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24

<꿈>꿈꾸는 여자


BY 해바라기 2006-09-06

모닝벨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밤새 긴장한 탓에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더 빨리 일어나고 말았다.

아직 벨이 울리려면 30분이나 남았지만 그대로 누울 순 없다.

다시 잠들었다간 영원히 못 깨어날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온다.

골이 흔들리고 어지러워 일어나니 휘청거린다.

반쯤 잠긴 눈으로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에 얼굴을 적셨다.

생각지도 못하게 물이 차갑다.

정신이 화들짝 돌아온다.

'물이 왜 이리 차갑담?'

아! 그러고 보니 벌써 가을이 느껴진다.

이젠 아침 저녁으로 썰렁하다.

동시에 웬지모를 허전함이 밀려온다.

'정신 차리자. 아침부터 감상에 빠질 시간 없다.'

대체 몇년만이란 말인가!

그 흔한 연수가 나에게는 2년만에 찾아 왔다.

남들은 너무 많아 귀찮을 정도라는데...                           

새로운 업무 교육이라고 해서 자랑스러워 으스대는 내 자신이 우습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군인같은 기분이 든다.

교육장이 강남이라 지각하지 않기 위해 충분한 계획을 세웠다.

비록 당일 연수지만 철저히 배워 직원들에게 정확한 요점을 가르치리라.

그동안 내 재능을 몰라봤던 사람들이 놀라겠지?

거울을 보니 허연 얼굴에 눈만이 번득인다.

웃음이 나온다.

7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충분히 여유있는 시간이다.

9시에 교육이 시작하니 여유있게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들이키자.

빈속이지만 오늘은 커피 한잔이 당긴다.

이른 시간의 한가함을 기대했건만 발 디딜틈도 없이 사람들이 미어터진다.

휩쓸리듯이 떠밀려 나왔다.

모든 사람들이 승강장을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

이런!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됐다.

출구를 찾으니 맨 앞쪽이다.

'하필 맨 뒤에 탈게 뭐람!'

일단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려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자.

차 한잔의 여유는 있겠지!

걷다 보니 바로 앞에 늘씬한 여자가 미니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걷고 있다.

급히 걷고 있긴 하지만 일종의 우아함이랄까?

나에게선 도저히 베어나올 수 없는 도도함을 겸비한 걸음걸이다.

갑자기 경쟁 의식이 생긴다.

나의 짧은 다리를 의식한 탓일까?

앞질러야 한다는 생각이 번득인다.

마치 경보선수인양 열심히 걸었지만 여자는 무리틈에 섞여 출구 밖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기운이 빠진다.

왜 그녀를 따라 잡으려 했을까?

이유도 목적도 없다보니 허탈해진다.

10분이 지나서야 <교육장 안내표> 앞에 도착했다.

8시 40분.

아! 이제 다 왔구나.

매끄럽게 닦아 놓은 길 위로 교육장의 위치를 알리는 화살표가 보인다.

'참 친절한 사람들이군! 위치까지 알려주다니...'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10분을 걸었다.

아직도 화살표는 이어지고 있다.

'대체 이게 뭐람! 교육장이 이리도 멀었다 말인가?'

미칠 지경이다.

다리가 점점 더 아파오고 마음은 다급해진다.

땀방울이 줄줄 흘러 내린다.

시간은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아직도 길 위에서 헤매고 있다니...

내 앞을 걷던 몇명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나도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때 어디선가 '또각 또각' 낯익은 구두 소리가 들린다.

뒤 돌아보니 지하철 승강장에서 보았던 여자다.

순간 여자는 나를 제치고 앞장서 걷기 사작한다.

'이런! 질수는 없지!'

또다시 그 여자보다는 앞서 가야 한다는 이유없는 경쟁심에 빠졌다.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여자는 나보다 더 빨리 걷기 시작한다.

그녀조차도 나 보다는 빨리 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걸까?

하지만 질 수 없다.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차갑지만 지금은 한 여름의 더위와 같다.

머리속을 굴러 다니는 땀방울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마에서 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다.

지각하는 것도 수치스럽다.

하지만 여자보다 늦게 들어가는 것은 더 고통스럽다.

뜨거운 햇살 아래로 내비치는 그녀의 다리는 길기만 하다.

나의 다리는 짧다.

이 다리가 서글프도록 안타깝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온몸이 경련이 나 지쳐 쓸러질것만 같다.

한걸음, 한걸음 여자와 좀 더 가까워진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순간 여자가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제기랄! 이건 또 뭐야! 난 뛸 수 없단 말이야.

끝까지 페어플레이 해야지. 당신만 뛰면 어떡해! 그건 반칙이야.

안돼! 기다려!'

정신이 아찔한 순간 <교육장 입구>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 안으로 여자가 쏙 들어가 버린다.

내 뒤로는 아무도 없다.

정말 아무도 없다.

난 마치 패배자가 된 심정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시계를 보니 8시 58분이다.

그래도 늦진 않았구나.

마지막 힘을 다해 문을 열고 내 이름이 붙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모든게  고요해졌다.

한숨을 돌리고 둘러보니 여자는 내 옆줄이 맨뒤에 앉아 있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가볍게 눈 인사를 보낸다.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이 안에서 여자와 나는 동지다.

밖에서 여자와 나는 적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는...

내가 잠시 미쳐 있었나 보다.

그녀의 뒷 모습은 나를 잃게 하고 미치게 했다.

정말 미쳐 버렸다.

고요한 침묵과 함께 나의 열정과 어리석은 경쟁심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일순간 꿈이었다.

꿈을 꾼것만 같이 아득해진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몸이 축 늘어져 정신이 혼미하다.

난 다시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