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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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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에로 2006-06-03

"서동주씨댁이죠?"

................

"아닙니다."

수화기를 내려놓다말고 벽을 바라보았어.

낙서처럼 적어놓은 숫자....34

그 사람은 서른다섯번째 서동주를 찾고 있고,나는 서른다섯번째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어.

똑같이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 사람은 서동주를 부르고 있어.

어느새 라디오에선 시끄럽고 번잡한 트롯으로 노래가 바뀌고 있었고,빗소리는 잦아들고 있었어.

찻잔으로 손을 뻗었지.헤즐럿향이 여전한 찻잔속 커피는 약간의 온기만 남긴채 식어있었어.

서.동.주.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열이 오르는 것 같아.

묵직한 무언가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나도 모르게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어.

 

"아프지마!니가 아프면 난 더 아프단 말이야."

붉게 타오르는 열기속에 희미하게 그가 보여.

이슬방울을 가득 담은 검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울고 있는 것 같아.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소리가 나오질않아.

 

또다시 울려대는 전화벨소리에 놀라 눈을 떴어.

길게 한숨을 내쉬고 수화기를 들었어.

"엄마!"

민주구나..나의 사랑하는 딸..민주.

"그래,민주야.잘지냈어?"

"응,오늘 할머니가 과자 만들어졌어.너무너무 맛있었어!"

정신없이 재잘대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민주...그래 민주가 있었구나.

민주의 전화를 받고나서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부터 해방된 기분이 들었지.

"이번주 토요일에 엄마집에 가도 되지?"

"그래.할머니 바꿔줄래?"

"엄마다."

"그 사람이 자꾸 나를 찾아오는 것 같아.엄마가 오지말라고 말해줘.

 나는 할 수가 없어.엄마가...엄마가 해줘."

수화기너머로 엄마의 숨소리가 서럽게 퍼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