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서운 이야기 하나 해 주까예?"
도혜옥이 주영의 옆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차를 이래 마시자고, 차 도구를 껴내는 그 순간 말이라예. 사람들이 나를 달리 보대예. 저런 아지매한테 저런 취미가 있었나 하고예. 나는 절에 다닌 지 오래 됐어예. 차 마시는 법도 내가 다니는 절의 스님께 배웠지예. 차를 마시는 절차가 복잡해 보여도 좋은 차를 한잔 마시고 난 사람들은 그런 절차쯤이야 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예. 결국은 그런 절차 뒤에는 차를 마시는 일이 남지예. 마시는 거야 국도 마시고, 물도 마시고, 음료수도 마시고, 술도 마시니 목구멍으로 넘기면 되는 거라예. 그래도 이 기막힌 차 맛을 음미하는 시간이 나는 최고로 좋아예.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손님들 때문에 차를 마실 시간이 없어예. 손님들 때문에...... 손님들이 장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가장 우선 아니겠어예?"
그저 묻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주영은 도혜옥의 손님들 때문이라는 그 말이 차를 마신 후에 남아 있는 여운이려니 생각했다.
기분 좋은 느낌의 여운 말이다.
주영은 다리가 저려왔다.
좁은 공간에 한참이나 앉아 있어서였다.
그 때 막 두명의 여자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주영이 전에 서울에서 수영을 다니며 보던 나이또래였다.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정도.
그녀들이 가게로 들어서자 네 사람이 한꺼번에 몰린 가게가 좁다.
"저는 가 볼게요. 그리고 제 이름은 박주영이에요. 다음번에 들릴 때 집 전화랑 핸드폰 번호도 알려 드릴게요. 은행 볼 일 끝나고, 집으로 가 봐야겠어요."
"그러이소. 시간나면 또 차 마시러 오이소. 비 오는 날이 한가해예. 문을 여는 아까 그 시간이 손님이 적을 땝니더."
주영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가게 밖에서 연두색 우산을 펼쳤다.
가게 바로 앞에 악어 모양이 그려져 있는 숙녀복 집과 화장품 가게가 눈에 들어 왔다.
아마 오늘은 저 집 주인들 역시 도혜옥처럼 한가할 것이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축제 때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축제 대 삼라만상의 그릇들이 많이 팔렸는지 주영은 궁금했다.
의류일도 매출과 직결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늘 주영은 가게들의 매출이 궁금했다.
매출이 오르지 않으면 끊임없이 상사들의 질타를 들어야 했고, 동욱의 큰 누나도 매출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했었던 것 같다.
<1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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