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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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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BY 글벗 2004-08-24

 

출근시간이 늦는 관계로 난 오전 10시가 넘어 전철을 탄다.

매일 그러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어 차례 그런다.

이 시간엔 전동차 안에 남자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여성 중에는 갓 결혼했음직한 30대가 많으며 고교나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을 젊은이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이 시간에 전철을 탄 것을 보면 나처럼 반듯한 직장을 얻지 못했거나 직장을 얻었더라도 출근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그런 여성들이 아닐까 어림짐작한다.


아무튼 난 이 시간에 전철을 타는 것이 쑥스럽다. 뭇 여성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얼른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부족한 잠을 청하려는데 한심한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간신히 세수만 마치고 집을 나선 듯한 여자 한 명이 바로 앞자리에서 부지런히 얼굴을 다듬고 있었다.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어서 다시 눈을 감으려 하는데 이 여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런 경우 대부분 남이 볼세라 흘끔흘끔 대충 끝내는데 이건 아예 화장품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혼자 집에서 하던 화장 순서를 그대로 재연했다. 그녀의 과감성에 나는 잠자는 것을 잠시 미룬다.


그녀는 화장품 가방에서 기다란 막대기를 꺼내더니 손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끝이 뾰족한 나무봉으로 쌍꺼풀 주름을 쑤셔댔다.


'아, 쌍꺼풀을 만들려는 거구나.'


아니나 다를까, 자세히 보니 잠을 많이 잤는지 그녀의 눈두덩은 약간 부어 있었다. 오른쪽 눈 쌍꺼풀을 쑤시고 눈을 깜빡이면서 거울 한 번 들여다보고, 다시 쑤시고 또 거울 들여다보면서 전동차가 전철역을 세 군데나 지나치도록 그녀는 그 짓을 계속했다. 그녀의 쑤시기 작전은 무슨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집요했다. 노력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드디어 왼쪽 눈보다는 훨씬 선명한 쌍꺼풀이 오른쪽 눈에 생겨났다.


새로운 전의를 다지며 왼쪽 눈꺼풀을 쑤시기 시작할 무렵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손거울이 다시 내 눈에 들어왔다. 둘리 만화가 그려져 있는 거울 뒷면에 커다란 글자가 두 개 새겨져 있었다.


'민지.'


난 지금부터 그녀를 민지라고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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