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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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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가 생겼나봐.


BY 주 일 향 2004-03-05

 


밤새 뒤숭숭한 꿈을 꾼 것처럼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다.

남편은 물에서 막 건져낸 푸성귀처럼 싱싱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 당신 왜 그렇게 푸석푸석해? 얼굴이.

- 응, 잠을 설쳐서 그런가봐.

- 잠보인 당신이 잠을 설쳐? 하하.

- 너무 더워서 잠이 몽땅 도망 갔나봐.

- 당신 요즘 너무 신경 안 쓰는 거 아냐?

- 무슨 소리야?

- 아무리 남편이 편하다지만 고무줄 바지에 머리는 부스스해가지고,

  게다가 얼굴까지 푸석해서는... 매일 보는 사람 생각도 좀 해주라.

- 그게 당신 불만이었어?

- 불만이라기보다는 갈수록 심해지는 거 같아서.

- 아침부터 이상하네.

- 빨리 밥이나 줘. 늦었다.

- 아침부터 시비건 게 누군데?

식탁에 대충 밥을 차려놓고는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남편과 마주앉아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버렸다.

남편은 뜨거운 국 대신 냉장고 안의 시원한 물을 꺼내 밥을 말아 집어 삼키듯 급하게 먹은 뒤 출근을 했다.

딸아이가 눈을 비비고 나오며 하품을 했다.

-아빠는?

딸아이는 일어나면 아빠부터 찾았다.

-회사에 갔어.

-벌써?

-그럼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어서 씻고 밥 먹어야지.

딸아이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유난히 아빠를 따르면서도 못마땅하면 앙칼지게 대드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반성을 할 때가 많다.

무더운 하루가 될 거라는 일기 예보를 들으며 집안을 치우고 일찌감치 언니네로 건너갔다.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서 피서지로 그만이었고 심란한 마음을 풀어 놓기엔 언니만큼 좋은 사람은 없었다.

언니는 내 표정을 보자마자 내 마음을 읽은 듯 물었다.

- 제부랑 싸웠니?

- 아니,

- 얼굴에 싸웠다고 써있는데

- 언니. 돗자리 까는 게 어때?

- 그럴까? 호호.

- 시원한 커피나 줘.

- 알았어. 이 쌈닭아줌마야.

- 친언니 맞아?

- 자, 이제 고백하시지.

- 언니. 나 속상해 못 살겠어.

   밤새 잠을 설쳤더니 얼굴까지 퉁퉁 부은 게 컨디션이 영 안 좋아.

- 무슨 일인데

- 유리 아빠 말야. 여자 생긴 거 같아.

- 뭐? 여자? 그게 무슨 말이야. 서정아.

- 있지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영 낌새가 이상해서 말야.

- 빨리 얘기해봐.

내 얘기를 잠자코 듣던 언니 역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네 얘길 들으니 뭔가 냄새가 나긴 해.

- 그치? 언니.

- 그치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잖아.

- 그래서 미행까지 했잖우. 실패했지만

- 미행이 쉬운 일은 아니지.

- 영화 보면 쉬워 보이던데 정말 힘들더라구

- 서정아. 서두르지 말고 침착해야 돼.

- 섣불리 캐물었다간 남자들 꼬리 감추는데 선수거든

- 그렇지? 좀 더 지켜봐야겠지?

- 그래. 속상하겠다.

언니에게 속을 털어 놓고 나니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해졌다.

집에 돌아와 저녁준비를 마치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