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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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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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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2004-07-24

가난은 부끄러운것이 아니라지만 알고보면 비참한것이다.

엄마가 그랬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건 뭔지알아?

 

[음...귀신.]

 

[아니야. 돈없는 설움이야....]

 

2년전 아빠가 우리를 떠나기 전날밤 우리는 셋이 부둥켜안고 울었었다,

배운것도 돈도 빽도 없던 아빠가 무리하게 친구의 말만믿고 사업이란것을 시작한것이 화근이였다.

세상에 사람은 자기같은 사람밖에 없는줄 알고 있는 아빠였다.

주변에 가까운 친구나 친지에게 돈을 빌려서 시작한 사업이였는데

믿었던 동업자가 그돈을 모두 싸들고 한국을 떠났다고 했다,

사무실은 계약한적도 없었으며 찾아간 동업자의 집은 며칠전 이사가고 아무도 살고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빠는 신고도 하지않고 며칠을 더 기다렸다.

무언가 잘못된거라고 10년도 더 알고 지낸 그놈이 나에게

절대로 그럴리 없다고....

보름이 지나던 날밤, 아빠는 술에 잔뜩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와서

현관앞에 대자로 누워 밤하늘을 보며 큰소리로 울었었다,

 

[여보 울지마..]

 

소녀같은 엄마는 아빠에 가슴에 파묻혀서 울었고

나는 울지않고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해. 여보,

윤주야 미안해. 흑흑.

 

윤주야. 아빠가 미안하다.

우리하나밖에 없는 딸이 아빠가 도배쟁이인것이 부끄러울까봐.

남의집 하수구 뚫고 다니는것 싫을까봐~

우리딸도 사장님 딸 소리 듣게 해주고 싶었는데...

공부잘하는 우리딸 꼭 교수시켜줄려고 했는데...]

 

 

[여보 울지마.

돈은 갚으면 되는거지

우리 이렇게 열심히 살면 다 돼.

당신이 울면 난 어쩌라구..]

 

엄마는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눈물흘리는 엄마의 모습이 꼭 영화에 나오는 배우처럼

느껴졌다.엄마의 울어도 예쁜모습이 더 그런느낌을 주었지만

이 상황이 꼭 영화같았다.

 

둥그런 보름달아래.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까칠한 그다지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한남자가 하늘을 보며 통곡하고 있고

 

정윤희 보다 예쁜 얼굴에 또 영화속 여배우의 더빙된 울음소리 같은

목소리로 흐느끼며 대사를 읊는 여자.

아직도 내머릿속에는 흑백영화의 한장면 처럼 남아있다.

 

 

그 슬픔과 눈물이 영화처럼 로맨틱하게 느껴진 건 그날밤이 마지막이였다.

우리는 가장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가장 비참하게 상처받아갔고

그들도 우리로 인해 사나워져 갔다.

 

사업한다고 진 빚의 원금은 커녕 이자갚기도 허덕이고 있었고

어떻게든 갚아보겠다고 아빠는 막노동일을  시작하였고

엄마는 분식집에 취직해  떡복기를 만들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대부분 아이들이 엄마가 만든 떡뽁기를

먹었다.

나는 구멍나고 작은 실내화를 구겨서 겨우신고 다녔다.

 

하지만 모두 깨진독에 물붇기였고

우리에겐 독의 구멍을 막아줄 두꺼비도 없었다.

 

고아로 자란 아빠와 분식집집 막내딸..

 

십몇년전 경상도 대구.

 

젊은 아빠는 식료품 재료상집 배달부였고

고등학생인 엄마는 쓰러져가는, 학교와도 먼곳에 자리잡은 분식집 막내딸이였다.

아빠는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재료를 배달했고

교복입은 엄마는 땀에 절은 그 남자에게 매번

식소만 잔뜩든 팥빙수를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아빠는 그 팥빙수만 먹으면 설사를 해댔지만

엄마가 만들어주는 팥빙수를 매번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고 했다.

 

아빠는 어느날 우리에게 말했다.

 

[이렇게는 못살겠다.

아빠 돈벌어올께.

일본에 가서 잡일을 하면 여기 회사원보다 돈을 더 많이 벌수있단다.

아빠가 가는 방법도 다 알아놨거든.]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이미 알고있는 눈치인듯.

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그리고 너랑 엄마는 내일밤에 이사갈꺼야.

아빠아는 사람이 운전수로 있는 집인데,

우리사정을 딱하게 여겨서.

그집지하에 남는 방을 빌려주기로 했어.

그친구가 사장님께 꽤 신임을 받고 있어서

별 문제없이 허락받았데.

세상에는 그런 고마운 사람들도 아직 살고있더구나.]

 

 

아빠 가지마...싫어. 엄마랑 나랑 두고 가지마...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다른말을 내밷었다.

 

[왜 밤에 이사가...?

도망간 아빠친구랑 다른것 없잖아.!!]

 

[아니야. 윤주야.

아빠는 일본서 돈벌어다가 다 갚을꺼야.

지금은 힘드니까 잠깐 타임아웃인거야.]

 

우리는 다음날밤 서울변두리에서 강남의 으리으리한집 반지하로

이사왔으며 아빠는 그다음날 밀항선을 탔다.

 

 

비틀즈의 LP가 다 돌아갔고 전축 바늘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울고있었다.아빠가 보고싶었다.

그날이후로 아빠에겐 아무 연락도 없었다.

아빠는 이곳의 전화번호도 주소도 모르고 있을테니까.

많이 보고싶지만 어쩔수없이 나처럼 참고 있을것이다.

집의 위치는 알고있으니까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온 아빠가

양복을 말끔이 차려입고 나타나겠지...

 

나는 매번 현관문을 열때마다 엄마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빠를 상상하곤 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선 나는 절대 울지 않는다.

끄떡하면 울곤 하는 엄마와는 많이 달랐다.

나는 눈물참는방법을 알고있지만 엄마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다.

엄마는 눈물로 자신을 치유하는 사람이니까.

 

 

역시 주인집 딸이 쓰다가 질린 빨간색 책가방를 매고

독서실로 향했다.엄마는 얼마안되는 월급을 타면 나에게 한달치 독서살비먼저주었다.

 

[엄마, 나 집에서 공부해도 돼.

필요없어. 밤에 나 혼자있는걸. 뭐.]

 

[여름에 끈적하고 덥고 주인집 진돗개 짓어대는데 무슨 공부가 되니...?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독서실에서 조용히 공부해.

엄마가 그정도 해줄 능력은 있어.

너 아빠소원이 뭔줄알아..?

너 교수님 되는거였잖아.

아빠가 돌아왔는데 너 공부못하면 엄마 할말없어. 애!!

우리 식당 주인아줌마한테 내딸은 XX 고등학교다니는데 반에서 5등이나 6등정도 한다고 하면

입벌리고 부러워 하드라. 딴 동네가면 전교1등감이라고..

그소리 들으면 엄마는 너무 행복해~~

알았지. 그러니깐 넌 아무생각도 말고 공부만 해.!!]

 

내가 독서실에다녀야만 엄마가 편할것 같았다.

학원은 못보내주는 형편임으로 독서실이란곳이 엄마가 나에게 하는 최선의

뒷받침이였다.

 

독서실을 향해 가면서 아마 한번도 본적없지만

주인집 딸은 나를 금방 알아볼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와 마주치는 대학1학년쯤 되는 여자들을 마주치면 왠지 긴장하며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골목길을 숨듯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