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y b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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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마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물며 얼굴까지야.
차갑게 내리쬐는 태양은 오늘도 한가하다. 우주가 태어나면서부터 언제나 저 자리에서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혹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을까. 그렇다고 흑백으로 점철된 내방 커튼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빛줄기에 말을 걸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저 나의 작은 움직임에 먼지들의 재잘거림이 온 방안에 울려 퍼질 뿐.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제는 길을 걷다 우연히 그녀를 보게 된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련한 첫 사랑의 추억은 그렇게 가슴속에 묻혀져만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2-
‘김 선생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나는 잠결을 헤치며 가늘게 눈을 뜰 수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커플 사이로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묵어 한쪽 어깨 앞으로 넘긴 여인의 형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그 잔상이 주는 이미지에 흠뻑 빠져 들었다. 그렇게 한 5분이 지나자 오른쪽 뺨 옆으로 따듯한 기운과 함께 향긋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올 늦가을에 선각사 해련海戀스님께서 직접 말려 보내온 국화차였다. 그러고 보니 해련스님을 찾아 뵌 지도 어느덧 일년쯤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은 들려야 할 듯싶다.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아직도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의자의 레버를 당겨 등받이를 세우고 차 쟁반위에 올려져 있는 물수건을 들어 가볍게 얼굴을 훔쳤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이제야 그녀의 얼굴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실망한다. 역시, 그녀가 아님에. 그녀는 내가 일어났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걸어가는 뒷모습의 단아함이 인상 깊게 내 뇌리에 박혔다. 이제야 인정하는 것이지만, 내가 그녀를 고용했을 때의 심정은 바로 저 단아함에 고스라니 묻어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깨워 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아마 그녀의 소식이 끊겼던 3년 전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어떤 병원에서는 뇌 중앙에 있는 시신경 교차상핵이 말썽을 일으킨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고, 또 다른 병원에서는 작은 형태의 유전자 변이 즉, 돌연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사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대학 때 생명공학에 관련한 수업을 많이 들어서 인간에게도 종종 돌연변이가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현상이 그동안 나를 지지하고 있었던 나라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란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에게 받은 ‘나’라는 사람은 유전자가 변하던 한 순간에 없어진 것이다. 대신 누군가 깨워 주지 않으면 잠에서 깨어날 수 없는 새로운 사람만이 존재 할 뿐이었다.
그렇게 3년 동안 단 한번도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리고 깨어나지 못했을 때는 언제나 꿈속에서 그녀를 찾아 헤맸다. 가끔 흐릿하게나마 그녀의 얼굴이 기억날 때면 기쁜 마음에 영원히 이 순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나를 깨우는 사람들은 존재 했고, 그들은 건조한 삶의 한 편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게 했다.
옆에 놓여진 다기에서의 온기가 팔목에 전해져 왔다. 시선한번 보내지 않은 나는 천천히 팔을 뻗어 청자로 된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국화차의 향그러움이 코끝을 심하게 자극했다. 그리고 그 향기는 내 뇌 속 깊은 곳에 소중히 묻혀진 단 하나의 추억을 여지없이 끌어 올려놓았다. 선각사에서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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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입니다.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두려운 마음도 앞섭니다.
현재는 하루 A4 1장정도 분량을 연재할 생각이지만,
나중엔 더 적어질지 많아 질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일반 장편소설은 처음이라서,
흥분되고 기대되고 더불어 두려운 마음도 없지않습니다.
간혹 그동안 써 놓은 단편들도 올리겠습니다.
작은 평가 한줄이라도 써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