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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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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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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1.


BY 그리움 2007-03-21

일제 말기에 유복녀로 태어난 복녀는 위로 오빠가 둘이다.

남편 없이 어린아이 셋을 데리고 어떻게 할수 없었던 그녀의 엄마는 어떤 장사치의 첩실 노릇을 하였었다.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를 돌아 다니며 장사를 하면서 그곳을 지나 갈때면 들려서 쌀도 팔아 주고 돈도 쥐어 주고는 했던 남자를 복녀는 아버지라고 불렀다.

새아버지는 가끔이지만 그래도 집에 오면 복녀를 무릎에다 놓고 아버지 노릇을 주기도 하였고  그모습을 복녀의 엄마는 바라보며 뒤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에게 아이셋만 달랑 남겨 놓고 떠난 복녀의 친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였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때가 복녀의 어린시절에서는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였다.그래도 오빠들에게 글씨를 배우기도 하고 가을이면 오빠들과 밤을 따러 산으로 가기도 하였던것이다. 복녀의 어머니도 남자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낮에 열심히 일을 다녀서 아이들 곯리지 않고 오빠들은 보통학교라도 다니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놈의 전쟁이 왠수였다. 갑자기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새아버지라고 생각했던 그남자와는 인연이 끊어졌던 것이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전쟁통에 죽었다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르며 알수도 알려고 알수도 없었다. 다행히 복녀네 가족은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다시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었다. 전쟁통에 먹을 것이 없었던지라 복녀는 한참 자랄 나이에 얼굴은 누렇게 뜨고 바짝 말라 있었다. 다행히 키가 부모를 닮아서 키는 컸다. 나이도 어느덧 15살을 넘어 가고 있던 때에 그녀는 동네사람이 소개 해주는 서울로 남의 집살이를 가기 위해  집을 떠난 이후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오빠들이 결혼을 했었고 복녀는 주인여자가 자신의 아들을 연모하는 같은 느낌이 들자  그녀에게

미국 가고 싶지 않냐면서 얼른 데이브를 소개 시켜 주었던 것이다. 어차피 보통의 한국남자를 만나서 다시 결혼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아는 복녀이기에 순순히 응했다.

덩치가 남보다 크지만 착한 데이브는 다른 한국남자들에 비해 순하고 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에게 굉장히 친절하고 영화에서 보는것처럼 자신에게 대해 주었다. 자신이 영화속의 주인공이 되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기기도 했다. 영자나 승미한테 오던 다른 미국남자들하고는 질이 다른것 같았다. 그들은 주로 여자의 몸만 탐했다. 영자의 말에 의하면 어떤 놈은 이상한짓만 시킬려고 하고 심지어 승미에게 흑인놈 한명은  승미를 병원에 실려 가게도 하고 때로는 혁대를 풀러서 때리는 놈도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데이브는 달랐다. 그는 복녀보다 3살이나 어렸지만 자상했다. 자신의 말을 알아 들을려고 노력했으며 특히 부대 안에서 맛있는것을 많이 갖다 주는것과 자신의 월급을 통째로 복녀에게 맡기기도 하였다. 전에 잠시 같이 살던 인간은 자신이 번돈을 절대 복녀에게 주는 법이 없었다. 두둘겨 패기는 그리 두둘겨 패는지 온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그런데 이사람은 같이 살기도 전인데 자신에게 돈도 준다. 소개시켜 명희 엄마는 미국만 가면 팔자가 피는거라고 잘하라고 하는데...

미국남자 그것도 미군쫄병과 만나는것이 이땅에서 의미하는것이 어떠 하다는것을 알기에 망설였던 복녀는 데이브의 달콤함에서 빠져 나오려고 고향에 갔다가도 며칠 안되어서 다시 데이브에게로 가곤 했던 것은 친정의 지긋지긋한 가난과 고향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보내는 눈길도 한때 첩실처럼 살았었던 엄마때문에 결코 곱지를 않앗다. 그런 눈길은 특히나 자신에게 올때 심했었다.  서울의 해방촌까지 가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안다는 표정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진것도 없고 배운것도 없는 자신이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 날수있고 정식으로 결혼생활을 할수 있는 방법은 데이브를 잡는일인 같았다. 괜시리 자신같은 것을 거뜰더 보지도 않는 철호 학생을 바라 봐야  소용 없는  일이란 것을 복녀 자신이 누구보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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