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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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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머


BY 캐슬 2004-04-07

주인님은 며칠째 어머니를 조르고 있습니다.

퍼머를 해 달라는 겁니다. 처음 어머니에게 퍼머를 해 달라고 했을때 어머니는 기겁을 하셨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조르는 것에 어머니는 서서히 지쳐가시고 계십니다. 주인님은 작전을 바꾸었습니다.

"엄마 머리 퍼머할 때가 다 되어가네?. 엄마 언제 갈 건데…."

"왜 그걸 니가 신경쓰는데…."

"그냥."

이렇게 말입니다.

어제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안 계셨습니다. 전화로 어머니가 미장원에 계시다는 걸 안 주인님 교복도 벗지 않고 미장원으로 달렸습니다.

"엄마~ 머리하네!."

그때부터 주인님의 작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엄마 나 머리하면 안돼?."

"학교는 어떻게 갈려고 그래…".

"묶으고 다니면 된다.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다니는데 뭘. 응 엄마!."

쉼없이 조르자 어머니는 미장원 원장에게 물어 봅니다.

"요새 학생들 퍼머해도 되는지 몰라. 이렇게 퍼머 해달라고 졸라대네?."

"네 하기는 해요. 방학때 하지?."

주인님은 묶어서 다니면 된다고 다시 엄마를 조릅니다.

"엄마 다음달 내 용돈 절반으로 줄여도 좋아."

어머니는 주인님의 조름에 지쳐버리신 표정이 역력합니다.

"모르겠다 니 맘대로 해"

어머니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주인님은 냉큼 미장원 의자에 올라 앉습니다. 그리곤 머리 디자인에 대해 준비해둔 말이기라도 한 것처럼 줄줄 머리 모양을 주문 하기 시작합니다.

"제 머리 층 많이 내가지고… 뽕머리로 해 주세요?."

"뭐 똥머리라고?."

어머니의 놀라는 목소리에 주인님은 킥킥 웃습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 말입니다.주인님은 나를 또 다른 나로만들려고 하십니다. 나로 인해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말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아픔이나 고통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말입니다. 주인님에게 일러 주고 싶습니다. 퍼머라는 것에 관해서 말입니다.

 

  Permanent Wave? (퍼머는?)

열이나 화학약품을 작용시켜 모발조직에 변화를 주어 머리카락을 물결모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3-4개월 동안 머리카락의 웨이브를 유지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은입니다. 퍼머를 하는 방법이나 기법을 총칭하는 말을 퍼머넌트라고 하는 게지요. 역사적 기원은 이집트에서 알칼리성 진흙을 머리에 바르고 짧은 나뭇가지로 말아서 말리는 방법으로 웨이브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36년 영국의 화학자 J.B스피크먼은 양모의 분자구조를 연구하여 머리털의 케라틴 세포의 곁자슬을 자르는 콜드 웨이브(cold wave) 원리를 완성하여 간편하고 안전한 오늘날의 형태의 퍼머넨트의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퍼머넨트의 발달로 특정한 계층에서나 연성의 전유물이었던 퍼머넨트가 요즘은 남.여의 구별이 없을 정도로 일반화되었습니다.

 

 주인님은 거울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습니다.

나는 주인님의 즐거운 상상과는 반대로 엄청난 고통을 견디고 있어야 합니다. 온 몸이 타는 듯하고, 썩는 듯하고, 잘려 나가는 듯도 한 이 고통을 오로지 주인님만을 위해 참아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사람이 아기를 낳을때 산고 라는 것이 아마 이 고통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왜냐구요?. 새롭게 태어나는게 비슷하다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아!. 드디어 미용실 원장님이 제 몸에서 퍼머넨트 약품을 씻어 내립니다. 아 !.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정말 힘든 고통을 참아내는 것도 오로지 주인님을 위한 충성심이고 또한 이것은 나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나는 고통이야 어찌되었든 주인님을 위한 충실한 머리카락이고만 싶습니다. 거울속의 변해버린 나를 보고 주인님은 흐믓한 미소를 짓습니다. 어머니의 당황해 하는 눈빛과는 사뭇 다른 주인님의 여유로움이 나는 신기합니다.

"어짜노 이래 꼬불꼬불해 가지고 학교는 우째 가노?."

어머니는 연신 내일 주인님이 학교갈 걱정에 얼굴빛이 흐려지십니다.

주인님은 실실 웃으며 드라이하고 가면 된다고 어머니를 안심시킵니다.

"아무리 드라이를 해도 생머리로 되나?. 안되지. 그래 나는 모르겠다. 학교가서 걸리면 다시는 너 퍼머 해 달라는 소리 안하겠지?. 나는 이제 모르겠다."

어머니의 체념섞인 목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주인님은 생글생글 웃기만 하십니다.

미용사님은 나에게 다시 뜨거운 드라이를 갖다 댑니다. 아주 천천히 내 몸을 말리고 쭉쭉 길게 나를 늘리고 당겨서 폅니다. 얼마후 나는 예전의 나보다 통통하도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주인님의 만족한 미소를 보며 나는 힘들었던 3시간의 고통을  천천히 잊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