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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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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 병동 2


BY 이미지 2012-05-01

          폐쇄 병동 2

 

  살며시 부는 바람에 하얀 꽃잎들과 노란 개나리 이파리가 춤을 추며 땅위

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나는 가슴속 깊숙이 숨이 차올라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향긋한 공기를 들여 마셨다가 훅하고 내 뱉기를 반복했다.

이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과 이제 막 지기 시작한 봄꽃들, 그리고 자갈과 흙이 뒤엉켜진 시골길. 얼마 만에 밟아 보는 땅이던가. 나는 뒤뚱거리며 어지럽게 깔려있는 돌들을 피해 걸음을 재촉하며 중얼거렸다.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를 얻으니 자갈밭이 문제로구먼 그래, 모든 걸 다 얻을 수는 없지.”하며 씨익 웃었다.

가끔씩 하얀 국화꽃을 들고 걸어왔던 이 길을 오늘은 두 권의 책과 함께 노트북을 메고 걷는다.

어깨에 느껴지는 노트북 무게에 나는 길가의 풀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풋풋한 풀 내음을 킁킁거리며, 아직도 길가에 나뒹구는 작은 돌덩어리나 작은 잡초하나 만질 수 없는 그들 생각에 눈시울이 붉혔다.

“더 이상은 못살겠어! 정신병원 들어가던지 죽어 버리던지 니 맘대로 해~!”

“아~ 씨~ 그래, 간다. 가!~ 그 대신 노트북은 눠주라~! 그럼 간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방문을 쿵 소리가 나게 닫고 나가버렸다. 나는 호가든 잔에 남은 소주를 들어부었다.

“들어가면 못 마실 테니 실컷 마시고 나 가자!” 하며 늦은 시간까지 소주 세병을 다 마시고서야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잔걸까. 주방에서 들리는 소음에 배시시 눈을 뜨니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어? 엄마가 웬 일이야?”

“아이고~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었니? 휴우”

세상 시름 다 짊어 진 듯 꺼져가는 목소리에 금방이 라도 쓰러질듯 기운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구차하게 변명이나 거짓말 따위를 늘어놓으며 술을 마신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옷장에서 커다란 폴로 가방을 꺼내 속옷을 몇 벌 주섬주섬 꾸겨 넣고 노트북을 챙겨 차에 올랐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나는 본드를 발라 놓은 듯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은 겉보기에 다른 일반 병원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입원 수속이 늦어져 밖에 나갔는데 덩치 좋은 두 사내가 내가 나가고 들어 올 때 마다 나를 따라 다녔다.

그게 조금 이상스럽긴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시간 이상이 지나서야 입원 수속이 끝나고 나는 덩치 좋은 그 사내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나는 가족들에게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등 뒤에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 울고 계실 우리 엄마와, 무덤덤한 시어머니, 그리고 아이 아빠. 끝까지 그네들의 시선을 무시해 버렸다.

이층 도착 벨이 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날카롭게 철창 내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숨이 멎는 듯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뒤를 돌아보자 영업 끝난 가게에서 본 스테인레스 셔터가 엘리베이터를 가렸다.

그 사내가 안내하는 병실에 들어가자 잠시 후 간호사가 환의복을 갖고 들어왔다.

“이걸로 갈아입으시고 반지 귀걸이 다 빼세요!”

귀걸이를 다 빼고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 그 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반지 하나, 귀걸이 네 세트요.”

“이제 옷 갈아 입으세요~!”

두터운 점퍼를 벗으며 병실 안을 휘 둘러 보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악!” 옆 침대에 스포츠 머리를 한 덩치 큰 남자가 누워 있질 않은가? “저보고 남자 앞에서 옷 갈아입으라는 거예요?”

간호사는 콧방귀를 뀌듯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예요.” 난 옆 침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저게 여자란 말예요? 나 참..... 병원 생활 참 우울하겠구만.”하고 겉옷을 다 벗었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세요.”

“네? 속옷 바람으로 돌으라구? 왜요?”

나는 따지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혹시 멍 자국이나 상처 있는지 확인 하려고 그래요.”

그녀는 내 몸을 훑어보더니 환의복을 내밀고 병실을 나갔다.

벗어질듯 헐렁헐렁한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이 저절로 감겼다.

 흐느끼며 우는 여자의 소리에 잠에서 깨어 옆 침대를 바라보았다.

