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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BY Silvery 2004-04-15

대담하게도 나는 둘째아이까지 집근처 놀이방에 맡겨두고서 승미를 따라 미팅 장소로 향했다.

승미는 가는 차안에서 설명회 비슷한 내용의 테입을 틀어주면서 한번 들어보라고 했는데,

처음 듣는 나로써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살짝살짝 졸아가면서 도착했다.

낮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을줄 알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승미가 말한 미팅 이란 곳에 나온 인원은 몇명 정도가 아니라 강당 하나에 꽉차는 인원이었다.

정장의 깔끔한 차림새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 속에서, 간편한 차림새로 나왔던 나는 무척 민망하게 느껴졌다.

 

 

"기집애.. 이런거면, 나더러 정장 입고 나오라구 하지.."

 

"어~, 아냐 꼭 정장 입어야 하는거 아니구.. 그냥 편한 맘으로 있으면 돼."

 

승미는 그냥 부담가지지 말라고 말했지만, 내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은 너나없이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에 어느 누구하나 인상 찌푸리는 사람 없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머, 김영아 사장님.. 파트너 사장님들이 멋지시군요~ 꼭 성공하실겁니다...."

 

"감사합니다 한승우 사장님! 저희는 꼭 성공할거예요.. 한사장님도..."

 

약간 수다스러운듯한 사람들의 인사소리에 정신이 팔려있던 나에게, 승미가 인사를 할 사람이 있다며 잡아끌었다.

 

 

"하예린 사장님.. 여기 이분은 오늘 새로오신 안희수 사장님이세요.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승미는 다시 나에게 하예린 이란 사람을 소개시켰다.

 

" 안희수 사장님? 이분은 다이아몬드 핀의 하예린 사장님이세요."

 

잠시 어지러웠다.

승미가 갑자기 나에게 사장님이란 호칭과 함께 존칭을 쓰느것도 어색했지만,

사람들 마다 무슨 무슨 레벨처럼 핀이라는게 있는것 같다는 생각에 마치 외계에라도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오~, 최승미 사장님 드디어 레그가 3개가 되셨군요.. 축하해요. 안녕하세요 안희수 사장님? 적응이 안되시는것 같으시죠? 주위를 잘 보세요.. 모두들 너무 행복한 표정에 함빡 웃음을 짓고 계시죠? 저희는 단순한 방판 회사가 아니랍니다. 아마 미팅 두세번만 오시면 안사장님도 저희 처럼 활짝 웃으시게 되실거예요."

 

"네..? 아.. 네..."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의 내 자신없는 목소리..

내자신이 듣기에도 무척 초라한것 같은 목소리가 내목에서 나왔다는게 너무 창피했다.

 

그후로 몇몇 다른 사람들을 소개받았지만, 솔직히 내 상식과는 좀 동떨어진 세계인것 같아서 그런지..

누가 누군지 구별도 안되었고, 뒤이어 이어진 강의 내용 역시 내게 별 감흥을 주진 못했다.

 

강의 시간 후에 몇몇사람씩 그룹으로 작은 좌담회 같은것도 했다.

돌아가면서 소감이나 각오같은걸 다지는 시간이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잘 말을 못하는 나로써는 그냥 구경만 하다 말았다.

 

 

 

"어땠니? 오늘 미팅?"

 

모든 일진이 다 끝나갈쯤, 승희가 내게 살짝 말했다.

 

"글쎄.. 난, 뭐 좀 그렇네.. 피라미드가 아니란것은 알겠는데..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아닌거 같어.."

 

"아니야 희수야. 처음엔 다 그렇게 자기 꿈이 이뤄질지에대해 무척 고민하고 또 의심해. 하지만 우리 사업을 통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다 찾은 사람들이 무지 많아. 나는.., 희수니가 나와함께 각자의 꿈을 이룰수 있도록 정상에 설수 있기를 바래."

 

승미는 끈질기게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무엇보다 내가 승미의 말속에 흔들렸던건, 내가 하고싶었던 일들을 이룰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암시였다.

 

 

"내일 모레 저말 유명한 사장님이 순회강연 오셔. 우리 그때 들으러 오자. 응?"

 

"승미야.. 난 아무래도 작은아이랑 큰아이때문에.."

 

"희수야. 내가 부탁하자. 더도말고 딱 세번만 더 미팅에 참석해봐. 응??"

 

"..........."

 

 

거절하고싶었던 나는 끈질기게 설득하는 승미 앞에서 적당한 말이 안떠올라 생각만 굴리고 있었다.

 

"희수야.. 한번쯤은.. 우리가 누구 엄마, 아내 라는 생각을 접고, 우리 자신을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왜 하필 니가 하는것이여만 하는건데..?'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이소리가, 승미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서 엉뚱한 대답으로 흘러나왔다.

 

"그래. 알았어.. 둘째는 어차피 서로 힘드니까 하루 더 맡겨보지 뭐.."

 

"오케이! 좋았어~ 호호.. 역시 내가 눈은 참 좋단 말야!? "

 

집에 내리는 나에게 승미는 책 몇권과 함께 테잎도 주었다.

 

 

"한번씩 읽어보고, 테잎도 들어봐. 이거 들어두면 모레 미팅때 이해가 훨씬 쉬울거야."

"응.. 알았어.. 나 큰애 올시간이야. 그만 둘째도 데려와야하고.."

"그래. 알았어. 그럼 내일모레 오늘처럼 9시에 온다?"

"응.. 그래. 모레보자.."

 

 

그렇게 승미는 자가용을 타고 제 갈길로 가버렸다.

 

나는, 오랜만의 혼자만의 외출에 막을 내리고 다시 아이들과의 현실로 되돌아와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넘긴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었다.

 

그러나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 단한번의 외출로 인해 나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