ 뭐야~ 간지럽게. 치워라~!"
하고 한마디 던졌다.
미진은 말없이 나를 감쌌던 팔에 힘을 풀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에이씨~ 껴안으려면 좀 씻고 껴안던지. 머리는 떡이지고 허옇게 비듬은 내려 앉아서...."
애정 결핍이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전화 시간엔 구경을 하는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어 시간 보내기엔 아주 그만이었다.
전화를 걸기위해 줄지어 앉아 있는 얼굴은 오전 오후 거의 같다.
재영, 애경,미애,삼순(홍탁,영순, 재순).....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본 손보호사
"지수씨는 전화 안해요?"
내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자 입을 삐쭉거렸다.
안 받는 전화를 하루에도 몇번씩 하거나 한말을 계속 되풀이해서 보호자가
"전화 못하게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들의 전화 내용은 거의 같았다.
면회, 퇴원, 외출, 외박......
거의 구걸하다 시피하면서 통사정을 했다.
미애는 노트에 전화통화 할 내용을 미리 적어서 하루종일 읽고 돌아 다닌다.
늘 똑 같은 소리였다.
애경은 개걱정,
홍탁여사는 퇴원 등
가만히 듣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다가도 심각해 졌다.
저녁 배식중 말라 비틀어진 영감이 배식대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손보호사가 말했다.
"이쁜건 알아서... 이 언니 이뻐?'
"히~ 나도 보는 눈은 있어요."
"저기 저언니는 어때? 무섭게 생겼어? 그럼 저 언니는?"
"히~"
다들 웃었다.
손보호사가 조용하게 말했다.
"지수씨 처음 봤을땐 참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입니다."
"네? 왜요?"
"작고 여려 보여서 상처받고 적응하기 힘들것 같아 보여 참 안스러웠어요."
"제가요? 하하~"
"그랬는데, 괜한 걱정을 했네요. 이렇게 잘 지내는걸 보니 마음이 편해지네요."
그때 내게 식사를 가져다 주며 "잘 먹어야 견딘다"고 했던 사람이 손보호사 였다.
별로 신경 안써서 누군가 긴가 민가 했었는데.
말 많은 대치동 싸모님이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김씨 아저씨가 옆에 있던 김 할머니보고 농당을 했다.
"언니~! 저기 저 싸모님 머리 끄댕이좀 잡고 나와봐."
했더니 김 할머니 싸모님 옆으로 다가가더니
"안녕하세요?"
하곤 옆에 낑겨 앉았다.
다들 한참 웃었다.
스파게티가 나왔는데 수현은 한국관이란 별명의 영감때문에 저녁을 못먹었다고 했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국수 사리를 입이 터져라 집어 넣어 꾸질꾸질 나오고 질질흘리며 쌍콧물로 말아 먹었다.
오늘은 손이며 얼굴에 다 묻히고 꾸역꾸역 먹어서 밥맛이 뚝 떨어졌다.
전화 시간 싸모님 또 시작했다.
허 보호사와 한판 말 싸움이 붙었다.
"당신 재수없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더니 재영을 보며말했다.
"재영아~! 대신 얘기좀 해줘라. 똥먹는 여자라고."
재영이 신이나서 거들었다.
"저 똥먹는 여자예요."
"그래서 오줌도 질질 싸는구만?"
"나 오줌도 먹고 똥도 먹어!"
해서 웃었다.
전화를 하기 위해 늘어서 앉아 있는 그들. 거의 같은 사람들이다.
7시가 되면 나는 그들의 통화 내용을 엿듣기 위해 휴게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귀를 종긋 세운다.
허 보호사가 실실거리며 웃고, 재영은 큰소리로 껄껄거렸다.
아침 식사시간 허 보호사 때문에 웃었다.
"산에 가면 절에서 공양하잖아요.
제 친구가 그러더라니까요.
부처님이 전주사람인가, 매번 비빔밥만나와. 인도사람이면 카레도 주고 그래야지.
하더니 지하철에 젊은 여자가 노인들 자리 양보안하니까<저년은 분명 일본년이야.
술집 다니다가 돈벌어서 여행왔나부네. 한국여자 같으면 양보할텐데, 아무튼 일본년들은 싸가지가 없다니까?해서 얼마나 민망하고 웃기던지, 죽는 줄 알았어요."
식사가 끝날때 까지 은주는 잠에 푹 빠져 있었다.
요즘은 부쩍 아침 거르기 일쑤다.
한꺼번에 강제 샤워를 당행했다.
나는 미진을 밀어 넣고 재영과 수현을 같이 욕실로 보내고 재영에게 말했다.
"재영아~! 조용히 살살 씻어라~"
"네~ 언니~ 흐흐~"
하고 재영은 즐거운듯 웃으며 들어갔다.
