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850

무제


BY 황영선 2007-02-02

 어느 정도 사무실에 적응하고 몇 개월이 지났다.

 회사로 출근 한지 6개월 정도  지나자, 사무실에서 업무가 없는 시간에 책을 읽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런 시간이면 컴퓨터를 켜 인터넷 신문들을 뒤적거리거나, 카드 청구서외에는 아무에게도 오지 않는 메일 박스를 열어 보는 일로 사무실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서 일을 도우고 싶었지만, 점심때만 보아도 여자들의  수다는 대단했다. 나는 그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벌써 입방아에 오르내렸겠지만.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큰 글씨의 농협에서 준 달력에서 나는 4월 달을 찢어냈다. 5월로 접어든 지 며칠이나 지나 있었다.

 매일매일 출근해서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 나면 시간이 9시 20분이었다.

 아침마다 이 시간쯤이면 정 부장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마 오늘도 예외일 리가 없었다.

 "쓰발! 또 난리네! 지랄들이야. 조금만 늦어도 불난리라니까, 누가 쓰발, 내 휴대폰 번호 알려 준거야? 최인미씨가 알려줬어요?"

 

 정부장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침부터 사무실로 걸려운 전화를 한 사람의 목소리로 여러 차례 받았다. 계란이 출발했느냐는 전화였다. 보나마나 그가 화내는 이유는 전화 저쪽의 누군가에게 시달렸을 그 일 때문이었다.  눈알이 부리부리한 그가 나를 쏘아 보며 따지듯 물었다. 다른날 처럼 오늘 역시 화가 단단히 난 얼굴이다.

 

"지는 아입니다. 부장님이 술 취해 갖고 알려 준거 아입니까? 생각 안 납니까?"

 박 주임이 갑자기 부친상을 당했담며 정 사장한테 며칠 시간을 달라는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정사장이 사무실에 출근해서 그렇게 알려 주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정 사장 쪽으로 눈길을 놀렸다.

 "배달 안 해버려! 확!"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책상 아래를 구두 앞부분으로 찼다. 발은 안 아픈지 모르겠다. 소리가 요란했다. 눈살을 찌푸렸다. 성질머리가 더러웠다. 이 시간이면 그의 횡포에 시달렸다. 정 사장이 사무실에 없는 날은 고스란히 혼자 견뎌야 하는 짜증나는 일이었다.

 "어이 정 부장! 회사 말아 먹을 일 있어? 그 성질머리 못 죽이면  확 잘라버린다.! 주 거래처라고 해 봐야 한 두 곳뿐이야. 당신이 그러면 나는 망한다고."

정 사장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반은 농담 섞인 말투였다.

 좀 단호하게 말하면 저 버릇이 고쳐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부장에 대한 사장의 태도는 흐지부지 그 자체였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겠지만, 내가 사장이라면 벌써 확 잘라 버렸을 것이다.

  "그거 바라던 봐요. 확 잘라요! 형님이 필요하달 땐 언제고, 나한테 그런 말 할 수 있는 겁니까? 내려 와서 도와 달랄 때는 언제고."

 저 말은 정 부장의 18번 이었다. 저러다 정말 잘리면 어쩔까 싶기도 했지만 지난 6개월 동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의 배포가 한편으로는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두사람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가. 성질 죽이고, 나가봐. 정부장이 안 가면 내가 가야 돼. 오늘 손님과 12시에 점심약속 있단 말이야.  그리고 오후에 농장 계란도 살펴보러 가야하고, 2시간 거리를 내가 갈 순 없잖아. 그 일로  당신이 사는 줄 알아. 이 사람아."

 달래는 투로 사장이 말했다.

 사람 좋은 정 사장은 그렇게 말하면 정 부장이 알아들을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면 속이 터졌을 그의 행동이 사장한테는 별로 통하지도 않는 게 눈에  보였다. 내  참 책상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렇게 차대는지.

 "에이 씨!'

 다시 책상 아래를 차대고 휑하니 나가 버렸다.

 

 "무신 일인뎅요? 사장님?"

 현장에 근무하는 여자들에게 사무실 건너의 사원용 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을 때  들은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모르지? 지난번처럼 부인이 집을 나갔거나 그렇겠지. 저 사람도 안됐단 말이야. 첫째 부인은 아이 둘을 두고 세상을 달리했지, 지금 부인은 아이들은 잘 돌 봐주는데 낭비벽이 심하다지 아마, 한 마디 하면 친정으로  짐 싸들고 간다며, 술을 마셔대니 부장이 성실하고, 사람은 좋은데 왜 그리 안 좋은 일만 생기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들 둘은 같이 술을 마실 때가 많은것 같았다.

