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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슬픔의 아름다움-YSH


BY ff 2005-01-11

 write by b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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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의 연락이 하나, 방송국에서 담당 PD가 두어 번 연락해 오셨습니다.”

 

오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기억의 편린들이 잠시 떠올랐다. 그리고 전혀 무겁지 않을 듯하던 그 작은 기억들은 또 다른 무게감으로 나를 짓눌러왔다.

 

“지연씨 미안해요. 전화 좀 대신 해주세요. 오늘은 통화하기 힘들 것 같다고.”

 

그녀의 머릿결에서 나는 향기인 듯. 청포향기가 내 후각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청아한 향기가 가지는 이미지와 어울리는 묵 빛의 깊고 새까만 머리카락. 그것을 질끈 묵은 노란색 손가락 굵기의 고무 밴드가 약간은 허술해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지연이었다.

 

“출판사에는 그렇게 전화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김PD님께는 직접 통화를 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웬만해서는 내 말에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조심스러운 몸을 움직이던 그녀의 제안에 나는 잠시 그녀의 눈동자를 어지럽게 바라봤다. 그럴 때면 언제나 느끼는 거였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그녀의 머리카락의 색깔과 매우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동안을 그렇게 쳐다보자 그녀는 나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표정이 없는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지어 보이는 듯싶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엊그제가 원고 마감일 이었습니다.”

 

그랬었다. 아무래도 유전자가 바뀌면서 내 기억력도 감퇴되는 방향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사소한 기억들, 예를 들어 일에 관련한 마감날짜라던지 즐겨 쓰는 만년필이나 검은색의 굵은 색연필을 놓아둔 장소라던지, 그리고 내가 현재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그거 큰일인데. 아직 반밖에 안 했는데. 지연씨, 혹시 촬영일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김PD님 말씀에 의하면 오늘 중에 촬영이 들어가야 간신히 방송시간을 맞출 수 있다고 하시네요.”

 

그녀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니, 나에 관련한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말일 것이다.


혼자 사는 30대 중반의 대인기피증을 가진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집은 혼자살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넓었고, 남자는 자신이 언제 이런 물건들을 다 구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집안에 쑤셔 놓고 살고 있었다. 잠시만 방심하면 이 넓은 집에 사람이 다닐 정도의 작은 오솔길들이 만들어 질 정도로 어지럽혀지곤 했다. 그리고 남자는 갖은 질병을 앉고 살았다. 대장염, 위궤양, 아토피성피부염은 물론 기관지염에 지금은 치료 되었지만 급성 신장염까지 찾아 온 적도 있었다. 병원에선 그 원인을 인스턴트 음식과 식생활, 음주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종양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까지 했다. 여기에 유전자의 변이로 인해 누군가 깨워주지 않으면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잠에 빠져 드는 병까지 겹쳐 있었다.

그 남자는 물론 나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억속의 그녀를 잊기 위해 일에 미친 듯이 매달려온 나는 개인 비서쯤 되는 사람들 찾았고 그때 만난 사람이 지연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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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삶이 바빠서...

좀 늦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식이 되면 안 될텐데... 후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