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숭숭한 꿈을 꾼 것처럼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다.
남편은 물에서 막 건져낸 푸성귀처럼 싱싱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 당신 왜 그렇게 푸석푸석해? 얼굴이.
- 응, 잠을 설쳐서 그런가봐.
- 잠보인 당신이 잠을 설쳐? 하하.
- 너무 더워서 잠이 몽땅 도망 갔나봐.
- 당신 요즘 너무 신경 안 쓰는 거 아냐?
- 무슨 소리야?
- 아무리 남편이 편하다지만 고무줄 바지에 머리는 부스스해가지고,
게다가 얼굴까지 푸석해서는... 매일 보는 사람 생각도 좀 해주라.
- 그게 당신 불만이었어?
- 불만이라기보다는 갈수록 심해지는 거 같아서.
- 아침부터 이상하네.
- 빨리 밥이나 줘. 늦었다.
- 아침부터 시비건 게 누군데?
식탁에 대충 밥을 차려놓고는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남편과 마주앉아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버렸다.
남편은 뜨거운 국 대신 냉장고 안의 시원한 물을 꺼내 밥을 말아 집어 삼키듯 급하게 먹은 뒤 출근을 했다.
딸아이가 눈을 비비고 나오며 하품을 했다.
-아빠는?
딸아이는 일어나면 아빠부터 찾았다.
-회사에 갔어.
-벌써?
-그럼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어서 씻고 밥 먹어야지.
딸아이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유난히 아빠를 따르면서도 못마땅하면 앙칼지게 대드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반성을 할 때가 많다.
무더운 하루가 될 거라는 일기 예보를 들으며 집안을 치우고 일찌감치 언니네로 건너갔다.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서 피서지로 그만이었고 심란한 마음을 풀어 놓기엔 언니만큼 좋은 사람은 없었다.
언니는 내 표정을 보자마자 내 마음을 읽은 듯 물었다.
- 제부랑 싸웠니?
- 아니,
- 얼굴에 싸웠다고 써있는데
- 언니. 돗자리 까는 게 어때?
- 그럴까? 호호.
- 시원한 커피나 줘.
- 알았어. 이 쌈닭아줌마야.
- 친언니 맞아?
- 자, 이제 고백하시지.
- 언니. 나 속상해 못 살겠어.
밤새 잠을 설쳤더니 얼굴까지 퉁퉁 부은 게 컨디션이 영 안 좋아.
- 무슨 일인데
- 유리 아빠 말야. 여자 생긴 거 같아.
- 뭐? 여자? 그게 무슨 말이야. 서정아.
- 있지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영 낌새가 이상해서 말야.
- 빨리 얘기해봐.
내 얘기를 잠자코 듣던 언니 역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네 얘길 들으니 뭔가 냄새가 나긴 해.
- 그치? 언니.
- 그치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잖아.
- 그래서 미행까지 했잖우. 실패했지만
- 미행이 쉬운 일은 아니지.
- 영화 보면 쉬워 보이던데 정말 힘들더라구
- 서정아. 서두르지 말고 침착해야 돼.
- 섣불리 캐물었다간 남자들 꼬리 감추는데 선수거든
- 그렇지? 좀 더 지켜봐야겠지?
- 그래. 속상하겠다.
언니에게 속을 털어 놓고 나니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해졌다.
집에 돌아와 저녁준비를 마치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