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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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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사랑


BY 선유 2010-07-23

학교로 향하는 승민의 발걸음은 무겁다.

오늘로 파란점퍼는 사직을했다.

그가 왜 직장을 그만 두었는지. 또 어디로 간것인지

승민은 알길이 없다.

귀동냥으로 그저 그가 너무 많은 일에 지쳐 만성피로로

쓰러질 정도가 되었으므로 집에서 요양을 해야 한다고 들엇을 뿐이다.

승민은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텅 빈 것 같고

갑자기 마음 한 구석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이 꺼져버려

삶이 정지 된 듯 했다.

별로 무겁지도 않은 가방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쓰러질듯 걷고 있는

승민을 윤주 역시 힘없이 바라보았다.

통학버스에 오르면서 부터 지금까지 단 한마디의 말도 않고

둘은 낯익은 길을 걸어갔다.

제일처음 꽃집을 지나쳐 첫째,둘째,셋째 분식집을 차례대로 지나갔다.

그 다음은  레코드 테잎 가게이다.  그 곳에서는  L가수의 '나 항상 그대를' 이란

곡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간판도 썬팅도 온통 분홍색으로 뒤덮인 새로운 물건들과 포장지로 가득차 있는

선물집을 지나쳐 늘 가던 떡볶이집 역시 

아무런 느낌없이 모두 지나쳐 갔다.

어느순간 정문에 들어섰을때,  승민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규율부 선배들이 복장과 명찰뺏지를 검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민은 서둘러 필통에서 명찰을 꺼내 핀으로 왼쪽 가슴 주머니쪽에 고정시켰다.

복장이 불량하거나 명찰을 챙겨오지 못한 아이들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한쪽으로 비켜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숙자는 오늘도 또 걸려서 밀려들어오는 아이들을 힐끔힐끔 살피다

승민과 윤주를 발견하고는 큰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옆에 서있던 규율부 지도선생님은 그런 숙자에게 꿀밤을 먹이며 조용히 하라고

엄하게 꾸짖었다.  숙자는 그래도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거리며 윤주에게 교실에서

보자는 눈짓을 보내왔다.

숙자는 또 운동장 다섯바퀴를 돌아야 할것이다.  그것이 정말 죽기보다 싫다면서도

매번 명찰을 챙겨오지 않는 숙자를 승민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숙자에게 물었더니,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벌써 세 번째 명찰을 잃어 버렷다는 것이다. 

"숙자 제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어쩔땐 정말 챙피해..."

윤주는 승민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뭘 그렇게까지 창피할게 있냐고 댓구하고 싶엇지만, 승민은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1교시 출석체크가 끝나갈 무렵 숙자는 교실문을 열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자주 있는 일이어서 그런지 국어선생님은 한 번 힐끗 쳐다 보기만 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숙자의 그런 행동에 이미 아이들도 선생님도 무감각해 진것 같다.

국어는 승민이 특이 좋아하는 과목이지만,  파란점퍼에 대한 생각때문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항상 모든질문에 정확하게 먼저 대답하던 승민이

몇차례의 같은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창 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   선생님은

이상하다는 듯이 승민을 쳐다보고는 이름을 불렀다.

윤주가 승민의 팔뚝을 치자 승민은 그때서야 모든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은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이내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승민은 하루종일 내내 허공을 맴도는 같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들쑥거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학교가 끝나고 승민과 윤주는 숙자가 다닌다는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민은 사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윤주의 성화에 못이겨 건덩건덩 윤주의 뒤를 쫓아갔다.

3층까지 올라가자 윤주는 쏜살같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승민은 정말 들어 가고 싶지 않아 복도 창문에 서서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결에 나왔는지 윤주는 등뒤에서 승민에게 들어가서 등록을 해야 한다고

채근했다.   그때 윤주를 따라 나온 사람은 학원 선생님인듯 보였다.   윤주는

자신도 처음 왔으면서 오래전부터 학원을 다닌사람처럼 그 남자 선생님의 이름까지 말하며

소개를 했다.   갈색 안경테가 잘 어울리는 학구적인 모습의 그는 그냥봐도 선생일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그는 승민을 보자 눈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승민은 처음 본 그가  지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어,  왠지 똑똑하고 따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에게 찾아올 보랏빛 사랑을 예감하고는  잠시 멈칫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