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좀처럼 비를 그칠 생각이 없는지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기만 했다.
민혁은 은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가자!"
은서는 갑자기 어딜 가는건지 의아해하며 민혁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시동 걸어 놓을테니까 얼른 나와라!"
"저.......저기요 선생님!........"
은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민혁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아마도 바닷가에 가자는것 같았다.
빗줄기는 점점 거칠어지며 번개까지 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망설이니?"
"비오는 바닷가 걷고싶다며?"
민혁은 은서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비오는 날씨인데도 도로는 차들로 가득차 있었다.
민혁과 은서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바다로 향하고 있는것일까?
민혁은 빗소리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운전을 했다.
차안 가득 크리스 스피어리스의 에로스가 흘러나오고 있엇다.
"빗소리 너무 좋다!"
"내가 왜 빗소리 음악을 틀어놓는줄 아니?"
은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지난번 혼자 바닷가에 갔을때 차안에서 듣던 음악인데..................."
민혁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삶이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싶었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만큼은 민혁에게 있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은서는 민혁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 주었다.
말을 하지않아도 묻어나는 민혁의 힘들었던 지난 날들을 읽을수 있었다.
그런 힘든 날들이 없었다면 민혁과도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잊고 싶어도 잊을수 없는 지난 날들을 오늘만큼은 던져버리리라
은서는 속으로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지금의 이 삶에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리라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고 있었다.
은서는 민혁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어느새 바닷가에 도착해 민혁은 모래사장에 차를 세웠다.
아직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며 바닷가를 적시고 있었다.
민혁과 은서는 우산도 없이 개구장이 어린아이처럼 바닷가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듯 두 사람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곱지않은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날려버린채 .....................
아무것도 두렵지않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행복을 그려 나가고 있었다.
영원히 이 꿈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어느새 현실이란 장벽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만다.
아무리 넘으려 해도 넘어갈수 없고 아무리 부수려 해도 부술수 없는
세상문은 굳게 닫힌채 묵묵부답이었다.
은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꿈이 아니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은서는 민혁을 와락 끌어안았다.
"세상은 왜 우리를 허락하지 않는걸까요?"
은서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서로 사랑한다는데 왜 그렇게 방해를 하려는걸까요?"
"예?"
민혁은 눈물만 흘릴뿐 아무 대답도 할수가 없었다.
아니 해줄수가 없었다.
아무리 사랑하지 않으려 해도 자신도 모르게 사랑으로 다가오는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이 들었다.
눈물을 억지로 감추며 태연한척 애를 썼다.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건 당연한거야!"
민혁은 갑자기 목이 매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차문을 박차고 바닷가로 뛰어갔다.
그리고 소리치고 싶었다.아주 목청껏.......
"사랑한다!은서야!"
가슴에서 응어리졌던 그 한마디를 토해내지못해 털썩 주저앉아
그만 울고 말았다.
그 사랑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민혁은 이제서야 깨달았다.
민혁의 가슴속 메아리에 장단을 맞추듯 파도는 움칫 놀라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일렁이고 있었다.
백사장 가득 아무리 사랑한다 가득 써놓아도 파도에 휩쓸려 지워지는
허무함만 가득할뿐이다.
그저 자연의 이치인것을 파도만 탓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늘은 민혁의 울음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빗줄기가 더 굵어지고 있었다.
은서는 민혁의 안쓰러운 모습에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가슴에 크게 와닿는 민혁의 큰 사랑을 느끼며 은서의 두 눈엔
눈물만 가득 흐를뿐이었다.
달려가 민혁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냥 그대로 지켜보아야했다.
그렇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언제 그랬냐는듯 금새 조용해졌다.
빗소리에 놀라 요동을 치던 파도소리도 금새 사그라들고 있었다.
민혁은 멍하니 잠잠해진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꼭 내 마음을 표현하는것 같아!"
갑작스런 민혁의 말에 은서는 어리둥절해졌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 바다가 꼭 내 마음을 표현하는것 같아서............"
"처음에는 잔잔하다가 갑자기 그리움에 북받쳐 요동치는
내 가슴을 표현한것 같아서......"
민혁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못했다.
눈물이 마를새도 없이 어느새 주르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모질게 대했던 민혁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숨기느라 힘이 들었을 지난 날들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넘어야할 산을 넘지 못해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던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 안타까울뿐이었다.
"은서야!"
"네!"
"우리 손잡고 달려볼까?"
민혁은 은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이 제자에게 내미는 손이 아닌.....................
연인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을 은서는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민혁은 그런 은서를 와락 끌어안았다.
민혁의 가슴에 안긴 은서는 세상의 전부를 가진듯 행복했다.
눈을 감고 민혁의 두근거리는 가슴을 음미했다.
민혁은 은서를 더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은서의 입술에 사랑을 전했다.
차마 말로 할수 없었던 가슴속 깊은 곳의 사랑까지도 빠짐없이
전해주고싶었다.
민혁은 오랫동안 은서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가슴 가득 고여 있던 참을수 없었던 사랑의 감정들을 가득 싣어
입슬 가득 담아 주었다.
이룰수 없는 사랑인줄 알면서도 북받치는 감정을 견뎌내기란
너무 힘들었다.
민혁의 뺨위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가슴 가득 은서를 안고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기에 더 가슴이 아려 왔다.
그녀를 떠내보내지 않는건 이기적인 생각이기에 가슴이 아파왔다.
은서는 그런 민혁을 이해할수 없었다.
영원히 함께 있고싶어하는 마음을 왜 무시하려는것일까?
민혁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서는 그냥 이대로 민혁의 모든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아무런 슬픔도 눈물도 느끼지 않은채 이 행복 이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민혁의 품이 이렇게 크고 따뜻한지 처음으로 느꼈다.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그 포근함에서 영원히 깨고싶지 않았다.
지난 아픔들은 먼 기억속에 흘려보내고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함께 하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