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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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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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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BY 가우디 2005-08-10

1988년 봄.

대학 신입생시절 이 남자를 만났다.

대학 입학원서 내러 태어나 처음 서울에 와 본 시골 촌뜨기시절이었다.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거의 그렇듯 나는 세련된 서울 아이들과 한동안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다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갔고, 어느새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그 동아리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통기타 동아리 <뮤즈>의 신입생 환영회에서 였다.

한 선배가 얼룩무늬 야전잠바와 짧은 스포츠머리의 그에게 나를 데려갔고,  

"지환선배, 여기....신입생이예요. 이번 기수 보컬로 쓸까하구요."

라며 나를 소개했다.

"안녕?...."

동기들과 얘기중이던 그가 방해받기 싫다는 듯 잠시 고개만 돌려 인사했다.

"국문과 88 김은아입니다!"

나는 선배들에게 이미 교육받은대로 큰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고개를 돌리려던 그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장난스럽게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래? 난 손지환이다. 건축85...2학기에 복학할 거니까 아직은 백수!"

"예에..."

그의 장난스런 눈길에 당황한 나는, 내미는 그의 손을 잡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악수하자고....왜 이래? 나를 남자로 느끼나?"

"예?"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조각같이 잘 깎여진 그의 턱선에서 시선이 멈춰졌다.

그는 고집스럽게 각진 턱선을 가졌다. 나의 할머니가 봤으면 말년운이 좋겠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왼쪽 입꼬리 옆으로 살짝 패인 귀여운 보조개가 있어서 남자다운 턱선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강한 인상에 잔뜩 겁먹었다가 보조개를 보는 순간 웃음이 났다.

나는 갑자기 무장해제 당한 느낌으로 서 있었다.

"하하!! 뭐야?....진짜 남자로 느끼는거야?....하하!!"

화들짝 놀란 난, 그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내 자리로 뛰어들어 숨었다.

그는 쾌활했고, 세련된 몸짓과 여유있는 웃음을 가졌다.

그것은 나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 대학시절의 첫봄은 그렇게 흘러갔고, 어느새 여름방학이 되었다.

시골집으로 여름방학을 보내러 갔던 나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나야...손지환....알지?"

"예....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라....하하!...."

"예?"

난 잠시,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 적절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건 그렇고....니 동기중에 진숙이라는 친구 있지? 그 친구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걔가 혼자라 우리가 좀 도와야할 것 같거든. 넌 동기니까 얼른 와야겠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야. 낼 아침 일찍 와라"

뚝......할 말을 다한 전화는 이렇게 끊어졌다.

다음날 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차피 방학도 며칠 안남았으니, 남은 기간은 서울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