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 문제였어?"
진구는 속마음을 들키고 혼나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응"
"그냥 빨리 말해봐."
모든 걸 알고 싶어 하는 민정이 재촉했다.
"어머니께서 우리 둘만 나가라셔......"
민정의 눈을 피했다.
테이블 앞으로 몸을 바짝 내밀고 있던 그녀가 의자 뒤로 상반신을 젓히며 덜썩하는 소리와 함께 아예 드러눕는 자세가 된다.
"소희는......, 우리 소희는?"
체념한 목소리로 조용히 딸아이에 관해 묻고 있는 민정의 모습이 계절의 변화로 가지만 남은 앙상한 도로가의 플라타너스 같다.
"당신들이 키우신대."
진구는 왜 그의 어머니가 민정에게 이 사실을 직접 말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어머니는 역시 약은 분이었다.
아들과 며느리를 동시에 고통에 빠지게 할 줄 아는 머리를 가지 영리한 여우였다.
"말도 안돼! 엄마가 있는데, 생이별이야?"
상반신을 어느새 빨간색 보가 덮여 진 테이블 쪽으로 내밀며 진구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며 민정이 믿기지 않았던지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대학교육까지 받았다고 큰소리치는 시어머니에게 대들지도 못하고 소리 죽여 살았다.
어머니에게 아침에 그 말을 들을 때 소희생각을 하며 가슴이 아팠지만 진구 역시 그의 어머니를 이길 수 없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머니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의사인 그의 형 진철과 석사 학위를 받은 진철의 아내 희숙뿐이었다. 형 진철은 일찍부터 어머니를 이길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전교에서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의사가 되었고, 부자 집 딸과 결혼 했으며 진구와는 달리 어머니 입김에서 먼 곳에 살고 있었다.
어쩌면 진철은 어머니의 차가움을 유전인자 속에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그렇게 어머니의 비위를 착착 맞추는지, 진구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비밀이었다.
"우리 어머니 차가운 분이잖아. 그런데 소희는 다른가봐. 진철 형을 제외하면 어머니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마음 쓰는 걸 못 봤어."
막막한 표정인 민정을 보며 이해해 달라는 듯 진구가 말했다.
"그래서? 또 날더러 어쩌란 말이야?"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정이 진구를 보며 말했다.
"당장은 아니니까 걱정마! 결정되면 말하랬어."
민정이 기가 막힌 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손 끝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가게의 물건인 양 의자에 가만히 기대고 있었다.
갑자기 소리가 작게 두번 울렸다.
진구는 메시지가 도착한 휴대폰을 열어보려고 꺼냈더니 22:40이라는 화면이 보였다. 어머니의 문자 메시지였다.
'이제돌아와라.네처한테빨래설거지밀렸다고말해라.'
"......"
할 말을 찾지 못해 민정이 따라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계산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9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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