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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지 않고는 고향에는 절대내려가지 않는다.


BY 김순옥 2008-12-04

그로부터 5년이 흐른 1990년드디어 시험에 계속 낙방되다가 5년째 합격하게 되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먹고 싶은것 ,입고 싶은것도 참고, 동생 미자가 나와는 2살 터울이지만 오빠의 학원비를 수차례 보태주었다.

이소식을 듣고 나니 이젠 세상을 다 얻은것 같고 가난의 고통이 씻은듯이 나은것 같았다.

동생들에게 이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고  어머니께도 내가 해냈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시간을 내서 산소에도 다녀오고 동생들도 보고 와야겠다.

 미자는 고생을 많이 하고 하고 싶은것도 못하고 살았지만 동생 미영과 미진은 착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어린동생들이다. 미영이는 공부는 잘하는데 미진은 공부도 못 하고 겁이 많아서 잘 놀라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로 데리고 올지 시골에 그냥 두어야 할지 아직까지도 내겐 너무 어려운 고민이다.

어머니 한분이라도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기억속에는 까맣게 두분다 지워버린지 오래다.내게는 고통과 힘겨움의 대상이며 가난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뼈저리게 했던가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와의 다짐이고 착한 우리엄마를 기쁘게 해주고픈 내 마음이고 내가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동생들이다.

서울에서도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동생셋을 어떻게 할지 자신이 없다.

겨우 내자신은 어떻게 하겠는데 서울 전세도 비싸고 학교를 전학시킬 엄두도 나지 않는다. 미자도 그냥 "내가 알아서 동생들 어떻게 해 볼께!"라고 한다.

미안하지만 미자에게 맡길 수 밖에 없을것 같다.

돈 많이 벌면 나중에라도 잘 해 주면 되니까!......

연수도 받고 조금씩 직장에서의 생활과 만남의 폭도 커지고 나 또한 더 많이 책도 보고 열심히 생활하니 아는사람 소개로 좋은사람도 만났다. 예쁘고 집도 잘 사는 무엇하나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다. 동생들도 있는데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중에 사귀는 사람 있는데 결혼 해도 되겠느냐고 동생 미자한테 얘길 꺼냈더니 오빠가 사랑한다면 해야지? 라며 나만 생각해준다. 동생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 나의 어릴적 과거와 그간의 고생도 했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꼭 행복하게 자식낳고 살고 싶다.

그래서 1년이 지나고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시골에 계시는 분들과 친구들과 동생미자랑 부모님이 계시지 않지만 그것으로 난 만족한다. 아들도 낳고 정말 행복이란게 이런거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