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은 일어나기 빠쁘게 거울 앞에 섭니다.
이리저리 나를 거울에 비추어 보며 고개를 갸웃갸웃 합니다.
"얘 민서 머리 안 감니?."
"응! 엄마 오늘은 안 감을래. 머리 감으면 퍼머 풀리거든."
주방에 계시는 어머니를 향해서 답하곤 이내 거울 속의 나에게 다시 빠집니다.
교문 앞에서 인숙이를 만났습니다.
"어 민서!. 너…퍼머 했구나?."
"오~ 야. 너 눈치 빠르네. 응 어제 엄마 미장원 가셨는데 따라가서 졸랐지."
"야 돌아봐. 이쪽으로, 음 괜찮은데… 다시 저쪽으로 해 봐. 야 이쁘다. 야~아!. 나도 하고 싶다."
요즘 주인님의 반 아이들. 아니 학교 안의 여자 아이들은 퍼머가 유행입니다. 주인님까지 5명이나 같은 반 아이들이 퍼머를 했습니다. 퍼머한 머리들은 표가 잘 나지 않게 모두들 묶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심히 본다면 이내 퍼머머리는 표가 나지요. 단연코 오늘은 종일 주인님의 머리가 이야기 거리입니다. 점심시간 후 체육시간입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모였습니다. 오늘은 피구를 하기로 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야호."
주인님은 좋아서 깡총깡총 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님은 피구를 제일 좋아하시고 잘 하십니다. 주인님은 편가르기를 하면 서로 데려갈려고 하는 공격수이거든요.
주인님은 나를 고무줄로 단단하게 묶었습니다. 그런 다음 피구공을 들고 열심히 뛰어 다니십니다. 주인님편이 오늘도 이겼습니다. 주인님은 아주 신이 났습니다. 이마에 맺힌 땀 방울도 문제지만 저의 온 몸은 꽁꽁 묶여 땀으로 뒤죽박죽입니다. 체육시간이 끝나자 주인님은 언제나처럼 수돗가로 달려 가십니다. 처음엔 손만 씻는가 했더니 어라! 인숙이가 손바닥으로 한 번 뿌린 물이 화근이었습니다. 주인님도 인숙이에게 물을 한번 뿌리더니 장난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가세하더니 아예 호스로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물 싸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경비 아저씨가 달려 오시고 호스를 빼앗으시는 것과 동시에 다음시간 시작종이 울리고 주인님과 친구들은 교실로 향해 달립니다.
담임선생님 시간인 국사 시간입니다. 주인님도 아이들도 흠뻑 젖은 자신들을 수습하는라 수업 분위기가 사뭇 산만합니다.
"너희들 잘 놀았나?
"네~."
아이들의 대답이 초여름 햇살처럼 밝고 맑습니다.
선생님은 국사책을 들고 아이들의 책상 사이로 걸어 오시며 잠시 2분단 중간으로 걸어 오십니다. 주인님 옆에서 잠시 머무시더니
"민서 너 앞으로 나가 서 있거라. 너도, 너도 …"
주인님을 비롯해 여섯명이 앞으로 불려 나갔습니다. 주인님과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합니다.
"자 지금부터 선생님이 하라는 데로 한다. 머리 묶은 것을 풀도록 한다."
주인님과 아이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어서 풀어라. 선생님 다 알고 있다."
주인님이 제일 먼저 머리를 풀었습니다.
"김 민서!. 너 머리 퍼머 아닌가?."
"아니에요 선생님 저 원래 곱슬이쟎아요?."
주인님은 순발력도 좋으십니다.
"그래 너 곱슬은 맞는데 어째 좀 심한것 같다. 자!. 여러분 여기 다섯명은 교칙위반인 퍼머한
사람입니다. 불행하게도 다음시간에 불시에 하는 복장검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걸리는 사람 없도록 준비하도록 하고 교과서 124페이지 폅니다."
선생님은 수업을 열심히 하시는데 아이들의 산만한 눈동자는 쉼 없이 흔들리며 수업내용에 집중을 못합니다. 주인님은 연신 귓볼 옆으로 삐져 나오는 제 다리를 모두어 귀 뒤로 넘겨 봅니다. 수업마치는 벨이 울리기 바쁘게 인숙이와 그의 무리들이 주인님에게 모여 듭니다. 손에는 드라이기, 고데기 하나씩 들고 말입니다. 주인님의 친구들은 아예 가방속에 이 모든 것들을 넣어 가지고 다니나 봅니다. 주인님 손을 끌고 전기 콘센트 근처에 갖다 놓은 의자에 주인님을 앉힙니다. 세사람은 주인님의 머리를 펴기 시작합니다. 세사람이 제 몸뚱이를 이리저리 잡아 당기는 통에 저는 정신을 놓아 버렸습니다. 주인님은
"와 씨 하루만에 머리 풀어야 된다. 우야노…돈이 얼만데."
숫제 울상입니다.
다음시간 학생부장 선생님과 선도부 언니들이 교실로 들어 왔습니다.
주인님은 쉬는 시간에 이미 친구들의 도움으로 물장난으로 구불구불해진 제 몸을 많이 폈습니다. 제 몸을 얌전히 쓸어 올려 하나로 꼭 붙들어 묶었습니다.학생부장 선생님의 매서운 눈을 피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주인님이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내 몸을 늘려 꼬불한 내 몸매가 일자가 되도록 죽을 힘을 다해 폅니다. 참!. 다행입니다.
퍼머를 한 여섯 명 중 주인님을 뺀 다섯명만 앞으로 불려 나가 머리카락을 잘립니다.
"여러분 이 다섯명은 교칙위반인 퍼머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이 이 다섯사람의 머리카락을 자를 겁니다."
다섯명의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모두 머리카락을 잘렸습니다. 머리카락을 잘린 아이들의 입이 쀼루퉁 합니다. 주인님은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긴 한숨을 쉽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잘려버린 친구들에게 미안한 맘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복장검사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주인님은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아도 친구들 보기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종례시간이 끝나고 교실을 나가시던 선생님 슬그머니 주인님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십니다. 주인님은 구석진 자리에서 펴 봅니다.
'민서 머리 퍼머한 거 선생님 다 안다. 삼일 안에 이쁘게 펴서 오렴. 선생님'
주인님은 씩 웃습니다. 선생님은 늘 주인님을 이뻐 하십니다. 문제 학생이 아니니 선생님이 아마 눈 감아 주셨나 봅니다.
주인님은 오늘 부쩍 갈라진 내 몸뚱이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혼자서 이리저리 들여다 보다가는 갑자기 짝지를 부릅니다.
"짝지야!. 내 머리결이 너무 나빠졌다 어쩌누!."
"니가 퍼머하고 드라이하고 그래서 그렇쟎아. 아무것도 안하는게 머리카락엔 제일 좋아."
바보 주인님!.
주인님은 정말 바보입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 지쳐서 그렇다는 것도 모르니 말입니다.
이런 바보 주인님을 사랑하는 나는 머리카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