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저, 정팀장입니다.
난 항상 명함을 받으면 그 사람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해 놓는다.
정팀장도 내 습관에 의해 저장된 인물이다.
-혹시, 김팀장이랑 같이 있나요? 전화를 사무실에 놓고 나가서…
꽤, 미안한듯한 목소리다.
-정팀장님, 지금 점심시간 이잖아요…?
본의 아니게 목소리가 따지는 투가 되었다.
-아…네..미안합니다.
-김팀장님, 바꿔 드릴까요?
-네…
<그러니까 미안할 짓을 왜, 해…-.->
-근데, 너 정팀장한테 왜 그래?
화영선배가 정팀장과의 통화를 끝내더니 다짜고짜 내게 묻는다.
-내가 몰?
-말투가 그게 모야? 정팀장이 너한테 무슨 실수라도 했어?
-아니…-.-
-근데 왜 그래?
-모르겠어, 그냥 싫어…
-누가?
-정팀장…
선배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
-왜? 인표씨가 너의 집 빌라에서 나간걸 봐서?
-아냐…그것뿐이 아니라….
난 회사 출근 아침에 택시를 같이 탄일, 새벽녘 슈퍼에서 마주친일
(모…난 모른척했지만…)등 소소한 일들을 선배에게 전달했다.
-냐~ 이선경! 너 나이가 몇 개니?
-그게 나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요…? -.-
난 이성적으로 마구 따지고 싶었으나, 나의 본능이 그걸 막았다.
<어째…이성과 본성이 이렇게 절묘하게 바뀐 느낌일까…?>
-암튼, 정팀장이 너한테 그렇게 무례하게 대접 받아야 하는 사람
아니니깐, 앞으로 조심해….그리고 그런 프로의식 없음, 나도 너와
일 같이 못한다… 제발,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화영선배, 정말 화가 난 것이다. 어미가 ~다로 끝나면 그렇다는
신호다. 이럴 땐 무조건 굽혀야 한다.
더 따지다간…본전도 못 찾게 되니깐…
-미안해, 선배…내가 생각이 짧았다는 건 인정해…
근데, 요즘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
난 살며시, 지금 주제를 돌리려 했으나…
-알았어. 근데 지금 그런 이야기 하기엔 시간이 넘 짧고,
오늘 퇴근 후에 나랑 우리 허니 만나서 이야기 하자…
오늘 우리 허니 만나는 날이거든^^
금세 밝아지는 선배의 얼굴을 보니 안도가 되기도 하지만 갑자기 샘이 났다.
-근데, 정팀장님이 왜 선배 찾은 거에요?
-아… 깜박 했다.
너 이번 달 w&f 코너 정팀장이랑 해봐…
-네? 왜?
-나도 잘 모르지만 이번 달 우먼이 정팀장 지인인가봐…
근데 정팀장이 너랑 나가겠다고…스케줄 되냐고 묻는데…?
-나랑?
난 나의 똥그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선배를 쳐다보았다.
일을 하면서 사람을 가리는 건 아니지만 지금 정팀장과 함께 한다는 게…
마음에 좀 걸렸다. 하지만 싫다고 하면 화영 선배한테 들을 소리는 뻔하다. -.-
-암튼, 잘 하고 이번기회에 정팀장에 대한 오해, 씻어~
그 사람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너…
-……
-나랑 라이프 스타일이 틀려서 그렇지, 내가 작업 들어 갈려다가
그만 둔 사람이야~ ㅋㅋ
-푸하하하…..선배는 참~^^
-사람은 겪어봐야 하는 거야…더군다나 너처럼 일방적으로
판단해버리는 그런 습관은 고쳐야 하는 나쁜 습관이야…
-알았어요 선배, 그러니깐 고만 좀 해요…-.-
점심 먹고 나오는 길에 선배가 볼 일이 있단다.
아무래도 거울을 몇 번씩 쳐다보고 가는 것이 지금 만나고 있다는
그 영국인인가 보다.
<모…좋을 때지…^^; 근데 화영 선배가 그렇게 영어를 잘 했던가?>
사무실에 들어가니 옆 자리 순정씨가 봉투 하나를 건네 준다.
-이게 모에요?
-아까, 홍작가님이 선경씨 주라고 하던데… 하얀 봉투는 좀 묵직했다.
열어보니, 스틸 컷 몇 장과 영화표 한 장이 들어있다.
그리고 메모도…
(첫 작품이니까 잘 간직하세요…그리고 내일 시간되면 같이
영화 보았음 하는데.…기다리겠습니다. -홍인표)
순간 기분 좋은 마음과 걱정스런 마음, 두개가 교차하고 있다.
그 기분을 짧게 간직하도록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린다.
-여보세요, 이선경입니다.
-선경아, 나 박혜경…잘 지냈니?
-아, 선배…잘 지내셨어요?
갑자기 내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내 핸드폰이 잘 된다는 것이 짜증나기도 했다.
