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50

이별여행


BY 가우디 2005-08-09

서해대교에 들어서기 전부터 차가 밀렸다.

'위험! 주차하지 마시오' 라는 갓길의 팻말 바로 앞에 부서진 차 두 대가 보인다.

바다를 보기위해 갓길에 세워둔 차를, 또 누군가가 바다를 보기위해 들어서다 사고가 났으리라.

길은 구경꾼들과 사고 수습 차량들로 막혀있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서너살짜리로 보이는 아이를 안고 길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은 두려움에 가득차 있었다.

'주차하지 말라고 하잖아.....바보들아.....'

그들은 위험팻말을 보지 못했을까? 공연히 화가났다.

"쉬었다 갈까?"

남편이 말했다.

나는 완강하게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남편은 항상 그렇지만, 두 번은 묻지 않는다.

그것은 질문이 철저히 나를 위한 배려일 때 그랬다.

일요일 저녁, 행복한 가족 나들이객들은 모두 서울로 돌아가고 있다.

그 행렬 속에 남편과 나, 두 사람만이 외계인처럼 끼어있다.

원치 않는 행성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서해대교의 연초록 조명등 사이로 그날 밤이 떠올랐다.

 

까페의 불빛은 연초록이었다.

붉은색으로, 분홍색으로, 보라색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뀌는 불빛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연초록 조명 속의 그녀다.  

남편보다 두 살 연상인 그녀는 초로의 밤무대 가수였고, 그녀의 짙은 화장은 측은한 생각마저 들게 했다.

"뭐하러 왔어요?.....난 할 말이 없어.....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

"그이하고 얘기해요...난 이제 그이 생각에 따를거니까....이렇게 찾아온 거 말 안할께요"

"......."

난 아무말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사랑 받는 여자의 자신감일까.

이 여자......너무 당당하다.

짙은 화장과 검붉은 립스틱.....그녀는 그것들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를 가졌다.

허스키하면서도 어딘가 분위기 있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

남편은 그녀를 사랑한다.

나를 만나기 훨씬 전 부터 그랬다.

대학시절, 남편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이 여자를 처음 보았다.

처음부터 그녀의 느낌은 강렬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우러나오는 이상한 울림같은 것에 나조차도 정신을 잃을 정도였으니까. 

만족한 잠자리를 막 끝낸 듯 달콤함과 섹시함이 묻어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남편의 귓전을 가지럽혔으리라.

"이......혼.......할 거에요....."

난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다.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말을 꺼냈다.

"미안하게 됐어요.....알죠?.....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거....."

<우리>라고 말한다. 내 눈을 들여다 보며 내 남편을 <우리 >라고 말하는 이 여자.

그날밤 난, 질투심과 묘한 열등감에 허둥대며 그 까페를 나왔다.

 

"에이 씨!"

남편은 짜증스러운 듯 머리 위의 빽미러와 조수석 옆의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기회가 온 듯 남편은 갓길로 차를 뺐고 내 달리기 시작했다.

차는 <발안>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바쁜 일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남편은 내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차는 막힘없이 잘 달렸다.

나는 남편의 옆모습을 힐끗 보았다.

넓고 잘생긴 이마와 조각상처럼 반듯한 콧날.....내 눈길은 남편의 턱선에서 멈췄다.

후두둑!

갑자기 굵은 비가 차창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차창 유리에 맺혔다 흐르고 맺혔다 흐르고 하는 빗방울을 본다.

순간, 빗방울들이 뿌옇게 내 눈 속을 점령한 채 흘러내렸다.

이젠 모든 걸 끝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