한참후 그녀들이 씻고 나오고 다음 내가 들어 가서 씻는데 대치동 싸모님이 들어왔다.
쪼그리고 앉아 거기만 계속해서 닦았다.
"아줌마~! 제대로 좀 씻지~? 그러다가 닳겠네~"
"무섭게 왜이래요?"
"나참, 무섭기는.... 깨끗히 씻으라구요~!"
"네, 알았어요."
나 빨래 하는 사이 이 아줌마는 비누칠도 안하고 수건으로 몸만 닦았다.
"아줌마~! 비누칠도 안하고 그걸 샤워라고 하는거야?"
"알았어요."
흡연실 옆에서 머리를 빗으며 앉아 있는데 진한 보랏빛 뿔테에 허연 머리를 노란 고무줄로 질끈 동여맨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뭐먹고 살아요?"
"네? 뭘 먹고 살긴요? 병원 밥 먹고 살죠."
"뭐 특별한거 먹나해서.... 그런데 피부가 애기 같아서요.
"...."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얘기했다.
"특별한건 술마셔서 그렇다 왜?"
점심 식사전 소파에 앉아 있는데 틀니 영감이 TV를 크게 켰다.
"저, 어르신! 소리좀 조금만 줄여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내가 안들려서 그래!"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예~"
"밥줄때 국수도 원 먹을 만큼 줘야지.
혼자 먹으려고 벌벌 떨며 주는 건 뭐야?"
"네? 어르신은 다진식이잖아요!
반찬 다 다져서 나오는데 뭘 더 받으시려고 하세요? 다른 사람은 안먹나요?"
"에고~ 내가 너같은 딸 안 두길 다행이다."
"아~예~ 저도 마찬가지네요. 어르신이 식사에 불만이시면 저한테 말하지 마시고 원무과나 영양사에게 말씀하시라구요~!
나참, 여기가 무슨 식당인줄 아나?
제가 여기서 돈받고 일하는 거였음 난리 날 뻔 했네요."
저녁 식사중 손 보호사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보호자들이 병원으로 자꾸 간식비때문에 전화를 하네요.
원래는 과자 같은 거 안 먹는 아이인데 간식비 지출이 너무 많아 의심 스럽다구요."
이말에 영자언니가 기가 막히다는듯 대답했다.
"나참~! 기가 막혀서~ 누군지 알겠네! 걔 우유 시키면 앉은 자리서 큰거 하나 다먹고
빵도 있는대로 다 먹어~! 못 먹어서 환장한다구. 뭘 알기나 하고 그러는지 원...."
나와 손보호사도 공감했다.
내가 지내본 결과 간식비 지출이 많은건 당연하다.
하루 세끼 병원 밥을 먹긴 해도 달리 할일도 없고, 시간은 길고 거기에 바깥 세상과 단절이 되어 평소 안먹던 과자도 먹고 싶어 지는 곳이 여기다.
TV에서 뭔가 먹는게 나오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것들이 먹고 싶어 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반입 금지 음식
떡, 과일, 오징어, 치킨, 껌등.
홍탁 아줌마는 오늘도 김씨 아저씨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
"크크~ 좋으시겠어요. 인기가 하늘을 찔러서...."
"아이고~ 나참, 좋은게 아니고 일거리만 만들어 준다니까요.
저 대접 내가 갖다 놔야 하잖아."
홍탁 아줌마는 항상 자가가 먹었던 국그릇에 물을 받아 두어 모금 마시고 김씨 아저씨에게 건낸다.
숙자, 영자, 나 ,보호사는 그걸 보며 김씨 아저씨를 놀렸다.
12시가 넘을 때 까지 은영은 잠을 안자고 중얼 거리며 왔다 갔다 했다.
간호사에게 얘기해 수면제를 먹여 재웠다.
미리 예상했던 일이었다.
어제 하루종일 밥시간, 담배 피우는 시간 외엔 잠만 잤으니까.
새벽 화장실에 갔더니 싸모님의 소리가 들렸다.
"화장지좀 줘요. 화장지를 안갖고 왔어요."
나는 말없이 듣다가 나와 버렸다.
화장실에선 늘 이런 식이었다.
한번 받아줘 버릇하면 끝까지 화장지를 갖고 오지 않아 피곤해 지기 때문이었다.
명순 언니는 화장실에 들어오더니 볼일은 안보고 종종 걸음으로 천천히 한바퀴 빙 돌고 나갔다 들어오기를 수차례 했다.
영자 언니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관세음 보살~"
그때 재영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안할게요~! 잘 못했어요~! 안가요~! 안돼요!"
나는 급히 재영의 병실 앞으로 가보았다.
재영이는 황보호사의 손에 이끌려 반항을 하며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안돼요~!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