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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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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탄 여인들


BY 정자 2011-08-23

 

국밥을 훌훌 말면서 이왕이면 표도 특실로 끊어서 폼나게 서울로 가야 둘리가 제대로 우리를 반겨 줄 거라고 했다. 막자언니에게 목숨 값으로 그렇게 후하게 쳐준 사람한테 촌년들이 떼거리로 몰아서 왔다고 구박하면 확 그냥 뒤집어 놓는 다는 멀대 아줌니의 말대답에 떠벌이 아즘니 산통 깨지는 애기만 골라 한다고 했다. 사는 곳이 다른 것 하나 그거 다르다고 무시하는 인간들이 돼먹지 않은 것들이라고 했다, 아무리 높은 빌딩 꼭대기에 살아도 지가 땅 안 밟고 사는 인간 못 봤다고 했다, 처음부터 돈부터 벌어야 사람 되는 세상 아니라고 했다.

 

표를 끊으러 갔다.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진짜 특실이라도 한 칸 전세내서 보란 듯이 특실 다섯 장을  불렀다.

' 죄송하지만 좌석이 없습니다."

매표직원은 떨떠름한 얼굴이다.

" 아니 사람들이 죄다 서울만 간다요? 아침부터 우덜처럼 서울 가는 사람만 있능가?"

떠벌이 아줌니는 진짜 화가 나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관에서 잠자지 말고 그닥 표라도 예약을 해야지, 서울이 얼마나 먼데 이걸 어떻게 서서 가냐 난리시다. 이러쿵 저러쿵 궁리를 짜도 할 수 없이 걸어서 못가니 입석으로 표를 샀다. 그나마 특실에는 입석도 안 판단다. 일반실에 천상 서너시간을 서서 가야 한다니 벌써 부터 김빠진 사이다가 된 기분이다.

 

홈에서 기차를 타니 진짜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요일인데. 주말도 아니고 빨간색 휴일도 아닌 평범한 평일인데 웬 사람들이 우리처럼 여행을 가냐 했었다.

 

말이 입석이라도 그렇지 발을 어디다가 디딜 줄 몰랐다.

그러다가 우리 일행은 여기에 한 명 저기에 콕 박혀 오도 가도 못하고 말 한번 할려면 손으로 손짓을 해야 했다. 송화는 타긴 탔는데. 뒤통수도 안 보인다. 내 옆에서 목청 큰 목소리가 우렁차다.

 

' 니이미 지덜이 언제 쌀농사를 한 번 지어 본 적이 있어? 모내기고 뭐고 내가 왜 열일 제쳐놓고 나선건디?  어떤 놈 주둥이는 돈만 먹고 산데? 돈으로 국 끓여 봐? 무신 맛이 나겄는가? 여기서 돈 삶아 먹어 본 사람 손들어 보소?  소여물이면 소나 잘 먹을 겨?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 아녀? 어딜 우덜을 없애 버릴려고 쌀을 우르르 수입한다는 겨? 시방?“

 

목이 툭 불거지게 핏대를 세우고 백발이 성성한 촌노가 허리를 잘 세우지도 못하시는데다가 연신 뭐라고 연설하시는데. 상황을 가만히 살펴보니 어느 시골동네에서 온동네 농민들을 끌어모은 기차칸이었다.

 

" 천둥이 무서워서 우르르쾅쾅 인지 우르광인지 난 암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라구, 근디 이건 알아야 혀! 뭐냐? 우린 늙어서 살만큼 살았어. 까짓거 지금 죽어도 한 없는디 내 자식들은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여  천지간에 쌀을 돈으로 팔아서 남의 나라 쌀 사먹으라고 그게 무슨 협정이냐고? 원제 우덜 쌀 없어서 사오라고 한적이 있남? 책임을 진다고 해도 이건 그게 아녀? 아예 먼저 죽여놓고 쌀 사오던지 말던지 해야 되는 겨? 안그려? "

 

내 귀는 벌써 그 어른의 한 말씀에 정신이 하나도 없고, 사람이 그렇게 촘촘하게 많으니 아무리 꽃피는 오월이라도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그제야 테레비에서 아무상관 없이 무심코 봤던 우루과이라운드인지 뭔지에 반대한다고 들고 일어난 농민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이면 왜 우리가 일생일대의 최초의 서울 나들이를 이들과 함께 기차를 타라는 것을 먼저 알았더라면 하루 전 날 떠나던가, 아니면 그냥 다음 기차를 타야 했었는데.

