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달아나자 진구는 이불 밑에서 몸을 일으켰다.
찬 기운이 느껴져 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오래 된 집이라 난방이 부실해 방안 공기와 두꺼운 솜이불 아래의 온도 차이가 심했다.
지난 겨울부터 보일러 공사를 다시 하자고,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돈이 아까웠던 아버지는 "네 돈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공사를 하고 싶으면 너도 네 방 보릴러 공사비요을 보태든지." 그렇게 말씀하시고 입을 다무셨다.
아버지는 낮은 임금으로 그의 가게 두 곳에서 필요한 노동을 아들인 진구와 며느리인 민정으로 부터 제공 받았다. 지금으로 봐서는 진구와 민정이 분가하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저금해야 전세비가 모일지 기약이 없다.
아버지는 진구에게 월급을 꼭 만 원 짜리 지폐로 130장을 건네주고서 계산은 정확해야 한다며 30장을 도로 달라고 오른 손을 내밀었다.
그 30장은 진구내외가 살고 있는 아버지 집의 방세였다.
그 일을 진구는 결혼 초에 아내인 민정에게 숨겼으나, 지폐가 30장이나 비는 통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대로 그녀에게 털어 놓아야 했다.
민정이 하루는 그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진구씨! 진구씨 아버지가 왜 진구씨 어머니 반대를 무릎쓰고 우리 결혼시켰는지 그 이율 이제야 알겠어. 가게의 종업원이 필요했었나봐."
사건을 해결한 형사처럼 결론을 똑 부러지게 내렸다. 실은 거기까지는 진구로서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진구는 '사람이 죈가 돈이 죄지'라고 그 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돈에 대한 집념만큼은 그 누구도 아버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워 있던 그녀 역시 잠에서 약간 깬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민정은 무슨 이유때문인지, 어둠 속에서 웃는 듯 했다.
"나 어때?"
민정이 솜이불을 목에서부터 내리는 모습이,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렴풋이 보였다.
소리로 미루어 정황을 짐작하니 그럴 것 같았다.
두꺼운 커튼 때문에 실내가 어두워, 방금 잠이 깬 진구의 눈에는 그녀의 상반신 실루엣만 겨우 보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뭘?"
민정의 코 소리 섞인 그 목소리가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려운 부탁을 할 때면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진구는 민정에게 부러 퉁명스럽게 내 뱉었다.
어둠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 물음을 맞는 표현이기도 했다.
그녀의 "나 어때?"라는 말은 보이는 게 없는 이런 상황에서 "뭘?"이라는 그말은 그녀가 설명해 주길 바라는 물음이었다.
"얼릉, 진구씨. 내려가서 스탠드 켜고 오세요."
민정이 답답했던지 진구에게 재촉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옆을 돌아보니 민정이 이불을 마저 아래로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에 적응하는 시간보다 스탠드를 켜고 오는 쪽이 빠르겠다.
" 갑자기 얘가 왜 이래? 너 약 먹었냐?"
잠에서 깬 것도 억울하고 갑작스런 민정의 태도가 걱정스러워 진구가 의아한 마음으로 물었다.
술이라도 한 잔 한 건가?
코맹맹이 소리는 다 뭐야?
그리고 갑작스런 저 높임말은 어떤 의도가 있는 거야?
조금 두려웠다.
진구의 어머니가 무얼 얻기 위해 말하는 목소리같이 들려서이다.
진구는 자신이 또 어이없어 진다.
'나도 참' 민정이 손으로 그의 등을 밀었다. <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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