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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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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영선 2007-04-06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검은색 외제차가 오래되어 낡은 그 건물 2층인 그의 아버지 상가건물 앞에 어울리지 않게 중고 배달용 승합차와 나란히 서서 빛을 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의 차는 진구의 형인 진철이 지난 해 그녀의 환갑에 선물한 차였다.

 진구는 그날 50만원을 떨리는 마음으로 넣은 봉투를 어머니에게 드렸다. 힐끔 봉투를 보고 손으로 두께를 가늠하더니 거실 소파에 손님처럼 앉아 있는 그의 형 진철과 그의 아내 희숙이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어머니가 그녀가 자는 안방으로 봉투를 휙 던져 넣었다. 그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추려고 부엌에서 아침상을 차리고 있는 아내 민정을 도우러 가는 척 해야 했다.

 그의 어머니가 차 트렁크에 열쇠를 꽂아 조심스럽게 열었다.

 벌컥 트렁크가 열린 다며 무선조정장치인 자동키가 있으면서도 그녀는 늘 그런 방법을 이용해 차 트렁크를 열었다. 진구가 열린 트렁크 안으로 골프백을 실었다. 트렁크 문을 그녀가 화를 내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며시 내려놓았다.

 오늘은 별 일 없이 살살 트렁크 문이 닫혀주어 말썽없이 지나갔다.

 그는 차 뒤에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운전석에 오른 환갑이 넘은 그의 어머니는 그 나이답지 않게 활기차게 차문을 닫았다. 골프백과 같은 브랜드로 보이는 빨간 색 상의는 털실로 짠 것 같이 되어 있고, 같은 색 하의는 약간 두꺼워 보이는 치마차림의 골프웨어를 입고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 없이 차 안으로 뒷모습을 감춘 그녀는 겨울이라 그런지 진구에게는 더 차갑게 느껴졌다.

 진구는 그런 상세한 말을 입에 올리지 않기로 한다.

 환갑 때의 그 일이나 아침에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의 시간이 짧아 그도 믿어지지 않았다는 그 말을 민정에게는 차마 할 수가 없다.

 어떤 날은 대나무 숲을 찾아가 그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날이 있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골프연습장으로 사라진 후 아버지의 독촉이 없었다면 시외로 운전해 가서 그 말을 외치고 다시 배달 일을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심정 역시 아내에게 말을 할 수가 없다. 그 생각을 하며 진구는 그도 아내가 말하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한 화병으로 일찍 죽을 것 같아 죽더라도 아내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없는 용돈 쪼개 보험이라도 하나 더 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 와-아! 드디어 그렇게 되었구나. 6년이 지나갔는데...... 믿을 수가 없어. 거짓말 아니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민정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진구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민정아......"

 뜸을 들일 수 밖에 없는 순간이 되었다.

 "응? 뭐?"
 환한 얼굴의 민정에게 사실을 말하기가 힘이 든다.

 "조건이......"

 말끝을 흐리는 그런 때는 말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 진구가 하는 버릇이었다. 결혼 전에 애가 생겼다고 말씀드릴 때도 길길이 뛰던 어머니 앞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길길이 뛰던 어머니와 민정이 닮은 단 한 가지는 성질이 급하다는 그 점 뿐이었다. 성격이 급한 민정이 다급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 일주일에 한 번 뵈러 가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게 대수야?"
 흥분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녀다운 상상이라며 철업는 생각이라고 민정에게 금방 대꾸해 줄 수가 없다. 진실은 그게 아니고, 민정아 말하기가 힘 드는구나. 그는 어머니의 간교함에 감탄하며 민정에게 말을 할 때마다 뜸을 들인다.

 "그게 아니고......"

 퍼뜩, 진구가 눈을 피하며 우물쭈물하는 폼이 뭔가 심각한 고백을 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은 민정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났다. 차가 식어갔다. 때 이른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작은 꼬마전구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딸 소희는 빛이 나는 물건과 아빠 자동차의 삑삑 소리나 엄마 민정이 일하는 가게의 출입문 위에 달린 방울이 딸랑딸랑하는 그 소리를 별스럽게 좋아했다.

 "소희 문제구나!" 작게 중얼거리며 민정이 묻는다.

<8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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