 

서울 역에 전국곳곳에서 모여 여의도까지 행진 하려면 준비 해온 우리들의 김밥을 먹고 단단히 채비를 하라고 했다. 뒤 쪽에서 차례로 넘어오는 바구니를 우린 간단하게 싼 김밥을 하나씩 전달 받았다.  우린 뭣도 모르고 서서 얼떨결에 김밥을 먹어야했다. 김밥을 먹으려고 탄 기차가 아닌데. 아 이게 아닌데 .한가로운 기차 안에서 삶은 계란을 까먹고 음료수 마시며 수다나 떨려고 했는데.

 

겨우 막자언니 옆에까지 갔다. 막자언니도 김밥을 한 줄 들고 있었다.

" 언니! 우덜 다음역에서 내려야 할 것 같은 디?"

막자언니도 얼이 나간 얼굴이다. 우린 우르르 얼떨결에 서울 가자고 나온 것 외에 이 데모행사와는 애당초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옆에 있던 할머니가 내 말을 들으셨나 보다.

" 내리다니 어딜 내린다는 겨? 나같이 다리병신도 가는 디 어디서 빠진다는 겨?"  

 

주름치마를 입어 훌렁 다리를 보여 주시는 데 의족이었다. 분홍색 무릎이 뻣뻣하게 일자로 되어 있어 무릎이 날씬한 인형다리처럼 보였다. 옆에 계신 할아버지는 영감이신지 왜 치마는 훌렁 제끼냐고 얼른 덮는다.

 

" 저기 우덜은 여기랑 아무 상관이 없는 디유..." 나는 어쩔 수없이 한 마디 했는 데 벼락같은 호령이 떨어지는 것이다.

" 아무상관이 없다고 ? 세상 천지에 사람치고 밥 안 먹는 사람 어딨어? 엉? 자네 오늘 아침에 뭐 먹었어?"

" 예? 그게 국밥먹고 왔는디유.."

" 국밥? 그려 그건 밥이 아닌감? 너무 그러지 말어 ? 밴거 없고 돈 없고 무식하다고 아무 상관 없다고? 에라이..빌어먹을 농사는 뭘하려고 져가지고 내가 미친놈인제.."

 

나도 미친년 된 것처럼 이거 머리가 열렸다 닫혔다 했다. 밥 잘먹고 가는 서울행이 이런 기차를 탈 줄 누가 알았으면 도시락을 싸서라도 걸어간다고 할 것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라라! 도시락도 밥이다. 이게 무슨 일이냐? 멀리 떠벌이 아줌니 얼굴과 멀대 아줌니 얼굴에도 그렇게 난처하게 보였다. 

나도 멀대아줌니도 다른 아줌니들도 어떻게 이리저리 밀려가더니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뭉치면 산다고 했는데.

 

" 에그그  이를 어쩐디야?"

" 왜그러는디?"

 

내 옆에 모퉁이에 콕 끼여 잘 안보이던 한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셨다.

" 내가 여그 올 게 아닌디..우덜 금순이랑 명님이 밥 안 챙겼는디 지난밤에 피똥을 싸가지고 오늘 가축병원에 가 봐야 하는 디 나 다음역에 싸게 내릴 겨?"

일어나도 내 키에 닿지도 않고 어깨에 멈춘 아주 작은 키다. 말씀을 들어보니 개나 소나 피똥을 싸면 당장 응급환자다. 죽어가는 생명을 그런 걸 놔두고 기차를 탔으니 다음역에 내린다고 들고 온 지팡이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시려는 데. 심각한 할머니 얼굴에 모두들 비켜주신다. 다시 내려가도 한 참 한나절이 거진 지날텐데, 그 순간에 우린 막자언니랑 나랑 나란히 겨우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나도  그 할머니 말씀대로 우리도 뒤란에 풀어서 지덜 알아서 크는 수탉핑계를 댈까. 아니면 무슨 변명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다못해 있지도 않은 돼지 몇 마리를 얼른 끌고 올까 싶었다. 아차차! 보릿물 주전자 가스불에 올려놓고 그냥 왔다든가, 현관문을 안 잠그고 왔다든가 무슨 일을 꾸며서라도 기차에서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 아고고! 사람죽네! 저기유 비켜유? 나 싸요? 화장실가게..아 싸게 싸게 비켜 봐유?"

