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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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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동욱의 병원행)


BY 황영선 2007-03-07

 도혜옥이 떠났다.

 마지막으로 주영의 집과 가까운 절에서 만났다.

 태양이 막 정오를 치솟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절 문을 나서는 주영에게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동욱은 몇 달 동안 술로, 일로, 몸을 혹사시키더니 위와 장에 탈이 나 기어이 병원에 링거를 꽂고 입원했다.

 병원은 이 지역에서 제일 크다는 진해 제일 병원이었다.

 병원은 큰 도로 옆에 있었다. 입원하지 않았을 때 동욱은 병원 옆 도로를 통해 공사현장으로 출퇴근했다. 그래서였던지 회복기미가 조금씩 보이자 동욱은 복도의 창가에 서서 도로를 자주 내려다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모자를 쓰지 않은 동욱의 뻣뻣한 머리카락이 잡초처럼 삐죽삐죽 솟아서 춤을 추었다. 동욱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머리카락이 긴 동욱이 이상한 것처럼 동욱의 그런 모습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영은 생각했다.

 

 주영은 좁고 낡은 병원 건물로 들어서며 그 도시의 세월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병원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오갔고, 병이 치료되어 퇴원했을 것이다.

 시간이란 것이 병원건물처럼 영속성을 가지고 주영에게 다가왔다.

 

 병원 문을 밀고 들어서는 주영의 오른 손에 천으로 된 시장바구니 같은 것이 들려있다. 짧은 청치마에 소매 없는 흰색 라운드 티를 입은 주영의 살빛이 병원냄새를 풍기는 것 같다.

 병원은 언제나 크레졸 냄새가 난다. 주영의 샌들 신은 왼쪽 발걸음이 조금 불편해 보인다.

 주영의 코로 병원의 크레졸 냄새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섞여 후각을 어지럽힌다.

 주영이 들고 있는 바구니에서 냄새가 났다.

 주영이 3층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트를 두고 계단 쪽으로 간다.

 조심해서 거어야겠다고 주영은 생각했다. 지난 번 아파트 계단에서 삐끗한 주영은 아직도 발목이 영 시원찮다. 저녁시간이 되긴 이르지만 동욱에게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든주영은 자신의 아픈 발목보다 동욱의 위와 장을 더 걱정하고 있다.

 

 주영은 전복죽을 좀 쑤어 오는 길이다. 전복 파는 여자한테 묻고 요리책을 펼쳐 놓고 끓인 죽이라 맛이 어떨지 참기름 냄새 때문에 시장 끼를 느낀 주영도 먹어 보고 싶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동욱이 뭐가 유쾌한 지 혼자 웃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중년 남자가 퇴원했고, 고등학생이 있었는데 잠깐 외출 중인지 침대가 비었다.

 그 남자애가 아픈 게 맞는 건지 병문안 온 친구들과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입원실을 ㅇ옮겨 달라고 부탁할까 했더니 동욱이

 "그냥 둬. 오랜만에 사람 사는 구경 좀 하자." 라고 말하며 주영을 말렸다.

 오히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욱의 얼굴빛이 출근할 때 보다더 밝다. 입원한 첫날은 하루 종일 잠만 자더니 조금씩 기운이 나던지 간호사와 농담까지 주고 받았다. 동욱의 넉살 좋은 그 모양은 동욱을 탈이 나기 전으로, 진해에 내려오기 이전으로 돌려놓은 것 같아 주영이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지금 먹을래? 오빠?"

 "그 오빠란 소리 그만해라. 주영이 너랑 나 닮았단 말이야. 오누인 줄 안다고."

 "어머나 끔찍한 소릴 하셔요. 동욱 오라버니와 내가 닮았다고요?  얼굴이 요렇게 새까맣게 돼서 뭐가 닮았단 말인가요? 오라버니 웃기지 마셔요!"
 "얼굴이야 겨울 되면 다시 하얗게 될 걸. 죽 먹을게. 배 고프다. 여기로 올라와 같이 먹자."

