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아름다웠던 그녀......
그러나 그녀는 내게 치명적인 독(毒)이었다>
그녀가 다가오다 (2)
그렇게 어정쩡한 날이 일주일 쯤 지났다.
출근해서 그날 업무와 일정에 대한 체크를 대강 끝내고, 오늘은 그리 바쁘게 설쳐댈 일은 없겠다싶어 느긋이 커피 한잔을 뽑아 막 한 모금 마시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창에 찍힌 번호가 좀 낯설었다.
언젠가 본 전화번호 같기도 했고...
받으니 의외로 ‘칸타타’의 그녀였다.
저, 문 사장님이시죠?....하며 나를 찾는 그녀의 목소리를 첫마디에서 금방 알아 챌 수 있었다.
‘그런데요. 누구...?’
나는 짐짓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나 사실 그때부터 내 가슴이 쿵쾅거렸다.
몹시도 기다렸던 반가운 전화를 받은 사람처럼...
‘저...칸타타...’
하고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그녀의 이름을 몰랐다.
그날 그녀는 내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나 역시 묻지 않았었다.
‘아, 칸타타!....그런데 아침부터 웬 일로.....?’
나는 그때서야 생각난 듯 능청을 떨었다.
‘저어...죄송하지만...부탁을...좀...’
그녀의 목소리엔 어떤 불안감, 그리고 미안함 등이 뒤섞여 상당히 어눌하게 들렸다.
‘부탁이라뇨?...무슨...?’
‘저어...여기...겨, 경찰서거든요....’
나는 전혀 예상 밖이었던 그녀의 말에 적잖이 놀랬다.
경찰서, 경찰서라니?.....그녀가 무슨 잘못을....?!
갑자기 내 머리 속은 혼돈스러워졌고 또 만일의 곤란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를 순간적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 가게에서 어제 밤... 좀...안 좋은 일이....’
그 말에 나는 순간 안도를 했다.
아, 좀 지저분한 술손님하고 무슨 다툼이 있었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 일로 누군가 자기에게 유리한 증언이나 뭐 그런 비슷한 부탁을 해 오는 정도라면 나는 기꺼이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다는 판단을 번개같이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시 능청스럽게 말을 끌었다.
‘그런데요?...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제가 주민등록증을 지금 갖고 있지 않아서...아시는 분이 한 사람 신원확인을 해주셔야...나갈 수가...’
‘아, 그래요? 그럼 제가 가도 되는 겁니까?’
나는 이게 그녀와 내가 어떤 인연이 되려고 하는 어떤 좋은 조짐 같기도 해 솔직히 내심 기뻤다.
그녀는 그렇다고 했고, 마침 내 명함을 가지고 있는 게 있어 염치없는 부탁의 전화를 하게 됐노라고 미안해했다.
나는 호기 있게 그런 걱정 말라고 그녀를 달래고 어느 경찰서냐고 물었다.
생각대로 그녀의 가게와 내 사무실이 있는 지역의 관할 경찰서였다. 택시를 타면 몇 분 거리 정도에 있는...
나는 금방 가겠노라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경찰서에서 그녀의 신원보증을 해주고 그녀를 데리고 나왔다.
그녀는 내게 여러 번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까 전화통화에서처럼 여전히 그 어눌한 말투로...
나는 경찰서 앞에서 그녀를 먼저 택시에 태워 보내고 뒤에 오는 택시를 탔다.
나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내가 그녀가 붙들려 있다는 경찰서 형사과로 들어갔을 때, 그리고 담당형사에게 내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간단한 서류에 서명을 한 다음 그녀를 데리고 나올 때 나를 쏘아보던, 피의자 대기의자에 그녀와 나란히 앉아있던 한 남자가 계속 내 뇌리에 남아 어떤 불길한 느낌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남자는 40대 초반 쯤의, 약간은 불량기가 느껴지는 인상이었는데 특히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녀를 내가 형사과에서 데리고 나올 때 그녀는 그 남자를 애써 외면하는 눈치였고 그는 그녀와 함께 나가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건 분명 어떤 비웃음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그녀는 분명 자신이 주민등록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 풀려나려면 신원을 확인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내가 서류에 서명할 때 담당형사는 그녀가 기소중지가 된 신분이며 곧 검찰에 소환될 텐데 소재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어 그 신원보증을 내가 하는 것이라고 정확히 알려준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못돼 일단 서명을 해주고 그녀를 경찰서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나는 뒤통수라도 맞은 듯 멍한 기분이었다.
어제 밤의 상황을 말해주듯 헝클어진 매무새에 밤새 한잠도 못잔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에게, 기왕 신원보증을 서주고 데리고 나온 마당에 이것저것 따져 묻는 것도 그리 현명한 일은 아니다싶어 일단 경찰서 앞에서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긴 했지만...
나는 사무실로 돌아 와서도 그 일로 하루 종일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퇴근 무렵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내 핸드폰이 아니라 사무실 전화였다.
여직원이 웬 여자 분이라면서 전화를 바꿔주었다.
전화를 받고 그녀인 줄 알자 내 기분은 더 찜찜해졌다.
뭐야, 자기와 나의 사적인 일인데 굳이 사무실 전화로 하는 건...?! 하는 생각에.
그녀는 다시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퇴근하면 가게로 들려달라고 했다.
나는 상황을 봐서 들리게 되면 들리겠노라고 조금은 차가운 말투로 통화를 끝냈다.
그날따라 마감에 걸린 일들이 없어 직원들은 모두 정시 퇴근했다.
나는 정리할 일이 좀 남았다고 하고는 직원들이 다 퇴근한 빈 사무실에 혼자 남아 그때까지 혼란스러운 머리 속을 이리저리 정리를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오늘의 상황을 더듬어 보아도 명쾌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신원보증을 서준 일은 잘한 짓인가?
어젯밤에 그녀의 가게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녀는 도대체 어떤 여자인가?
경찰서 형사과에서 그녀와 나란히 앉아있었고, 내게 비웃음을 흘린 그 남자는 누구인가?
또 그녀가 기소중지자라는 건 또 무슨 소리인가?
폭음하는 술버릇 때문에 벌금 정도 무는 가벼운 범법행위로 경찰서 신세를 서너 번 정도 져 본 경험 외에 범죄라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왔던 나에게 기소중지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솔직히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다.
그렇게 빈 사무실에서 두 시간 가까이 혼란스러워 하던 나는 결국 그녀의 가게에 들려보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고 불도 켜지 않고 있었던 어두운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