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내 머릿속은 남편의 꼬리를 잡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조급한 마음에 잠자기에 이른 시간이었지만 딸아이를 재우고 남편을 기다렸다.
오락가락하는 지루한 장마비로인해 온 집안은 습했고. 금방 샤워를 하고나도 온몸이 끈적거리는 불쾌지수가 높은 밤이었다. 젖은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리고 있는데 남편이 왔다.
- 후덥지근하네.
- 샤워 좀 해.
- 이따 운동 갔다 와서 하지 뭐.
남편은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는 휘리릭 밖으로 나갔다
나는 주방 창문을 통해 남편의 뒷모습을 확인한 뒤. 재빠르게 현관문을 나섰다.
오늘은 기필코 성공하리라 다짐하며 남편에게 노출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바짝 따라 갔다.
지난번에 빠져나갔던 샛길로 나가는가 싶더니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유난히 골목길이 많은 동네라는 걸 새삼 확인하며 여러 갈래 길 앞에서 어느 길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던 나는 서둘러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입구는 가로등으로 환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다. 환한 불빛을 의지해 공원으로 들어서자 잠시 비가 그친 여름밤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공원에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 몇이 도란도란 벤치에 앉아 잠을 잊은 듯 잡담을 나누고 있었지만 텅 빈 운동장엔 여러 가지 기구들만 지키고 서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더구나 남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 혼자 몸으로 어두운 산책로를 따라 간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려고 하는데. 벤치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남자를 발견했다.
- 저, 혹시, 조금 전에 감색 츄리닝 입은 남자 못 보셨어요?
- 못 봤는데요. 저기 있는 노인들 말고는 없는 것 같은데요.
- 공원에 오신지 오래 되셨어요?
- 한 삼십분 정도 앉아 있었는데, 젊은 남자는 못 봤어요.
남편이 공원에 오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남편의 걸음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십분 정도의 차이가 났을 뿐인데 준비운동도 없이 산에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간으로 보면 지금쯤 철봉에 매달려 있거나 윗몸일으키기 아니면 맨손체조 등으로 준비운동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은 걸 보면 운동하러 오지 않았다는 게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정말 숨겨둔 여자가 있단 말인가. 나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혀
집으로 돌아왔다.
삼십 분쯤 지나자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 돌아왔고 곧장 샤워를 했다.
벽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잠든 남편의 몸에서 향긋한 비누냄새가 났다.
나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안은 채 잠을 자려고 애썼지만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