 동욱이 상반신을 일으키며 침대 위를 손으로 두드린다.

 "왜 웃었어"

 주영이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아까 웃는 동욱이 보기 좋았다. 주영은 동욱의 침대와 붙어 침대 끝에 눕혀 진 판인 밥상을 펼쳐 바로 세운다.

 

 "있잖아. 이 옆에 누워 있던 고등학생이 친구 놈이랑 나누던 말이 생각나서."

 "언제 말이야?"
 주영이 집에서 가져온 시장바구니 같은 데서 큰 보온 물병을 꺼내고 다시 얇은 코렐 국그릇 두 개를 꺼낸다. 주글 국그릇에 조심스럽게 붓는다. 식지 않은 죽이 국그릇 위로 하얀김을 모락모락 피어 올린다.

 참기름 냄새와 노란 죽 색깔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주영은 회사 다닐 때 일식집 같은 데서 먹어 보긴 했어도 자신의 손으로 처음 끓인 전복죽을 보며 동욱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주영이 니가 집으로 돌아가고 났을 때 말이야. 진해 버전으로 해 줄까? 서울버전으로 해줄까?"
  동욱이 벌써부터 웃음을 참기 힘든 표정이다.

 "오빠 진해 사투리 할 줄 알아?"
 주영이 물었다.

 "당연하지!  현장 인부들 거의 이 고장 사람들이야. 아니면, 진해 인근 사람들이고, 진해 사투리야 끝에다  했다 아이가, 맞다 아이가. 그랬다 아아가 라고 붙이기만 하면 돼. 내 지금 배고푸다 아이가? 흐흐."

 동욱이 자신이 말해 놓고 재미있다고 생각되었던지 흐흐 웃었다.

 "그냥 서울 버전으로 해봐. 잘 하지도 못하면서 진해 버전으로 하지 말고."

  "그래 이러지 뭐야. 문병 온 친구 놈이 나 집에 아무도 없어서 내가 라면 끓였다. 그런데 물이 너무 많아서 싱거웠어. 그랬더니 옆 침대 놈이 그러는 거야. 그럼 거기다 간장을 부어. 주영아 이게 무슨 의민지 아니?"
 동욱이 물었다.

 "글쎄? 간이 맞춰 지는 거 아냐?"
 주영이 숟가락을 꺼내며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잖아."

 동욱의 쌍꺼풀져 동그란 눈이 그 보라는 듯 반짝였다.

 "그런데? 뭐?"

 주영이 물었다.

 "그게 아니었어.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병문안 온 그 녀석이 물었겠지.그랬더니 옆 침대 녀석이 그야 그러면 당연히 짜서 못 먹게 되겠지!그러며 웃는 게 아니겠어? 너무 엉뚱해서 큰 소리로 세 명이 웃었다니까 그 바람에 김 주희 간호사까지 막 달려왔었어."

 주영도 그제야 동욱을 따라 웃었다.

 주영의 눈에 눈물이 비치도록 한참을 웃었다. 또 김주희 간호사가 달려와 이마 위로 여드름 난 얼굴을 찡그릴 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주영은 모든 일을 잊고 마음껏 웃고 싶었다.

 

 그래 고민할 필요 있나? 지현과의 이별이 일시적이든 그렇지 않든 세상은 돌아가니까.

 

 동욱은 전복죽이 맛있다며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침대 옆에 동욱과 붙어 않은 주영도 적당히 식은 죽을 천천히 먹었다. 동욱의 유쾌한 기분이 전햊져 소금 간이 약간 짠 듯한 죽이 주영에게도 먹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동욱은 일주일을  채우고 툉원했다.

 

 정상적인것처럼 보였는데, 술과 일과 사람에 찌들어 영 기력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영은 벌써 늙어 가는 신랑을 두었다며 동욱을 구박했다. 별 말없이 구박을 받아 들이는 동욱을 보며 주영은 그 역시 자신의 그런 모습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욱이 퇴원한지 며칠 지나지 않자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었다.<19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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