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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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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


BY 장미혜 2007-10-26

종갓집의 장남인 남편 탓에 난 아들을 낳아야 했다. 아니 딸 둘을 난 후에 난 더욱 절실히 아

 

들이 갖고 싶었다. 스물여덟이 되기도 전에 난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사람들은 대게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고 했고 몇몇 남 말하기 좋아하는  여인네들은 나보고 젊은 것이 독하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난 그리 독한 여자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본시 남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이란 사소한 일에도 다소 까칠해지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 난 별로 신경쓰지 않았

 

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의 특성상 내 앞에서 직접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난 누

 

구를 미워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서른이 되기 전에 서둘러 세 아이의 엄마

 

가 되었기 때문에 - 나의 결혼 생활은 스물한 살 때 시작되었다 - 나의 20대는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서른이 갓 넘은 나에게..  두 아이 학교에 보내고 막내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는 아침 전쟁 시

 

간만  끝나고 나면 이제는 어느 정도의 여유가 찾아온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홉시 사십분에 오는 노란색 미니버스에 아들을 태워 보내고는 각자의 소

 

중한 '작은 나'를 혹은 '작은 그'를 배웅 나온 자모들과 가벼운 수다와 함께 인사를 하고는 집

 

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아직..여기 살아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 유난히 흰 피부에 팔뚝이 멋진, 그리 미남은 아니

 

지만 웃는 모습이... 처음 보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던...  그였다.

 

 "아..예. 근데 누구신지.... 처음 뵙는 거 같은데.. 혹시 이사 오셨어요?"

 

 "아뇨. 아직은요. 닷새 뒤에 이사해요.  그리구.. 우리 처음 보는 거 아니에요.

 

  기억 못 하시다니 서운한데요."

 

서운하다면서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순간 민망함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와 난 정말

 

당황했다. 누굴까? 언제 봤지? 기억 못하는 게 서운하다는 건 언젠가 적어도 말이라도 한번

 

쯤은 해봤던 사람이라는 건데...

 

 "죄송해요. 얼른 기억이.... 진짜 죄송해요.. 누구..........?"

 

 "닷새 뒤면 이사하니까 그 때까지 잘 생각해 봐요. 앞으로 자주 뵙겠네요"

 

 "아.. 예...예..."

 

내 머뭇거리는 듯한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그의 날렵한 자동차 앞으로 걸어가

 

고 있었다. 차문을 열면서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해 보이고는 그는 날썌게 아

 

파트를 빠져나갔다.  왠지 묘한 여운이 느껴졌다.

 

 

 

그날 집에 들어와서부터 나에게는 숙제가 하나 생겼다. 누구지? 누굴까? 나에게 좋은 기억을

 

찾게 해줄 사람일까? 아님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내가 애써 잊었던 사람일까?

 

설레임과 불안함이 동시에 오는 야릇한 기분에 난 그날 하루.. 집안일을 공쳤다.

 

 

 

 

그 후, 며칠 동안은 학교 자모회 일로 무척 바빴다. 고맙게도 우리 딸들은 공부를 아주 잘 해

 

주었다. 원래 활동적인 성격이기도 하고 어릴 적 내 학창시절의 설움을 달래고픈 마음에 난

 

학교 자모회 일을 무척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내겐 너무 착한 딸들 덕분에 또 내 마음의 상

 

처 때문에 난 학교 일이 하나도 힘들거나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설명하기 어려운 자부심마

 

저 느끼며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생각이 다른 분들은 부모가 너무 극성이면 않된다고 손가

 

락질도 하겠지만 그런 분들께는 이렇게 말해드리고 싶다. 누구나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 치

 

료하기 위해 병원도 다니고 신앙의 힘도 빌리며 애쓰듯이 나 또한 내 어릴 적 상처에 대한 치

 

유책으로 병원도 교회도 아닌 또 다른 힘을 빌린 거라고...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는 나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잠시 미

 

루어주는 아량을  갖어 주시길 바랄뿐이다.

 

 

학교 일로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는 동안 어느새 나흘이 지났다. 그리고 닷새 째 되는 날, 어

 

느새 또 다시 찾아온 '가을 불면증' - 가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나만의 고질병 -때문에

 

아침부터 난 초췌한 눈으로 베란다에 나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늘은 하늘이 아니라

 

후편 주차장의 장미 넝쿨이 아직 아름다운 울타리 쪽이었다. 아직도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하얀 그를 난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라고 했는데...'

 

한참을 지났을까 멘솔 한대 태워야 겠다는 생각에 일어서려는데, 장미 담장을 돌아 이삿짐센

 

터의 사다리차 한대가 들어왔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베란다 한 구석에서 쪼그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멍청한 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시 일어나 밖을 살폈다. 사다리차와

 

탑차에선 유니폼 조끼를 입은 이삿짐센터의 직원들이 서너 명 내렸다. 사다리차는 5호 줄에

 

멈춰있었다.  그들은 날씨에 관한 말을 주고 받는지 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몇 마디를 나누고

 

는 이내 바쁘게 움직였다. 조끼를 입은 사람 이외엔 아무리 둘러봐도 집주인과 같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방금 떠난 마지막 버스를 잡으려고 뛰던 것보다도 더 빠르게 나의

 

좁은 집을 뛰어가.. 앞쪽 주차장이 보이는 창문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그때처럼 그 짧은 거

 

리가 그렇게 멀어보였던 적은 없었으리라..복도식 아파트라 승강기 옆쪽으로, 여러 명이 같

 

이 쓰는 '공중에 떠있는 초라하고 작은 마당'의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앞편 주차장을 내려

 

다보았다. 난 한 눈에 그의 날렵한 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오늘도 말끔하게 세차되어 있는

 

그의 차는 주차장을 환하게 만드는 듯 했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그렇게 몇 분 더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를 볼 순 없었다.

 

 

 

한두 시간이 지나 사다리차의 사다리가 내려가고 조끼를 입은 남자들이 담배를 한 개피 씩

 

나누어 피울 때까지 난 수시로 앞, 뒤 주차장을 오가며 그를 찾았다.

 

 

하지만 그날 사다리차가 돌아가고 몇 시간이 더 흘러서 아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까지..

 

난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날, 베란다에 있는 작은 재떨이를 난 두 번 비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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