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감을 모아두는 바구니에서 밀려나온 구겨진 옷들이 베란다 바닥에 널부러진 채 서연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바닥에 딩구는 옷을 보는 순간 자신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연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바구니를 집어들었고 세탁기 안에 옷을 모두 집어넣었다. 세탁 버튼을 누르자 뒤엉킨 빨래들은 서로 부대끼며 때로 오염된 몸을 씻어내고 있었다. 물은 순식간에 혼탁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맑아졌고. 깨끗하게 세탁된 빨래를 건조대에 널면서 서연은 헝클어졌던 마음이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얼마 있으면 불혹의 나이가 된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 했던가. 서연은 어이없게 무너졌던 자신의 마음을 자책하며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감정의 잔재들을 수습했다,
서민호라는 남자는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자기 따윈 안중에도 없을 테니 망상에서 빨리 벗어나 정신을 차리라고 최면을 걸 듯 중얼거리곤 했다.
겨우 감정을 추스린 서연은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맘먹었다.
잡념을 버리기위해서는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서연은 다른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지희와 서민호의 얼굴을 수없이 떠올렸지만 그럴때마다 거듭 최면을 걸었고 그를 향한 부질없는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다. 새로 돌보게 된 아이들 역시 온순하고 낯을 가리지 않아 편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단숨에 하루가 흘러갔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밤이되면 잡념대신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만큼 아이들은 잔손이 많이 갔고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서연은 차츰 베이비시터라는 직업에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열심히 일한만큼 사무실에 인정을 받은 서연은 계속 일이 연결되어 바빠졌다.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에 오염된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탁해진 마음이 보인다.
그래서 아이의 눈을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게 된다.
왜 아기들을 천사에 비유하는 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베이비시터라는 직업이 힘들다고 느껴질때가 가끔 있지만, 사랑스러운 아기들의 눈빛을 생각하면 새힘이 솟았다. 내 아이를 돌본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돌보았기에 아이들은 서연을 잘 따랐고 엄마들의 신뢰도 받게 되어 서연의 인기는 나날이 좋아졌다. 그만큼 서연은 일에 빠져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