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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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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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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BY 선유 2007-07-17

  남편은 잠시 내 시선을 의식하며,  고개를 돌린 채 물었다.

<15일에 은행에 가야해.  그날 대출이 가능하대 그리고....>

무언가 말을 더 하려는듯  입 한쪽 끝을 올렸지만,  아무런 댓구를 하지 않는 나를 한 번 쳐다

보고는 그냥 집을 나섰다.

철컥 소리에 이어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리는 소리가 났다.

<빤히 보고 있는데,  문은 참 정성 스럽게도 잠그네.>

<밤에나 문단속 좀 잘하지...>

사실 남편은 밤에는 문 도 잠그지 않을때가 많았다.  그래서 항상 내가 체크해야만 했다.

 

  작은 아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고 있다.

금방 붙이다 만 씨트지가 거실 바닥에 널부러져 있지만,  왠지 손 대기가 싫다.

무슨 씨트지를 그만큼이나 썼냐고 핀잔을 주던 남편의 찌그러진 얼굴이 뇌리에서 지어지질

않는다.  잠시 멍한 시선을 의식하다  화장실 문을 쳐다 보았다.   썩어서 까맣게 보이던 문이

감쪽같다.  문 색깔 보다 약같 짙 긴 하지만 그런대로 어울린다.  새로선에다 길게 몇 줄 만

더 붙이면 이제 거의 표가 나지 않을 듯 싶다.  

<엣따,  하는김에 마저 하자.> 

내심으로 다짐을 하고 다시 가위로 10.5센티미터에 가깝게 선을 따라 오리기 시작했다.

몇차례 오리고 붙이고 해서 인지 손에 익은 느낌이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길이이다. 의자

를 놓고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앞면에 네 줄 뒤면에  네 줄 모두 다 붙이려면 그래도 꽤 시

간이 걸릴 것이다.  이제는 가위가 잘 들지를 않는다.    씨트지를 오릴때 칼날에 묻은 약간의

본드때문이다.  손으로 본드를 떼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아이방에 들어가 다른 가위

를 골라와야 할 것 같다.

 

  <에~에잉>

작은 아들은 꼭 일어날때도 표시를 낸다.  

<대웅이 깼쪄?>

나도 모르게 나오는 유아발음이다.   걸어와 안기는 아이의 몸은 따끈하다.  토실한 허벅 다

리를 아프지 않게 주무른다.  느낌이 좋다.

<대웅이 맘마 먹을까?  우유 줄까?>

<우유 쭈쎄요.>

기다리던 대답이다.  우유를 주스컵에 따라 주고는 다시 씨트지를 오려 붙이기 시작한다.  아

이는 안아 달라고 땡깡을 부리지만,  그럴수는 없는 일이다.  눈에 불을 켜고 아이를 밀쳐 내

다 시피하며 일에 몰두하자,  30분이 채 되기도 전에 일이 끝났다.  

<아!  정말 감쪽같다.>

감탄사가 입밖으로 튀어 나왔다.

<대웅아,  어때 예쁘지?>  

댓구도 않은 채 아이는 텔레비젼만 쳐다보고 있다.

기저귀는 뺐는지 베란다에 널부러져 있고,  오줌이 방 바닥에 흥건하다.  오줌을 닦아내면서

도 화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  새 장판이라 걸레질 하기도 좋다.   좁은 화장실이라 세면기를

떼어 냈다.  사용하기가 훨신 수월해 졌다.  쭈그리고 앉아  씻고 빨고 해야 하지만,  그게 뭐

대수 인가?  내 집인데....물을 틀어 걸레에 비누칠을 하고 있는데, 쐐~에 하는 물 소리에 전

화벨이 섞여 들린다.  허둥지둥 고무장갑을 벗고,  아이방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6월15일 1차  재판에 미참석 하였으므로 경찰청에 가서......>

<이게 무슨 싯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그러나 중요한 순간엔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 들을 수 가 없다.  자세히 듣기를 원하면 1번

을 누르라고 한다.

내심 재판 어쩌고 저쩌고 하니 겁이 덜컥 나기도 하고 궁금 하기도 하다.  

번호를 누르자, 50대인 듯한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는 꼭 모 유명인사 여 변

호사의 목소리 같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그녀는  두 가지 죄명으로 카드 사기단의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

다고 한다.  당황한 나는 나는 아니니까,

<누가요? 000  이요?>

나도 모르게 남편의 이름을 말해 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말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왠일이지? > 

<이상하네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녀는 지난달 등기 어쩌고 하면서 그런일이 없었다면 경찰청에 가서 사실을 말하라고 한다.

<지금 전화 하신대는 어디인데요? > 하고 묻자,

그녀는 가정 법원이라고 말하고는 카드번호보다도 긴 경찰청 전화 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

리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건번호도 함께 알려 주었다.

긴 한숨을 토해내며, 전화를 끈었다. 

<아침에 거의 냉전 상태에서 출근을 했는데,  뭐라고 전화를 한담.....  할 수 없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의외로 침착했다.  어디서 온 전화냐고 물었다.  가정법원 이라고 말하자,  그럼 거기

에 전화해서 그런 사실이 있는가고 확인을 하라고 한다. 

가정법원으로 전화를 하자, 어이 없다는 듯이

<전화 사기단이네요.> 그리고는

<음성 메세지로 오는 전화는 받지 말고, 그냥 끈으세요.>한다.

<오!  마이 갓>

이 아침에 이게 뮈슨 병고인고,  함지박으로 머리를 대개 얻어 맞은 기분이다.  단 5분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넘나든 것 같다.  갑자기 시장기가 밀려 온다.  아이는 그새 조각난 시트지를

안방에 가지고 들어가 가위로 오리고 있다.

  <대웅아,  맘마 먹자.>  밥 숟가락이 입안으로 들어 갈 때 마다, 한 웅큼씩 쌓였던 시름이 덜어 지는 느낌이다.  이러니 살이 찌지. 

<여자여,  여자여,>

<그만 좀 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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