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안아볼까?”
주선은 팔을 벌려 수향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살짝 힘을 실어 엄마의 몸을
조였다.그녀는 엄마의 몸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수향은 딸의 온기를 느꼈다. ‘너의 품이 이렇게 따뜻했구나. 고마워.’ 그녀는 손으로
딸의 얼굴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한 번 얼굴 좀 만져줘!’
그러나 그녀의 몸이 거기까지는 힘이 부친 듯했다. 지친 그녀의 육신이 마지막 힘을
모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와 그녀의 몸을 동여매고 있던 기가 다 풀어져
겨우 한 끝자락만 붙어있었다. 그것으로는 그녀의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딸애가 또박또박 걸어 나왔다.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밀쳐내고 다른 모습을
끌어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앤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늘 집에 오면
팔을 걷어붙이고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부터 했다. 물론 잔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그 모습이 그렇게 강하게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강제로 시침을 어린 시절로 돌렸다. 그녀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순식간이었다. 그녀의 삶을 통째로 들여다보는데 순식간의 시간으로 충분했다. 길게
느끼며 살았던 순간순간들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좀 서글프긴 했다.
'그런들 어쩌겠는가. 인생이란 그런 것을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이는 것들이 그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주선이 떠나고 이웃들과도 짧게 이별식을 치렀다. 웅성웅성하던 소리들이 한 층씩
잘려나가더니 또렷한 말소리만이 남겨져 간간이 들려왔다. 발소리도 잦아들어
있었다.
“니 엄마 밥 좀 먹어야 될 거 아니냐?”
‘아니냐? 아니냐? 아니냐? ····’
남편의 애끓는 목소리가 그녀의 가슴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겠지.’
‘니 엄마 데려가야겠다.’
남편이 그렇게 말했을 때, 아이들과 달리 수향만은 그 말뜻을 알았다. 남편은 수향의
병세를 빌미로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려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옆에 두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명줄을 조금이라도 이어놓고 싶어 하는
염원도 담겨있었다. 그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몸을
주무르고 또 주무르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침대 한쪽에 웅크리고 누어 그대로 잠이
들었다. 더 버텨보려 했지만 너무 힘에 겨웠던 것이다.
남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수향은 잠든 남편의 모습을 보려 했지만 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되어 눕혀진 상태로 움쩍달싹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자신을 밀어내고 서서히 문을 닫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발버둥을 쳤다. 남편 옆에 조금 더 있고 싶었다. ‘잠깐만, 잠깐만.’이라고
그녀는 소리쳤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육의 문이 완전히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영의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공중에 둥둥 뜬 채로 날고 있었다. 80년의 세월을 함께했던 그녀의
몸은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운 채로 있고, 남편은 여전히 그 옆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아이들만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어느 사이 새 옷으로
갈아입혀졌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뻗쳐오는 강한 빛줄기를 발견했다. 빛줄기는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빛줄기 끝에는 이제 막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한
둥그런 시계가 달려있었다. 수향은 직감적으로 그것의 의미를 알았다. 다행이
시계바늘은 서서히 움직였다. 얼마간은 미적대도 좋을 듯했다.
그녀는 남편 가까이로 다가갔다. 잠을 자면서 내뱉는 남편의 숨소리가 들렸다.
다행이었다. 부산함으로 행여 잠이 깼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그런 염려가
기우로 끝나서 다행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남편의 볼을 손가락 끝으로 만져보았다. 그녀의 접촉을 느끼지 못하는지
그는 지난밤 못 잔 잠을 자느라 새근거렸다. 그녀는 남편의 옆에 가지런히 누워도
보았다. 그 사이 시계바늘은 오른쪽으로 조금 이동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등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장난도 쳤다. 나름 재미있었다.
혼자서 그렸다 지웠다를 하면서 그녀는 신이 났다. 곤히 잠든 남편의 얼굴에도
여기저기 그림을 잔뜩 그려놓았다. 그리고 신이 나서 한바탕 웃었다. 공기조차도
요동을 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남편은 여전히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엄마는?’
주선의 목소리에 수향은 장난을 멈추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기가
어려웠던지 미적미적하다 떠났던 딸이었다. 그 딸이 다시 돌아왔다.
‘우리 엄마 이쁘다.’
들어서자마자 그 애는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촉촉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도 자신의 육신을 내려다보았다. 그 애가 그렇게 말해서인지
예뻐 보였다.
‘어 우리 엄마 몸이 아직도 따뜻하네?’
딸애의 목소리는 편안해져 있었다. 자신의 윗옷을 들추고 손을 몸 안으로 쑥
집어넣은 채, 마치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듯, 그렇게 말하고 있는 딸애의 근심이
깨끗이 씻겨나간 얼굴을 보면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죽음을 의식했다. 자유에
흠뻑 젖어서 잠시 잊고 있던 죽음을 그녀는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난 죽은 거야. 그래 난 죽은 거야. 내 몸은 곧 싸늘하게 식을 거야. 난 죽은 거니까.’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해, 난 여기 있는데. 왜 내가 죽은 거지? 아니야. 난 죽은 게 아닌지도 몰라.’
그녀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정말 죽은 것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장의차가 오고 그녀의 몸이 실려 나갔다. 모두들 짐을 챙겨 그녀의 시신을 따라갔다.
그녀의 시신이 영안실에 안치되고 식장이 꾸려졌다. 그녀는 죽은 것이었다.
남편은 국화꽃으로 에워싸인 그녀의 영정사진 앞에 울상이 되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말려도 그는 막무가내로 술을 마시면서 눈물을 흘리며 그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다가가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말아요. 당신도 곧 올 거잖아요. 나 여기 이렇게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침대에서 뭉기적거릴 때보다 훨씬 좋아요. 나중에 이런 일이 닥치더라도 겁내지
말아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녀는 남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남편이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면 그
렇게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녀는 두 팔을 크게 벌려 남편을 감싸 안았다.
“이제 갈게요. 기운을 내요. 나를 위해서 나머지 삶을 거뜬히 살아줘요.”
수향은 남편을 감쌌던 팔을 풀고 한발 한발 뒷걸음질 쳐서 물러났다. 시계가 그녀의
등 뒤에서 손에 잡혔다. 그녀는 힘을 주어 시계를 밀었다. 갑자기 빛줄기가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다는 거 잊지 말아요-!“
그녀는 빛줄기에 이끌려가면서 다시 한 번 길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