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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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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처음 사랑


BY 지니 2006-05-29

비는 멈추어 있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개어버린 하늘.

뭉게구름까지 피어올라 하늘은 파랗고 높아져있었다.

연이는 아직물기가 남아있는 우산을 털며 스타벅스의 문을 나섰다.

아직은 젖어있는 길들. 아까보다 더욱 푸릇해진 길가의 푸른 들꽃들.

습기있지만 깨끗해진 공기를 마시며 시선을 길끝으로 하고 걷고있었다.

 

그 길끝에 키가 큰 한 남자와 다섯살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손을잡고 걸어오는것이 보였다. 맨 처음 연이의 신선을 고정시킨것은 꼬마아이였다.

언제나 그랬다. 아이만 보면 시선을 떼어내지 못하는 자신..

아이에게 슬퍼보이지 않으려는 미소를 보내고 아빠인듯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멈출수 밖에 없었다.

 

그남자도 연이에게서 멈추어 있었다.

 

누구지..? 누구였더라? 누가.. 누구의 눈동자가  이리 낯익고 가슴을 아리게 하는걸까..?

 

연이는 그렇게 한동안 그를보았다.

 

"....연이야..."

 

그는 가만히, 너무도 익숙한 느낌과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저 깊은 기억속 아주 낮은곳에 묻어두었던 그를 떠 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연이였다.

 

'처음사랑했던 남자를 길거리에서 무방비하게 마주치게 되었을땐

도대체 어떤 말과 표정과 몸짓으로 나를 보여주어야 하는것일까.

나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은 얼굴을 가지고 있을텐데.

그는 뭐든 다 알아채곤 했었는데,,,,'

 

" 나 있지...어떻해야하는건지 모르겠어.

반갑다고 해야하는건지 미안하다고 해야하는건지...

잘 지냈어? 라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안게 말해야하는건지...

솔직히 그냥모른척 가고싶기도 한데...

못봤으면 좋았을것을.. 그냥 지나쳤으면 좋았을것을

지금 생각은 그래.....어쩌지?"

 

뭘 이렇게 주저리말하고 있는건지 말하는 내내 머리속마저 하얗게 변해버렸다.

 

" 음...모른척 가지는 말아줘.

  이미 서로 알아봐 버린 걸.

 

  그냥 무시하고, 모른척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대로 절대 만날수 없고,

 그런건 예전에 너가 나 한테 그랬던건만으로 ..

난  아직까지 여기가 아픈데"

 

그는 손가락 두개를 펴고는 가만히 자신의 가슴속 심장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곧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무척 건강한 미소.

 

" 자. 민아. 인사해. 아빠 첫사랑이야. 큰 소리로 알지?"

 

동그란 눈과 고수머리를 가진 다섯살짜리아이가 아직은 부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아빠랑 눈동자가 똑같이 닮은 아이...

 

'내가 그때 이남자의 아이를 낳았더라면 이 아이와 많이 닮아있겠지...'

 

그 생각이 들자 불현듯 소름끼칠정도로 얼어버리는 연이였다.

그의 얼굴을 더 이상 마주할수가 없었다.

 

" 나 갈께... "

 

연이는 곧 눈물이 흘러버릴것 같은 얼굴로 그를 지나쳐 몇발자국을 가다가

다시 그자리에 가만히 섰다.

천천히 뒤돌아 그를 보았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듯 입을열었다.

 

" 근데...내내 너한테 하고싶은 말이있었는데.

 지금안하면 안될것 같아.

 그땐 내가 많이 어리고 어리석었어.

 아직까지 너 심장이 그렇게 아프다니까 ....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내가 하고싶은 말은

 미안해.

 미안해.너가 행복했으면 해 .이말이야."

 

까까스로 그의 눈을 보았을때 그의 눈은 많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의 다섯살짜리아들은 가로수에 기대어 하품을하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하.하.

 

그의 경쾌한 웃음소리에 정신이 드는 연이였다.

그의 눈빛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아주 재미나다는듯 웃고있었고

이내 그의 아들도 그와 비슷한 웃음을 자신에게 보내고 있었다.

 

" 너 여전하구나.

  그래. 정말 이 연이 맞구나.

  말투랑 눈이랑 맘씨가 예전 그대로다.

나는 이만큼 살아왔는데.. 이렇게 아들도 하나있고..세상물들고..

넌 그자리 그대로 인것같아.

머리모양에 옷차림까지..나 혹시 어제먹은 술이 떨깨 10년전 환영을 보고있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이동네살아??"

 

"응..."

 

그의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스러움에 어지러워움이 누그러 드는 연이였다.

 

" 어쩌지? 나도 그런데.

 자주마주칠지도 모르는데 마주칠때마다

 너 그렇게 놀라 얼어버리면 어떻하나 걱정이다.

 

 맘같으면 사라져주고 싶지만 며칠전 이곳에 장사시작했거든.

 나도 아들키우며 먹고살아야 하니까 함부로 옮기기도 힘들어.

 나 이시간엔 아들어린이집 데려다주러 이길을 지나가야하거든.

 일단은 이시간 이 길은 피하는게 좋겠네.

 

다시 이동네 어디선가 마주친대도 그렇게 놀라지마.

아는척하지 않고 피해줄께.

그리고 아까 미안하단말 받아줄께.

나 그때 진짜 많이 아팠었거든.

 

가야겠다. 어찌됐든 반가웠다. 간다."

 

연이는 반대쪽 길끝으로 아들을 어깨에 앉히고 걷고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때까지.

 

하늘은 그대로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