 둘이 사우나에서 풍기는 냄새를 하고 웃으며 들어 오는 걸 가끔씩 봐 왔다. 겉으로 보기와는 다른 구석이 정부장에게 있다는 누로 사장이 대답하고는 이발하고 손님을 만나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정사장과 정 부장이 같은 성씨라 형제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정사장은  호리호리한 몸에 17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하고, 흰 피부에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에 비래 정 부장은 185센티미터의 큰 키에 체격이 좋고 눈이나 코와 입의 생김새가 크고 두꺼웠고 피부도 검은 편이었다. 출근 첫날 그들 둘이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나는 그들이 절대 형제 일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현장여자들이 두 사람은 촌수가 계산되지 않는 어머니 쪽 먼 인척관계라고 했었다.

 

 사무실에는 나는 정부장과 자주 부딪혔다.

 그 말은 정확히 옳은 표현은 아니고 늘 그의 큰 소리를 견뎌야 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면 다른회사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정사장의 예의 바른 성격이나, 사무실에 하루 종일 정 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진적에 회사를 그만 두었을 것이다.

 소개한 사람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내가 정 부장을 참아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는 전표양식을 트집 잡았고, 몸체가 파란색이고 흰색 뚜껑이 있는 쓰레기통이 더럽다면 꼭 물로 씻어서 엎어 놓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제 성질을 못 이겨 구두 끝으로 차대는 책상도 꼬박꼬박 물걸레질 하라고 소리쳤다. 그가 사는 집이 얼마나 깨끗할지 보고 싶었다.

 나중에는 싸우기 싫어 비위를 맞추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고집불통이라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이었다. 쓰레기통에 아예 분리용 비닐을 끼우려 해도  보기 흉하다며 못하게 말렸다. 좀 쉽게 살면 안 되는 사람인 그는, 나를 끊임없이 피곤하게 만드는 그런 일들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의부인 역시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사무실 벽에는 내가 근무하기 전의 미스 리라는 경리아가씨가 붙여 놓았다는 서류봉투만한 거울이 정 부장 책상 뒤에 걸려 있었다.

 윤진 아빠가 죽고 나서 거의 가꾸지 않던 얼굴의 턱 밑과 이마 위로 각질이 군데군데 일어나  거울 속의 여자는 엉망진창인 꼴로 나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만이라도 길러야겠구나.'

 거울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며 낯선 여자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뽀글대는 아줌마 파마에 쌍꺼풀진 눈가의 굵은 주름과 얇은 입술 옆으로 패인 또 다른 주금하나 화장 끼 없는 눈 밑에 자잘하게 내려앉은 죽은 깨가 도드라졌다.

 '저게 난가?'

 어느새 세월을 비켜 가지 못한 거울 속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최인미씨! 뭐하는 거요? 지금? 아침에 매출전표 끊어 놓으란 내 말 들었어요? 빨리 챙겨요 바쁘다고 또 지랄들이니."

 정 부장의 눈이 거울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참 제발 저 쓰레기통 좀 씻어서 엎어놔요! 어제 저녁에도 봤더니 커피 찌꺼기랑 껌이 묻어 있었어요."

 또 깜빡했다. '저 사람은 쓰레기통만 뒤지는 사람인가 쓰레기통과 연애하나?  왜 저리 저것게 관심이 많아? 참 별난 사람도 다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실랑이하기 싫어 아무 말 없이 책상 앞으로 걸어가서 매출전표와 세금계산서를 집어 그에게 내밀었다. 말도 하기 싫었다.

 "이제 말도 하기 싫다 이겁니까?"

 자꾸 시비조다.

 왼 손으로 전표와 세금계산서를 받으며 신경질 섞인 음성으로 툭  내뱉었다. 그의 눈은 오늘도 충혈되어 있었다.

 "아입니다. 제가 부장님하고 싸울 일 있십니까? 가보이소고마. 또 전화옵니다. 이따 쓰레기통은 씨어 놓을게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인간 같지 않은 저 사람과 싸워봤자 나만 손해다.

 오른쪽 옆구리가 갑자기 쿡쿡 쑤셨다.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다. 왼 손으로  검은색 티셔츠 위의 오른쪽 옆구리를 눌렀다.

"아-"

 안색이 창백해지는 그 모습에 놀란 정부장이 사무실 문을 나서려다 말고 뼈있는 말을 던졌다.

 "누가 알아줍니까?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보고 그래요.  얼굴은 또 그게 뭡니까? 아침에 세수하고 출근하는 거요?  그 머리모양은 뭐고, 얼굴만 들여다 보지 말고 마음 한번 들여다 봐요." <4편 끝>

 

 

* 날씨가 추워졌더군요. 감시조심하세요.영선씀 2007년 2월 2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