떠벌이 아줌니였다. 말없이 작전을 짠것처럼 떠벌이 아줌니도 어떻게 하던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멀대 아줌니는 아 왜그려..그러게 아까 밥좀 작작 먹으라고 했더니 작신 퍼 먹더라. 아이그  어르신 화장실가게 잠깐 좀 비켜 주세유..바지에 설사 하게 생겼네. 웅성웅성 거리는 틈에 멀대 아줌니가 손을 휘휘 젖어가며 길을 내기 시작했다.

 

급한 볼 일은 제일 먼저 해결할 일이다. 좁아터진 복도가 갈라진 바닷길이 되었다.

막자언니와 나는 손을 잡고 냅다 떠벌이 아줌니 쪽으로 내 달렸다. 배를 움켜잡은 떠벌이 아줌니 양쪽 겨드랑이를 부축여 화장실로 겨우 나왔다. 나와보니 떠벌이아줌니가 에구에구 더 소리를 질렀다.

화장실안에 나까지 달려서 들어가니 그제야 떠벌이 아줌니가 바깥에 아이구 배야 아이그 배야 이러신다. 나는 얼른 변기에 앉아봐유...설사가 나오면 어떻게 해유?

 

화장실문이 쾅 닫으니 떠벌이 아줌니가 한 쪽눈을 찡그리며 히히  꾀병이지롱?

나도 할 수없이 웃었다.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이 기차에서 내려야 하는 데 뭔들 못할까.

생전 뉴스에서 보던 데모나 무슨 시위대나 우리랑은 전혀 관계없던 사차원 세계였다. 다른 아줌니들도 충분히 그랬을 것인데. 떠벌이 아줌니가 화장실에서 꾀병이 나는 동안 바깥에 멀대아줌니가 마구 소리를 쳤다.

 

" 야? 니  송화 찾아봐라..야가 영 어디에 쳐 박혔는 지 안 보인다?"

그러고 보니 송화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칸에 탔으면 당연히 안 보일 테고, 마찬가지로 다른 칸도 콱찬 만원 기차 일텐데. 아까 내 옆에 있던 막자언니도 같이 안 보였다.

" 내려도 다 같이 내려, 송화가 어디에 탔는지 니 한번 돌아봐라?"

말이야 돌아보는 게 싶지 사람으로 막힌 숲속을 갈라서 가야 하니 그게 더 어렵다. 그렇다고 이름 불러 불러도 들릴까 말까 만무하다.

 

에이..막자언니는 왜 하필 이럴 때 서울 가자고 한 겨?

이젠 여행을 가더라도 시국을 잘 살피고 갈 시대다. 기차표를 끊을 때도  사회의 흐름을 맥 짚듯이 확인하고 다닐 때다. 나도 이젠 데모나 그런 거나 전혀 관심이 없으면 안 되고 적어도 맹추같이 전혀 맹물 되어서 물에 술 탄듯이 술에 물 탄듯이 아무렇게나 살지는 말아야 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떠벌이 아줌니가 화장실문을 획 열더니

 

" 야! 우덜 그냥 서울 가는 거 여기서 종치자? 언니한테 내가 애기 할 테니까 니 막자언니 화장실로 모셔 와라?"

" 어쩔려구요?"

" 뭐 어떻게 혀? 이대로 가다간 서울역에서 꼼짝없이 데모하러 올라간 여편네들되지. 둘리 만나러 간다고 하면 보내 줄 거 같냐?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우덜 팔자에 무슨 기찻길 팔자냐? 얼른 막자언니나 화장실로 오라고 혀? 멀대 니는 송화 어디있나 찾아보구? 잉?"

 

그렇기는 그렇다. 둘리아줌니는 우리만 아는 사람이다. 누가 알아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