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861

[006] 슬픔의 아름다움-YSH


BY ff 2005-01-20

 write by bada

 

 

지연씨를 소개 시켜 준 사람은 둘째 고모였다. 처음에 그녀를 본 장소는 호텔의 커피숍이었다. 나는 우습게도 ‘일단의 목숨이라 치부하고 있는 그저 그런 삶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나의 안타까운 삶의 연장을 보조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그런 설명은 자세히 하지는 않았다. 첫 만남은 그래서 생긴 오해였던 것이다. 고모는 그제야 내가 결혼을 생각하고 있구나 생각했고 어디서 알았는지 송파구에 있는 종합병원 원장의 둘째 딸을 데리고 나왔던 것이다. 처음부터 소위 말하는 가정 도우미를 소개 받는 자리를 호텔 커피숍으로 정할 때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고모의 취향이 워낙 남다른 탓인 줄만 알았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고모는 느닷없이 물어왔다.

 

‘어떠냐?’

 

‘네? 아······ 집에서 도우미 일 하시기엔 조금 불편해 보이시는 복장인데요?’

 

사실 지연의 모습을 보자마자 고모께서 어떤 계획으로 그녀를 데리고 나왔는지 짐작 할 수 있었다. 세상에, 도우미 일자리 소개받는 자리에 흰색 실크 브라우스에 검은색 정장을 쫙 빼입고 우아한 진주 목걸이에 메이크업까지 하고 나온 여자라니. 나는 그녀가 선을 보러 나온 것이란 사실을 눈치 챘지만 고모의 기분을 맞춰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실 그대로 대답했고 연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고모의 기분을 맞춰준다면 하루 종일 원치 않는 데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연기는 매우 소모적이고 힘이 드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저 정장은 일하는 덴 불편해 보였으니까.

그러자 지연은 방긋 웃더니 그 큰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인사였나 보다. 매우 갑작스럽고 자연스럽게 취한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방금 내가 한 말에 당황할 법도 한데 조금도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때문에 나는 어정쩡하게 두 눈을 멀뚱히 뜨고 고개를 앞으로 쭉 빼는 기이한 인사를 하게 됐다.

 

‘박지연이라고 합니다.’

 

목소리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조용했지만 또렷했고 깨끗한 음색이었다. 만약 아침에 누군가 나를 깨운다면 저런 음색의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러 줬으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김상현입니다.’

 

늦은 대답에도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고모는 처음엔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처다 보시더니 자리에서 일어 나셨다. 이미 수십 번도 넘게 선을 보라고 나를 보채셨고 마지못해 두어 번 나간 자리에서 상대를 앞에 앉혀두고 단호히 거절했던 전력이 있는 나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으시겠다는 태도임에 분명했다.

 

‘난 간다. 둘이 이야기 하다가 저녁 먹고, 상현이는 지연이 집까지 바래다주고 들어가야 한다. 만약······. 문자 보내마.’

 

딸만 넷인 고모는 상당히 신세대적인 사고에 민감했다. 나이 60을 넘기셔서 휴대폰 문자 서비스 정도는 우습게 사용하셨고, 가끔 MSN메신저로 말을 걸어오시기도 했다. 처음에 ‘kimyousa'란 아이디로 대화상대 추가 신청이 들어 왔을 땐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나 대화상대 추가를 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 아이디를 그냥 무시했고 며칠 뒤 고모의 전화에 반갑게 수화기를 들었다가 30분이 넘는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미 사촌 동생과 메신저 아이디를 교환해 놓은 상태에서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접속한다는 사실 -내 직업상 업무 중에 메신저는 필수다- 을 전해 들으시고 아직도 당신을 대화상대로 추가하지 않은 조카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셨던 것 같았다. 아버지의 형제라곤 고모밖에 없고 우리 집은 나 혼자 즉 외동아들이었고, 고모네 집은 딸만 넷이어서 고모는 마치 나를 자신의 아들인 양 대해 주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엔 더욱 그러셨다.

 

 

------------------------------------------------------------------------

정신없이 바쁜 하루들...

글을 쓸 여유조차 없네요...

출판한 요리책은 잘 팔리는지 괜히 걱정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