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가족이 있다.
하지만 이상황을 전할 가족이 없는 것 같았다.
결혼해서 애가 세명이나 있는 언니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남동생...
그 어이없는 사건이 있던 날 남동생은 없었다.
한참 연애중인 남동생이 자리에 없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이 어이없는 상황을 엄마에게 전화로 전할 수가 없었다.
엄마...
어려서 속 많이 썩인 나에게
눈물을 많이도 보였던 나의 엄마...
지금은 갑상선 때문에 쑥 들어간 눈에 깊은 쌍커플로 꿈뻑거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
내가 이 어이없는 일을 전하면...
엄마가 쓰러지면 어쩌나..., 아빠가 혈압으로 넘어가면 어쩌나...
언니는 고함을 치면서 나에게 니가 왜 그모양이냐고 탓을 하겠지...
동생은 훈을 한대 치기라도 하겠지...
동네사람들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겠지... 아니 불쌍하다고 할까?
...
나는 역시 나보다 내 주변이 더 걱정이구나...
나는 정말 바보구나...
훈과 이혼해야 하나?
생각을 하고 또 했다.
한번의 지나가는 바람은 용서를 해주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그래...
한번만 믿어주자...
한번만...
그래서 묻었다.
그녀가 왔던...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던...
그렇게 조용히...
2010년을 보냈다.
훈의 얼굴을 본다.
무슨 생각을 할까?
그여자... 그여자 뱃속에 있었을 아이?
그는 좀 멍해졌다.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닌 듯하다.
내가 억지로 그를 잡고 있는 걸까?
아닐꺼야... 아닐꺼야...
그에게는 2010년에 큰 사건이 있었다.
아마도 그여자를 만난것이 그 시기가 아닌가 싶다.
남아공월드컵이 한참 펼쳐졌던 그 더운 날... 그의 동생이 일산의 한 자취방에서 목을 멘채 발견되었다.
일산에 그의 동생을 데려간 것도 그였고, 한량처럼 놀고먹는 동생에게 일 좀 배우라고 몇번이나 취직자리를 마련해 주고 방을 얻어주는 것은 우리의 일이었다. 훈이 동생을 취직시키고 내가 방을 잡아서 계약을 해주고 자리를 잡아주고... 도망치면 또 잡아오고...
좋은 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 뿐인 동생이었다.
다만... 아버지의 부재가 그들에겐 커다란 상처였다.
다른 여자들과 살고 있는 아버지...
두 아들에게 커다란 불행을 안겨준 그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아들의 주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원정경기에서 첫승을 올린 그날이었을까?
그리고 며칠이 지난지 모르는 그의 사체는 이미 부패되어 있었다.
이웃집을에서 악취가 난다고 신고가 들어와서 집월세 계약자인 훈이 찾아가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의 동생은 발이 바닥으로 부터 한참이나 위에 있었다.
훈은 아마도 큰 충격을 받은것 같았다.
나도 어쩔 줄 몰랐다. 우선 언니와 형부를 불렀다.
언니와 형부는 우선 훈의 동생을 병원에 데려가고 초상을 치를 병원도 알아보았다.
훈은 넋이 나간것 같았다.
그는 말했다. 내가 왜 그녀석에게 일을 하라고 데려온건지...
상은 3일장을 채 치르지도 못했다. 부패가 너무 심해서 더이상 둘수 가 없었다.
화장장이 예약이 다 차서 간신히 수소문 해 겨우 화장장을 예약했다.
훈의 엄마가 왔다.
상주인 훈을 보고 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의 결혼식에도 오지 않은 훈의 아버지가 왔다.
운다...
제대로 키우지도 않은 자식..., 등록금 한번 안 내준 자식의 죽음에 울고 있다.
훈이 운다...
형부와 동생이 며칠이나 휴가를 내서 초상치르는 것을 도왔다.
시공에 산에가서 뿌리신다고 화장한 가루를 훈의 엄마가 가지고 간다...
훈이 운다...
훈이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두면 훈도 어떻게 될것 같다...
자꾸 술만 먹었다.
말리고 싶었지만 그의 죄책감이 너무 큰것 같다...
그에게 좋은말...,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술 그만 먹으라는 말에 버럭 화를 내고 나간다...
며칠이나 외박을 했다...
아마도 그때 그여자를 만났나보다...
령...
그녀의 매력이 어디서 나와서 훈이 그녀에게 빠진걸까?
도대체 왜?
숨이 또 막혀온다...
눈을 감으면 훈과 령이 부둥켜 앉고 있는 것이 상상이 된다.
미칠것 같다...
그들은 얼마나 오래 만났을까?
돌아버릴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