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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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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죽음


BY 황영선 2007-01-30

윤진 아빠가 죽은 집에서 살 수 없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 왔다. 물론 그 이유가 다는 아니었다. "서방 잡아 먹은 년"이라는 말씀과 함께 나와 아이들이 살아가기에는 몇 푼 되지 않는 합의금을 탐내셨던 시어머니가 그 집에 버티고 계셨다. 그런 시어머니 앞에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고, 목구멍까지 기어 나오는 말을 억지로 밀어 넣어야 했다.

 

 "옛소! 어무이 아들 죽은 목숨 값으로 잘 먹고 잘 사시오."

 

 윤진 아빠의 고향에는 시어머니가 살아가기에 충분한 땅이 있었음에도 얼마 되지 않은 그 돈에 욕심을 내셨다. 당신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젊은 것 생각은 손톱만치도 하지 않은 탐욕스런 노인네였다. 나와 딸아이  둘은 쫒겨나다시피 그 집을 나와야 했다. 손에는 통장에 들어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그야말로 윤진아빠의 목숨 값으로 받았던 합의금이 전부였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야말로 매일 죽어 갔다. 낮 동안은 울다 지쳐 죽어 누워 있던 윤진 아빠처럼 꼼짝달싹 하지 않고 자다가, 어둠이 내리고 동네에 밝혀져 있던 불이 하나 둘 꺼져 가는 그런 시간이면 마루와 내 방과 부엌에 불을 켜 놓고 차례차례 걸레질을 했다. 마루를 정성들여 닦고, 내 방을 정성들여 닦고 , 부억을 정성들여 닦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는 아버지 집 뒤 안의 오래 된 감나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낮게 드리워진 가지 하나를 보며 죽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으로 몸을 떨어야 했다.

 

 엄마는 내 머리카락이면 옛날에는 돈을 많이 받았을 거라며 다 자라서까지 긴 생머리를 빗겨 한 가닥으로 묶어 주셨다. 그 머리카락을 선 머슴애 모댱 귀가 드러날 정도로 싹뚝 잘랐다. 화장은 더이상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아 선이 굵은 거울 속의 눈, 코와 얇은 입술의 동그란 얼굴인 여자는 짧은 머리카락 때문에 젊은 청년 같았다.

 집 한 칸과 논 200평이 다였던 아버지는 큰집 큰 아버지와 상의 하셔서 합의금 중 일부의 돈으로 밭을 조금 사셨고, 나머지는 논을 사셨다. 그래도 남은 돈으로 나는 아이들과  살기 편하게 조립식 양옥집을 짓자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온갖 먹을거리를 심어 놓은 그 밭을 가꾼다고 공을 들이셨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엄마와 아버지는 고추, 들깨, 참깨, 옥수수, 감자, 메밀, 쥐눈이 콩, 고구마, 쪽파, 대파, 겨울에 김장할 배추와 무를 심었다. 그 밭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나는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윤진 아빠가 죽은 후 2년 뒤에 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았다.

 강단지게만 보이셨던 아버지가 그렇게 맥없이 돌아가실 줄 몰랐다. 위암 말기였다. 손 쓸 틈없이 나날이 말라가는 아버지가 죽기까지는 채 5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암이 아버지를 죽여 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윤진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에서 느끼지 못했던 다른 슬픔에 가슴이 울컥 울컥 뛰었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윤진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아버지는 내게 큰 방패 역할을 해 주셨는데, 돌아가실 때의 아버지의 몸은 마른 장작개비 같았다. 마지막 한 주에 요와 이불을 하루 해바라기 하려고 48킬로그램인 내가 아버지의 몸을 들었을 때, 피골이 상접한 아버지의 몸은 힘없이 번쩍 들렸다.

 

 "윤 서방 말이다. 내가 쥑인거나 똑같대이."

 아버지는 늘 같은 말씀만 하셨다.  아버지는 죄를 진 사람의 심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계셨다. 누운 아버지 머리맡에서 나는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느꼈음하고 다리를 아주 살살 문질러 드리고 있었다.

 

 "아부지! 그런 씰데없는 말씸이 어데 있십니까?"

 나는 아버지의 그런 말씀을 칼로 무를 자르듯 딱 잘라버렸다.

 그 일은 우연이었다.

 그날 오토바이 사고가 있던 날 읍사무소 공무원이셨던 큰 아버지가 중고차를 사시며 큰 아버지가 그동안 타고 다니셨던 오토바이가 우리 집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큰 아버지께 오토바이을 당신에게 달라고 졸랐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 윤진 아빠가 졸음 운전하던 덤프트럭에 받친 것이다. 오토바이는 박살났고, 그의 몸은 몇 미터 날아가 뇌진탕으로 즉사했다. 사고 현장에는 아직도 피 자욱이 선명한 것 같아 나는 그 곳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은 사고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아버지도 아셔야 하는데......  그렇게라도 말씀하시고 나는 또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했다.

 "윤진, 윤정이가  불쌍해서 안카나. 인미 니도 그렇고, 나이 이제 지우 서른 아이가. 오토바이만 아니었어도......"

 말끝을 흐리는 아버지 때문에 나는 방밖으로 뛰쳐 나가야만 했다.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더 이상 보이고 싶지 않았다.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날 "저 지게 말이다. 한분만 지 봤시마." 마당 저 편 빈 외양간 앞에 세워져 있는, 그 지게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셨다.

 아버지는 병이 깊어지자 그 지게를 그 곳에 세워 놓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그러나 지게는 병이 무섭게 진행되어 기운을 잃어 가는 아버지의 힘으로는 전혀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임자를 잃었다.

 나는 아버지의 무덤 옆에서 옷가지들과 이불을 태우며 그 지게도 태우자고  큰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벌써 5년이 지났다.

 올 해 윤진이와 윤정이는 10살, 12살이 되었다.

 잠깐 숨을 쉬었다 싶었는데,  나는 어는 듯 그 일을 잊어 가고 있었다.<1편 끝>

 

 

* 추워졌습니다. 며칠간 따뜻하더니 사람들을 종종  걸음 치게 하는 군요. 제 글과 만나서 기쁨니다. 한 때 책만으로  행복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제 글때문에 행복하군요. 제 독자들께서도 제 글을 읽고 행복하세요. 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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