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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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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증거


BY 주 일 향 2004-03-06

 

다른 날보다 일찍 집에 온 남편은 모처럼 함께 저녁을 먹은 뒤. 내 눈치를 살피고는

운동을 한다며 밖으로 나갔다.

유리가 잠자기엔 이른 시간이라 미행할 기회를 뒤로 미루어야 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남편은 돌아왔고 곧장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팬티만 걸치고 거실로 나온 남편은 벗은 몸으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서랍장에서 메리야스를 꺼내 거실로 나온 나는 남편의 등에 시선이 가 박혔다.

남편의 등에 난 이상한 상처를 발견한 나는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다

분명히 손톱자국이었다. 다섯 손가락이 선명하게 그어져있었고 그 상처는 이미 아물었지만

딱지가 앉아 더욱 선명해 보였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소리를 들었다.

- 유리아빠. 이거 뭐야? 이 손톱자국

- 무슨 소리야

- 손톱자국 어디서 난 건지 빨리 말해.

극도로 흥분이 된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뿐, 너무도 태연했다.

- 빨리 설명해보라니까

- 손톱자국이 어디 있다고 그래?

남편은 자신의 등에 난 상처를 잊은 듯 보였다.

- 어딨긴. 거울 갖다 보여줘?

남편은 황당하다는 듯 안방으로 들어가 화장대 거울에 등을 비쳐 보고는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당황해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어떤 년이야?

남편은 내 입에서 나오는 거친 말에 더 놀라는 듯 했다.

- 무슨 소리하는 거야. 당신

- 어떤 년인지 빨리 말해.

- 여자? 이 사람 생사람 잡겠네

- 흥, 그래두 할 말이 있나보지?

남편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 이 동네 사는 년이라는 거 내가 모르는 줄 알아?

- 무슨 소리야

- 밤마다 열심히 운동한다 했지. 여자랑 재미 보느라 그리 열심이었어?

- 제발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무슨 여자가 있다고 그래.

- 왜 그년이랑 싸웠니? 아님 너무 황홀해서 그 년이 할켰대?

앙칼지게 따져 물어야 하는데 왜 주책없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건지 화가 났다.

상상했던 일들이 막상 현실로 다가 오고 나니 겁이 나기도 했다.

그 때.방에서 놀던 유리가 놀란 얼굴로 거실로 나왔다.

-엄마 왜 그래. 왜 울어.

겁을 먹은 듯 유리는 내 품에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 진정해 여보.

- 지금 진정하라구?

- 그래 여보,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남편을 노려보는 나의 눈 가득히 차오른 눈물로 인해 남편의 얼굴이 흐려졌다.

- 여보, 기억 안나? 일주일 전쯤 유리랑 장난하다가 유리가 갑자기 등을 할퀴었거든, 그게 아마 흉터로 남았나봐.

- 뭐라구? 당신 등을 할퀸 년, 아니 여자가 바로 당신 딸 유리라구?

남편의 궁색한 변명을 들으니 더욱 화가 치밀었다.

- 그래 맞아. 유리한테 물어봐.

그 말을 들은 유리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 엄마. 내가 그랬어. 아빠 등 말야. 내가 할켰어. 미안해 엄마.

유리는 큰 소리로 엉엉 울며 말했다.

- 뭐라구? 유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유리는 서럽게 우느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자초지종을 말했다.

워낙 보스락 장난을 좋아하는 남편은 유리를 놀리려고 유리의 맨 엉덩이를 손으로 처얼썩 때렸는데 유리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아빠에게 마구 달려들었고. 무방비 상태인 아빠에게 순간적으로 다가가 등을 손톱으로 할퀴었던 것이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얼마전 남편의 비명을 들었지만 유리와 장난치느라 꾸며낸 소리로 여기고 신경 쓰지 않았고, 남편 역시 따가웠지만 장난중에 벌어진 일이라 그냥 넘겨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졸지에 바람피운 남자로 내몰렸던 남편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 당신 드라마 너무 많이 보는 것 아냐?

- 누가 뭐 그런 줄 알았나?

할말을 잃은 나는 이어질 추궁이 두려워 유리를 달랜다는 이유로 남편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유리는 아빠 등에 선명하게 나있는 손톱자국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찮은 장난이 빚어낸 결과는 어처구니없는 부부싸움으로 발전한 셈이었다.

그러나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일 라운드는 내가 졌지만 남편의 의혹이 풀릴 때까지 나의 미행은 계속될 것이다.

남편의 밤 운동은 계속 이어졌지만 미행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꼬리를 밟힐 뻔한 남편은 분명 몸을 사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