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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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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민수


BY 김덕길 2007-09-26

탄창

2편: 철수와 민수




무덤을 다녀온 이튿날도 할머니는 여전히 시장바닥으로 출근을 했다.
치매에 걸려 시장바닥을 무릎이 다 까지도록 그렇게 기어 다녀도 할머니의 입에서 떠날 줄 모르는 말이 있었다.

“아녀! 우리 아들이 그럴 사람이 아녀! 내 아들이 얼마나 효자인데 절대 아녀! 생사람 잡지 마! 아이고 민수야! 내 아들 살려내! 민 수 야!”
학교가 파하고 연지 초등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시장으로 몰려나와 바닥을 기어 다니는 할머니의 흉내를 냈다. 탄창을 질질 끄는 할머니처럼 아이들도 저마다 손에 나뭇가지를 쥐고 질질 끌었다. 아이들도 할머니가 했던 그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할머니가 왜 저렇게 미친 사람처럼 시장바닥을 기어 다니는지, 왜? 할머니가 탄창을 질질 끌며 무릎이 다 까지도록 기어 다녀야 하는지 아이들은 관심이 없다. 단지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단순한 놀림의 대상이었고 시골 학교에서의 유일한 심심풀이의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철수와 민수는 한동네에서 자랐다.
거의 단짝이라 할 만큼 둘이는 붙어 다녔다. 철수는 마른 체구에 키가 컸다. 흔히들 꼴통이라고 하는 그 꼴통이 딱 철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면서 깡다구는 어찌나 세던지 누구라도 철수 앞에만 가면 뻑뻑 기었다. 민수는 철수와는 성격이 반대였다. 보통체구에 머리가 비상했다. 무슨 일을 맡기면 그 일을 끝까지 해치우는 끈기가 있었다. 민수는 말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 민수와 철수가 붙어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민수의 성격이 낙천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철수도 민수에게만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민수의 비상한 머리를 따라갈 재간이 없었기 때문에 철수는 민수에게만은 잘 대해주었다. 철수와 민수가 친해지게 되었던 계기가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철수가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갔을 때의 일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의 봄은 황사를 몰고 다가왔다. 중국대륙에서 거침없이 휘몰아 들어오는 황사바람에 세상이 다 노랗게 보였다. 아이들은 황사가 오건말건 노는데 여념이 없었다.
정읍 이평면 창동리는 철수와 민수가 자란 곳이다. 학교가 끝나고 시정에 애들이 몇 명 모였다. 철수가 애들을 모아놓고 말을 했다.
“야! 오늘은 총쌈 할거야! 먼저 발각 되어 죽은 놈은 얌전하게 죽은 척 해! 자꾸 안 죽었다고 우기면 내가 팍 죽여버릴거야! 알았냐?”
철수의 우격다짐에 대꾸하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 총싸움을 하다보면 분명 ‘땅!’ 하며 총을 맞았는데 좀 만만하게 보이는 애들은 안 죽었다고 우기기 일쑤였다. 말로 쏘는 총싸움이기에 또 우기면 힘이 약한 애들은 “그래 이번 한번은 봐줄게 다시 해 그럼”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듯 그렇게 총싸움을 했던 것이다.

민수는 철수가 그러거나 말거나 마른 수수깡을 가지고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야! 최민수! 너 임마 지금 뭐해?”
철수가 신경질 적으로 물었다.
“응, 총 만들고 있어”
귀찮은 듯 민수가 대꾸했다.
“총은 뭐 하러 만드냐? 그냥 나뭇가지 끊어서 그걸로 총이라 생각하면 되지!”
철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뭐든 자기 방식대로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민수가 장난감 총을 다 만들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철수는 자기 말은 듣지도 않고 총만 만드는 민수가 눈에 거슬렸다.
“너 나랑 닭싸움 한번 하자. 어때?”
살살 시비를 걸어오는 철수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민수도 쉽게 포기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좋아 철수 너 나하고 한번 붙자!”
“아쭈 저게? 날 물로 보네? 야 영곤아 네가 심판봐!”
두 사람은 시정 마당 모래판에 바지를 걷어붙이고 싸울 준비를 하였다. 닭싸움이란 한발을 손으로 들고 서로 무릎을 이용해 밀어내는 게임으로 둘 중에 먼저 다리를 놓는 사람이 지는 것이었다.

철수는 펄펄 날았다. 발 한 짝을 들고도 마당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민수를 공격하였다. 민수는 시골에서 소를 키우며 소 풀을 베어 지게에 지고 다니기를 많이 해서 중심하나는 끝내주게 잡았다. 중심을 잡고 서 있으면 손으로 밀어도 끔쩍 하지 않는 친구였다. 철수가 아무리 공격을 해도 민수가 중심을 잃지 않자 슬슬 약이 올랐다.
‘어쭈? 저 새끼 제법인데?’
철수는 민수를 어떻게 넘어뜨릴까 궁리를 하고있었다. 민수는 이때다 싶었는지 우렁차게 철수를 다리로 밀고 들어왔다.
‘꽈당!’
철수의 몸이 마당에 굴렀다. 통쾌한 민수의 승리였다.
“야..씨벌 다시 해! 삼세판이잖아 새끼야!”
분명히 삼세판을 하자고 규칙을 정한 적이 없었는데 철수가 우겼다. 민수는 4학년 중에서 싸움‘짱’인 철수를 당할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그래, 대신 지면 깨끗이 항복하는 거야. 알았지?”라고 말했다. 철수는 “아이고 저 자식 봐라. 내가 언제 지면 졌다고 하지 안 졌다고 했어? 까불지 말고 얼른 시작해. 야, 심판 뭐해 임마?”

분명히 민수는 철수를 이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두 번을 져 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철수가 잘해서 이긴 걸로 알지만, 민수와 철수 사이에는 누가 진정한 승리자인지 두 사람 끼리는 훤하게 알고 있었다.
민수는 수수깡으로 권총을 보란 듯이 만들었다. 작은 탄창까지도 그럴듯하게 만들더니 심지어는 콩알과 고무줄을 이용하여 총알이 발사되도록 만들어내기까지 하였다.
드디어 총싸움이 시작되었다.
두 패로 갈린 철수파와 민수파는 종횡무진 이평중학교 측백나무사이를 누비며 마치 ‘오케이 목장의 결투’란 영화처럼 한쪽이 총에 맞으면 슬로우비디오처럼 멋지게 죽는 폼도 잡았고, 총을 쏠 때도 그냥 탕탕이 아니라 세바퀴 점프를 한다음 한바퀴 회전을 건 후에 땅바닥에 착 엎드려 총을 난사하는 시늉을 했다.
철수와 민수는 막연하게나마 어른이 되면 카우보이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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