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2월 9일.설날 다음날
오전 10시경.간호원 스테이션에서-어자영씨!면회요-하며 큰소리로 불렀다.로이얄 형이었다.양손에 잔뜩 음식을 싸 갖고 왔다.
-형,무얼 이렇게 많이 갖고 왔어요.
-응,어제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인데 전자렌지에 뎁혀서 가져 왔어요.식기 전에 얼른 갖고 들어가서 환자들이랑 같이 먹도록 해요.
형은 대구에 내려 갈려면 고속도로가 워낙 막혀서 올 설날 부터는 부모님이 대신 올라오시기로 했다면서
-이제 곧 퇴원한다고 했죠. 죽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싸 준 음식일까? 오색부침부터 인절미,절편,송편,꿀떡까지 구색을 모두 갖췄다.각종 과일과 나물종류도 빠뜨리지 않고 싸 왔다.방 식구들은 마침 출출할 때라 게걸스럽게 먹었다. 딴 방 환자들도 서로 음식을 차지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정신병동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오색부침이 부스러져 나갔고 각종 떡들이 먹지도 못하고 환자들 손에서 짓물러졌다.지옥이 따로 없다. 아비귀환이다.나는 로이얄형의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창에 매달려 형의 가는 모습을 지켜 봤다.
오후 2시경.이번에는 남편과 아들이 캐나다에서 돌아와서 면회를 왔다.내가 못 본 4개월여 동안 아들은 키가 훌쩍 커 있었고 목소리는 변성기를 맞고 있었다.아들을 보니 반갑고 애처로운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나는 이 병동에서 평생에 흘린 눈물을 다 흘린것 같다. 딸이 1주일에 한 번씩 면회를 올 때 마다 쇠창살문틀에 매달려 가는 뒷모습을 보며 흐느꼈다.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할 것 같은데 좀 처럼 마음은 개운치가 않았다.
-누나들이 정혁이한테 잘해주지.누나들 말 잘들어.
-네,걱정마셔요.
아들은 모자를 거꾸로 쓴 채 구경하려고 몰려 나온 환자들(면회오는 사람이 있으면 으례 환자들은 뭐 먹을것 없나 하고 우르르 몰려 나온다.)의 모습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딸 둘끝에 낳은 아들. 세번째 아들 나올 확률은 좌우정,영의정 벼슬 보다도 어렵다고 해서 나는 아들을 (다이아몬드)라고 곧잘 부르곤 했다. 주위에서 사람들은 (다이나마이트)라고 놀리곤했지만.
-캐나다 아버님 어머님은 편안하세요. 아이들 삼촌 고모도 모두 잘있지요?
-모두 당신 걱정 뿐이요. 삼촌이 신경정신과 의사니까 퇴원하는 길로 캐나다에 와서 얼마동안 요양하면 어떻겠느냐고 했소.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병든 며느리,병든 형수를 좋아할 시댁은 이 세상 어느 구석에도 없으니까.
남편이 아들을 면회실에서 먼저 내보내더니 나도 나갈려고 하자 뒤에서 나를 힘차게 안았다.우리 부부는 앞으로 화해하며 잘살 수 있을까?참 이상도 하지. 그가 나를 뒤에서 와락 앉는 순간 그에 대한 미움이 눈녹듯이 사라져가는 내자신에 나는 놀랬다.
아들과 남편이 가는 뒷모습을 보고나서 나는 병상에서 흐느껴 울며 무너져 내렸다.아들의 모습이 애처로와서 그랬는지 한참 울고 나니까 처음으로 가슴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일종의카타르시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