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날 사무실에는 없었다.
"일진식품에 온 걸 환영합니다. 미세스 최, 이렇게 부르면 부담스럽죠? 사무실에서 이름 부르도록 하죠. 최인미씨, 앞으로 우리 사무실 일 잘 부탁드립니다."
사무실은 조립식 건물이었다. 흰색 작은 냉장고 1대, 사장과 부장의 금속으로 된 사무용 책상하나와 독 같은 모양의 내 책상의 반을 차지하는 조립식 컴퓨터 한 대와 HP프린터가 한 대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렌탈용 냉온정수기 1대, 따로 물을 끓일 수 있는 계란 색 전기포터 하나, 좀 진한 회색 캐비닛 2개, 연한 녹색 플라스틱 3단 서랍장 위에 올려져 있는 올려져 있는 믹스커피와 인스턴트 녹차와 둥글레차, 일회용 종이컵이 하늘색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었고, 손잡이가 있으나 짝이 맞지 않는 커피 잔 3벌과 머그 컵 네 개가 네모난 플라스틱 쟁반에 엎어져 있었다.
좁은 사무실은 그런 사무용품과 생활용품 때문에 약간 답답한 느낌이었다. 출근 첫날 값이 싼 나무 색깔 장판이 깔려 있는 사무실 바닥이 더럽혀져 있었다. '바닥부터 닦아댜겠다.' 내 눈에는 먼저 그 바닥이 눈에 띄었다.
사무실에는 정 사장과 정부장과 나 이렇게 세 사람이 근무했다. 세 사람이 하는 일을 조금씩 달랐다.
물론 끝에 가면 현장에서 작업한 달걀들을 파는 일로 모아지긴 했다.
정 사장이 하는 일은 주로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계약을 성사시키는 일과 계란 농장을 돌며 계란을 선별하는 일을 했다.
정 부장이 하는 일은 들어오는 계란의 상태를 검사하고, 필요한 곳에 그것들을 배달하는 일을 감독 했으며 바쁠 때면 또 그 역시 배달기사인 이 주임과 박 주임처럼 현장건물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는 사무실에 없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출근 한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부터, '저 사람도 삶의 방향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정신없는 정 부장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부장은 박 주임이나 이 주임에게 무슨 일이 생긴 날이면 배달을 직접 나가기도 했다.
그 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단순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껍질 있는 계란이 들어오고 껍질 벗긴 계란이 나갈 때 매입전표와 매출전표를 끊는 일과 직원들 월급을 계산하고, 장부정리와 세금계산서를 끊고, 보험회사에 필요한 직원들의 서류를 정리하는 그런 일이었다.
언뜻 일이 많을 것처럼 보이지만, 상품이 단 하나 계란뿐이라는 것이 일을 단순화 시켜버렸다. 지금 회사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몇 년 동안 근무하면서 그런 일들을 계속 해 왔었다. 이 전에는 집에서 1시간거리까지 출퇴근했는데,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 월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내 책상 맞은편에 정 부장의 책상이었다.
그와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그나마 컴퓨터와 프린터기 또 서류를 꽂아 놓는 작은 책꽂이 때문에 서로의 모습이 가려져서 다행이었다. 두개의 세로로 놓여진 정부장과 내 책상 끝에 사장의 책상이 가로로 놓였다.
사무실과 10미터 정도 떨어 진 곳에 다른 조립식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
사무실과 크기를 비교하면 10배 이상 크기였다.
회사에서는 그 건물을 현장건물이라고 불렀다.
현장 여자들의 일은 단순해서 계란을 깨트려 흰자와 노른자로 분리하고, 또 전란인 상태로 두기도 하고, 따로 온전하지 못한 계란을 깨트려 분리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하는 일이었다. 하루에 3톤내지 4톤이나 되는 계란껍질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주 거래처는 몇 곳뿐이었다.
이름만 말하면 전국의 체인점이 있는 빵집과 주로 슈퍼에서 팔리는 빵을 만드는 공장으로 비닐 백에 담아 계란을 포장하여 공급하는 일이 회사 의 주 업무였다. 나는 사무실이난 현장에서 하는 그 일들이 복잡하지 않아 좋았다.
그 곳에는 열둘에서 열세명정도의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들과 배달 일을 맡고 있는 박주임과 이 주임이라는 남자 직원이 근무했다. 그들 두 사람은 시간이 먼 거래처로 배달하다 보니, 하루의 대부분을 배달 일을 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는 현장 일을 도와 그 곳에서 근무했다. 계란을 나르고, 통을 씻고, 계란을 선별하는 그런 일들이었다.
회사에서 결혼 안 한 사람은 이주임 혼자였다.
출근하기 얼마 안 된 처음에는 이주임이 내게 몇 번 농담을 걸어오더니, 내가 상대를 안 해 주자 결국은 제 풀에 꺽여 이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
남자들은 여자가 처음부터 혼자이든, 중간에 혼자가 되든 상관없이 한 번 정도는 어떻게 해 볼 요량으로 이 주임처럼 내게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벌써 나는 그런 일에 이력이 붙을 만큼 붙은 세월을 가진 여자였다.<3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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