덩치큰 남자 비슷한 여자는 온데간데 없고 까만 얼굴의 여자가 누워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쟤는 또 뭐야? 온갖 찌질이 구경은 다 하는구만.”

이불을 끌어 올려 뒤집어 쓰고 다시 잠이 들었다.

배시시 눈을 뜨자 허연 천정에 형광등이 빛을 발하며 날개 춤을 추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하얀 벽에 덩그러니 놓여 진 침대 두 개와 군데군데 금이 가고 부서진 방문, 그리고 환풍기. 난 링거 줄을 끌고 방문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열리지 않았다.

 순간 숨이 막힐듯한 공포감에 미친 듯이 그것을 돌리고 밀고 두드리며 소리쳤다.

난 그제서야 방문에 난 상처들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누구 없어요? 문 좀 열어줘요!”

 밖 에서는 분명 사람들의 웅성임과 발소리가 들렸지만 내 목소리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문 두드리기를 포기하고 다시 차가운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화장실이 급했다.

난 다시 있는 힘을 다해 문을 힘껏 두드리며 외쳤다.

 “누구 없어요? 문좀 열어줘요!”

하고 한참을 외치자 문이 열리고 간호사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요?”

“저, 화장실 좀....”

그녀는 침대 밑을 가리키며말했다.

“저기에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침대 밑을 보자 초록색 플라스틱 변기가 보였다.

 “저기서 보라구요?”

“네!”

“그럼 휴지라도.....”

 “알았어요.”

잠시 후에 그녀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나타났다. 침대 밑에 있던 환자용 변기에 소변을 보자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건지, 얼마 동안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든 게 암담할 뿐이었다.

 변기를 침대 밑에 밀어 넣고 다시 차가운 침대에 기어 올라가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굵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식사하세요!” 덜그덕 소리를 내며 식판을 침대에 내려 놓고 나갔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 식판에 무엇이 담겼는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문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식판을 들고 나갔다.

철망이 쳐진 환풍기 사이로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 했을 때 저녁이 되가는걸 알았다.

덜그덕 거리는 문소리가 나고 누군가 “식사하세요~!”하며 식판을 놓고 나갔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을 꼭 감았다.

날이 훤하게 밝았을때 문소리와 함께 식판을 들고 온 남자가 내게 말을 건넸다.

“식사 하세요~! 안 먹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남자가 나가고 “오늘이 몇일 일까? 구정이 맞나? 아님 더 지난걸까?” 몸을 일으켜 식판을 바라보았다.

 몇가지 반찬과 밥, 그리고 멀건 떡국이 놓여 있었다.

 “후~ 오늘이 설날이구나!”

이를 악물고 숟가락을 집어들어 떡국을 한 숟가락 떠 먹어 보았다.

눈물이 떡국 위로 떨어져 숟가락을 그냥 식판위에 내려 놓았다.

한참후 간호사가 들어와 방을 옮기자며 나를 밖으로 안내했다.

나와 같은 환의복입은 사람을 빙 둘러보며 낡은 소파에 앉았다.

어제 잠깐 병실에서 보았던 덩치좋은 여자가 내게 다가와 씩씩 거리며 말했다. 

“야! 일어나!”

 인상이 험악했다.

 “왜요?”

“여긴 내자리야!”

 “나참, 니 자리 내자리가 어딨어? 먼저 앉는게 임자지.”“이게...”

나는 그 자리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뻘겋게 변한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트리며 협박하며 다시 말했다.

“야! 안 일어나? 죽을래?”

“정 앉고 싶으면 저 옆자리 가서 앉던지.”

 이때 누군가 나를 거들어 줬다.

“야! 그만해라!”

그러자 여자는“어휴~! 재수 없어.”

란 말을 마치고 옆쪽 소파로 가서 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내 병원 생활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이때 알았다.

207호로 방을 배정 받았다.

방을 한 바퀴 휘 돌아보니 여덟 개의 매트리스와 사물함 박스, 그리고 tv한대. 하룻밤 묵었던 그 방보다는 훨씬 밝고 인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멍하니 팔을 쭉 늘어뜨린 채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젊은 여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대는 할머니, 무작정 티비 앞에 서 있는 여자, 엄지와 검지를 총처럼 쭉 편 채 팔을 내밀고 걷다가 음악이 나오자 잠깐 동안이지만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고 가버린 여자.

앞으로 얼마나 있어야 할지 모르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빠져 나갈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탈출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 봐도 내가 나갈 수 있는 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