-난 잘 지내…^^
기분이 좋아보인다.
-그런데 어쩐 일 이세요?
-ㅋㅋ 왜, 그냥 안부전화 했다면, 안 믿어 줄꺼야?
<그렇죠…안 믿죠…-.-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인표씨가 궁금해서 전화 한 거죠?>
라고 묻고 싶었지만 난 그냥 웃음으로 대꾸 하였다.
-어떻게… 우리 했던 일은 잘 되었니?
그게 궁금하기도 하고…네 얼굴 좀 보고 싶기도 하고…
실은, 나 인표씨가 궁금해서 전화했어.
선배의 이런 쿨~한 성격이 대학 때는 좋아보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다만 다만……-.-
-아…네…
-그래도 네가 거기 있어서 한결 수월하다…
<모가 수월한 건지 모르겠다… >
-네…
-나 오후에 거기 잠깐 들릴 수 있는데 우리 얼굴 좀 볼까?
-그러세요…그런데 선배, 인표씨 우리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분 아니에요…
-알아~ 저번에 인표씨가 이야기 하던걸~ 그냥,
너한테 좀 묻고 싶은 것도 있고 해서…
-그래요, 그럼 근처에 오셔서 전화하세요….
혼란스럽다.
오후에 정팀장이 불렀다.
-케익 좋아해요?
그가 뜬금없이 묻는다.
-없어서 못 먹어요~
<그래, 인심 쓰자…저 사람도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아닐거야…
내가 부드럽게 대한다고 나에게 모.. 해가 되겠어…>
-그럼, 케익 먹으러 갑시다, 나도 케익 좋아하니까…
<어머 어머…이런 식으로 데이트 신청하는 거봐…^^;>
-그러세요…
-지금 나갈까요?
-지금이요?
-네
곤란하다. 오후에 박선배가 오기로 되어있는데…
-저어…오늘은 곤란한데요…조금 있다, 약속이 있거든요…
-아, 그러세요?
-네…
정팀장 방에서 나오는데 박선배가 회사 앞에 와 있단다.
박선배가 자리한 곳은 ‘동만’ 이라는 카페이다.
모…동만빌딩 앞이라 동만인건지, 아님, 그냥 우연의 일치였는지…
까페 문을 열자 박선배가 손짓을 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선배는 멋있다. -.-
-어떠니? 내가 혹시 몰라서 치즈케익 시켰는데…
내가 앉기도 전에 선배가 물어본다.
-아, 여기 케익류도 있어요?
-그렇던데…^^
씽긋 웃는 선배가 귀엽다. 인표씨도 저 선배의 웃는 모습에 반했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혹 바쁜 사람 불러낸 건 아니었니?
-아뇨…한가한걸요 몰….그런데?
선배, 웃는다.
-그래, 내 성격 너도 아니까 용건부터 먼저 물을께…
선배의 말이 끝나자 케익이 나왔다. 따뜻한 얼그레이와 함께…
-아참, 그냥 얼그레이 시켰어…홍차류 좋아하지?
-네…
화영선배나 다른 사람이 내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본인 임의대로 시켰어도 나…이렇게 괜찮았을까?
-너랑 인표씨랑 무슨 관계니?
순간, 깜짝 놀랐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선배, 그런거 왜 묻는거죠?
박선배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조금도 주저없이 대답한다.
-나 인표씨 다시 만나고 싶어…
-……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인표씨는 그래, 내가 첫눈에 반해버린 사람이다.
달콤한 케익처럼 그 달콤함에 빠져 많이 먹다간 분명,
(내 친구의 어머니 표현대로) 허리에 지방이라는 커다란 튜브를 갖게 될지 모른다.
갑자기 인표씨와 내 관계가 그렇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빠져들수록 아픔의 상처를 갖게 될거라는 생각…
내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채...
핸드폰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정팀장의 호출이다.
-선배, 두 분의 관계에 있어서 저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마세요…
단지, 그 사람과 전 아직, 아무 관계가 아니니깐요…
선배의 표정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직? 그럼 앞으로는 무슨 관계가 될지 모른다는 말이네?
-무슨 관계가 되더라도 전 깨끗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요.
저 지금 사무실로 들어가 봐야겠어요…팀장님 호출이네요..
사실 지금 바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난 선배와 더 있다가는 KO패를 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거…
나 자리에서 일어서며 테이블 위에 티켓 하나를 올려놓았다.
-제가 지금 인표씨한데 실수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두 분이서 만날 기회를 드리죠…
제가 지금 선배를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최선에에요...
그리고...더 이상 바라지 마세요...
난 나에게 놀라웠다. 내가 감히, 박선배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인간은 할 수 없는게 없다. 못했을 뿐이지...
노오랗게 잘 익은 치즈케익이 아직 아무에게도 자신을 내어주지 않은 채,
자신의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새로 올려진 티켓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잰 무엇이길레, 나 보다 더 시선을 받고 있는걸까…하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